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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02. 2018

03. 의외의 일은 언제나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당신이 만나는 기적>



의외의 사건은 정말 생각도 ‘못 한’ 일일까, 
아니면 생각을 ‘안 한’ 일일까?

사람들은 ‘의외의 사건’이 일어나면 대개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의외’라는 이유로 말이다. 이상하게도 이런 일에는 잘못한 사람도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세상에 정말 ‘의외의 사건’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모든 일은 원인이 있었기에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1983년 11월 9일, 아이슬란드 바다에서 두 살 된 범고래 한 마리가 포획되었다. 이 범고래는 자유를 잃은 대신 그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틸리쿰(Tilikum)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틸리쿰은 아이슬란드의 해양동물원으로 보내졌다. 이곳의 수족관은 너무 작아서 틸리쿰은 몸을 뒤집을 때마다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조심해야 했다. 1년 후, 틸리쿰은 다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씨랜드(Sealand)로 보내져 훈련을 받았다. 틸리쿰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한 시간가량의 공연을 여덟 차례나 해야 했다. 하루의 공연이 끝나면 틸리쿰은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공연을 하지 않는 동안 다른 범고래 두 마리와 함께 길이 30미터, 너비 15미터, 깊이 11미터의 턱없이 작은 수족관에 갇혀 시간을 보냈다. 180센티미터의 사람이 작은 다락방에 갇혀 있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범고래나 돌고래를 훈련시킬 때 ‘생선을 보상’으로 준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뒤에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무서운 ‘처벌’이 존재한다. 배운 대로 잘하지 못하면 생선을 먹지 못할 뿐 아니라 ‘연좌제’의 대상이 된다. 아직 어리고 훈련시간이 길지 않은 틸리쿰은 자주 실수를 했다. 그러면 씨랜드의 훈련사는 다른 두 마리의 성인 범고래까지 먹이를 주지 않았다. 화가 난 성인 범고래들은 틸리쿰을 ‘왕따’시키며 수시로 깨물어 상처를 냈다.

오랜 감금과 훈련, 처벌, 왕따, 힘든 공연 등 각종 스트레스가 누적되면서 틸리쿰은 1991년에 ‘첫 번째 의외의 사건’을 저질렀다. 어느덧 열 살이 된 틸리쿰은 몸무게가 5톤이 넘어 세계에서 가장 큰 사육 범고래가 되었다. 2월 20일, 한 여성 훈련사가 실수로 발을 헛디뎌 수족관에 빠졌다. 이를 본 틸리쿰은 그녀를 눌러 익사시켰다. 사람들은 이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사건’이라고 했다.


이 일로 문을 닫은 씨랜드는 미국 플로리다의 씨월드(Seaworld)에 틸리쿰을 팔아넘겼다. 이곳에서 틸리쿰은 공연을 계속했을 뿐 아니라 ‘번식을 위한’ 수컷 범고래의 역할까지 해야 했다. 그는 총 스물한 마리의 새끼 범고래의 아빠가 되었는데 그중 열한 마리만 살아남았다.

1999년 7월 6일 밤, 한 남성이 씨월드로 잠입했다가 다음 날 수족관 안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두 번째 의외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관계자들은 이 남성의 온몸에 물어뜯긴 상처가 있는 것을 보고 ‘전과가 있는’ 틸리쿰을 첫 번째 용의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이 남성은 실족으로 차디찬 수족관에 빠져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공식 기록되었다.

‘세 번째이자 최대의 의외의 사건’은 2010년 2월 24일에 발생했다. 이날은 훈련사 던 브란쇼(Dawn Brancheau)가 틸리쿰과 공연하는 날이었다. 그녀는 경력이 16년이나 되는 베테랑 훈련사로 그동안 틸리쿰과 호흡이 매우 잘 맞았다. 둘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특별한 지시나 신호가 필요 없을 정도로 공연을 척척 해냈다. 그런데 이날은 틸리쿰이 갑자기 몸을 흔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브란쇼를 수영장 바닥까지 끌고 들어갔다. 그녀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주변에 다른 훈련사와 사육사가 있었지만 너무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손을 쓰지 못했다. 틸리쿰이 브란쇼를 죽이는 장면이 현장에 있는 수많은 관객 앞에서 생중계되면서 틸리쿰은 이날부터 ‘살인마 범고래’로 불리게 되었다.

살인마 범고래? 지금까지 바다에서 범고래가 사람을 습격했다는 기록은 없다. 범고래들은 물고기를 먹지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잡혀 와서 사육되는 범고래만이 사람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

틸리쿰의 비극은 동물은 ‘영혼’이 없고 인류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되었다. 동물을 가둬 놓고 훈련하는 행위가 무슨 죄가 되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공연하는 동물들이 갑자기 공격성을 보이면 해당 동물이 ‘갑자기’ 미쳐 날뛰었다며 매우 ‘의외의 사건’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의 이면을 살펴보면 그 비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모든 결과는 사람의 선택과 행위가 만들어 냈을 뿐, 결코 진정한 의미의 ‘의외’라고 할 수 없다. 틸리쿰 사건은 필연적으로 언젠가는 발생할 일이자 ‘악행의 결과물’이었다.

틸리쿰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보살핌을 받아 고통이 조금이라도 사라졌을까? 아니면 설마 잔인하게 안락사당했을까? 틸리쿰은 2011년 3월 30일, 다시 물 위의 무대로 돌아와서 새로운 공연을 시작했다. 다음 ‘의외의 사건’은 절대 없을 수 있는 것일까? 동물의 고통을 이용해서 우리의 즐거움을 얻으려고 한다면 ‘의외의 사건’ 역시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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