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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03. 2018

05. 1초에 세 개씩 팔리는 장난감의 비밀

<당신이 만나는 기적>



보는 시각에 따라 사물은 
그 의미가 달라진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에게 성인용품을 팔아도 될까? 애초에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범죄가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에서 1초에 세 개씩 팔린다는 장난감은 놀랍게도 원래 성인용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한 만화 전문 출판사는 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 책 속에 ‘종이인형’ 부록을 끼워 판매하기 시작했다. 여자아이들은 이 종이인형을 무척 좋아했다. 다양한 종이 옷을 가위로 정성 들여 잘라서 인형에게 바꿔 입혀 가며 소꿉놀이를 하고 놀았다. 소꿉놀이의 내용은 대부분 엄마가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했다. 종이인형들은 함께 차를 마시면서 신발, 모자, 부엌살림, 자녀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 덴버 출신인 루스 핸들러(Ruth Handler)는 1945년에 남편 엘리엇 핸들러(Elliot Handler)와 함께 자택 차고에 장난감 회사를 열었다. 남편은 제작을, 루스는 판매를 각각 책임졌다. 당시는 직접 사업을 하는 여성이 무척 드물었고, 특히 장난감 분야는 ‘남성 천하’여서 루스는 매우 특이한 경우였다. 그녀는 딸 바버라와 친구들이 종이인형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소녀들이 종이인형을 ‘엄마의 분신’으로 생각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이인형 소꿉놀이는 재미있었지만 다양한 활동을 하기에는 도구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루스는 종이 대신 제대로 된 실물 인형을 만들고 그에 적합한 옷을 만든다면 더 진짜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당시에도 실물 인형은 있었다. 상당히 입체적이고 사실적이었지만 모두 아기나 어린이의 모습이어서 ‘엄마 놀이’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루스는 성인 여성의 모습을 한 인형을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엘리엇은 그녀의 아이디어에 찬물을 끼얹었다. “여보, 엄마들은 가슴 달린 인형을 딸에게 사주지 않아! 세상에 그런 엄마가 어디 있어?”

회사의 다른 직원들 역시 엘리엇의 편에 섰다. 그들은 루스가 원하는 대로 인형을 만들려면 입술, 눈에 화장을 해야 하고 손톱에까지 꼼꼼히 색을 칠해야 하는데 그러면 제작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반대했다. 인형뿐 아니라 솔기와 지퍼, 다트가 꼼꼼히 들어간 인형 옷까지 만들어야 한다면 그냥 어른 옷을 만들어 파는 것이 낫겠다고 투덜거렸다. 설령 만든다고 해도 가격이 비싸 팔리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특히 디자인팀은 불만이 더 컸다. “판매나 열심히 하지 왜 제작에까지 관여하지? 자기가 언제부터 인형을 디자인했다고!”

루스의 아이디어는 이대로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1956년, 루스와 엘리엇은 자녀 두 명과 함께 유럽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스위스의 작은 도시 루체른(Luzern)을 여행하던 중 딸 바버라가 한 상점 앞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루스가 빨리 오라고 불렀지만 아이는 마치 발바닥에 강력 본드라도 바른 것처럼 꼼짝하지 않고 뚫어져라 쇼윈도 안을 바라보았다. 루스는 바버라의 눈이 가게 안의 인형 하나에 고정된 것을 알아차렸다. 그 인형은 늘씬한 두 다리, 풍만한 가슴, 가느다란 허리, 둥근 엉덩이, 그리고 붉게 칠한 작은 입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바버라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그 인형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점원은 펄쩍 뛰면서 “빌드 릴리(Bild Lilli)는 애들이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빌드 릴리라는 이름의 이 인형은 ‘성인용 장난감 인형’이었다. 그래서 그토록 섹시하고 요염한 표정으로 도발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점원은 젊은 남성들이 생일을 맞이한 친구에게 짓궂은 장난으로 보내는 물건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빌드 릴리는 원래 타블로이드 잡지 연재만화의 주인공이었다. 1952년에 처음 나온 이 만화는 성적인 암시로 가득한 성인 남성용 만화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 상태의 그녀가 신문을 들고 중요 부위만 가린 채 이렇게 말하는 식이다. “남자친구와 싸웠거든요! 글쎄, 내게 준 선물을 모두 가져가 버렸지 뭐예요?” 루스와 바버라가 사려고 했던 인형은 이 만화의 관련 상품으로, 주로 술집이나 성인용품점에서만 판매되었다.

루스는 이 만화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지만 자신이 만들고 싶었던 것이 이 인형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점원에게 빌드 릴리 인형 하나와 옷 여러 벌을 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인형 하나에 옷이 한 벌씩 세트로 나온 상품이라 따로 팔 수 없다고 대답했다. 매우 불합리하다고 여긴 루스는 자신이라면 그렇게 팔지 않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휴가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루스는 곧장 빌드 릴리를 들고 버드 웨스트모어(Bud Westmore)를 찾아가 인형 얼굴을 디자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유명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주로 영화 현장에서 활동하는 전문가였다. 웨스트모어는 빌드 릴리의 풍만한 입술을 조금 줄여 자연스럽게 만들고, 크게 구부러진 가느다란 눈썹도 완만하고 굵게 그려 넣었으며, 이마를 더 봉긋하게 만들었다. 또 여러 가지 모양의 앞머리를 더하는 등 헤어스타일에도 변화를 주었다. 디자인이 완성되자 루스는 곧 일본의 OEM 공장을 섭외해서 제작에 착수했다. 그녀는 공장 측에 반드시 진짜 사람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며칠 후 완성된 시제품을 본 루스는 깜짝 놀랐다. 가슴에 유두가 있는 것이 아닌가! 루스는 당장 공장장에게 달려가 절대 유두가 있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공장장은 “그러면 진짜 사람 같지가 않잖아요?”라고 대꾸했다. 아무리 말을 해도 통하지 않자 루스는 그가 보는 앞에서 커터 칼을 들고 우아한 자세로 인형의 유두를 잘라 냈다!

우여곡절 끝에 루스가 원하는 대로 인형이 완성되어 첫 번째 물량이 미국에 도착했다. 루스는 인형 이름을 딸 바버라의 애칭 ‘뱁스(Babs)’로 하려고 했지만 이미 상품명 등록이 되어 있었다. ‘바버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딸의 어릴 적 이름인 ‘바비(Barbie)’로 부르기로 했다.

1959년 3월 9일, 바비 인형이 정식 출시되었다. 3월 9일은 지금도 ‘바비의 생일’로 각종 축하 행사가 열린다. 그날도 그랬을까? 사람들이 쌍수를 들고 바비를 반겼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응은 엘리엇이 말한 그대로였다. 장난감 가게들은 주문서를 넣지 않았을 뿐 아니라 루스가 미친 것이 분명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어떻게 이런 물건을 아이들에게 팔 생각을 하느냐고 비난했다. 당시 미국의 장난감 산업을 장악한 남성들은 바비를 어린이용 장난감이 아니라 성적 매력을 강조한 ‘미국판 빌드 릴리’로 인식했다. 그들은 소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당황한 루스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한 발 물러서야 했다. 그녀는 즉각 일본에 전보를 보내어 생산을 잠시 중단하라고 알렸다. 하지만 이미 들어간 비용만으로도 회사는 도산 위기에 놓였다.

다급해진 루스는 어니스트 디히터(Ernest Dichter)를 찾아갔다. 정신과 의사인 그는 구매자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한 광고를 기획해 많은 상품을 히트시킨 사람이었다. 디히터는 여자 아이들이 바비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관찰한 후, 바비에 ‘성공한 숙녀’의 이미지를 더해서 어린 소녀들의 ‘동경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렇게 하면 바비의 섹시한 모습에 대한 부모들의 의심과 우려를 없앨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얼마 후 바비의 텔레비전 광고가 시작되었다. “나는 너처럼 될 거야!” “아름다운 바비야! 너는 바로 나야!” “바비는 나의 미래야!” 이것은 장난감 역사상 첫 번째로 방영된 텔레비전 광고로, 장난감 산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광고가 방영되면서 바비의 판매량은 놀라울 정도로 치솟았다. 루스는 광고를 적절히 이용해서 바비가 단지 예쁜 성인 여성이 아니라 ‘성공한 숙녀’임을 강조했다. 현재 바비는 의사, 기업가, 과학자, 우주인 등 여든 종류가 넘는 전문직으로 일하며, 유니세프의 자원봉사자이기도 하다! 바비는 전 세계 소녀들의 우상이 되었다.

루스의 회사가 바로 마텔(Mattel)이라는 세계적인 장난감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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