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드르르륵.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하루코가 ‘조천’의 미닫이문을 열었을 때, 약속 시간은 한 시간 16분이나 지나 있었다. 가게는 북적북적하고, 술 냄새와 닭 꼬치구이 냄새로 가득했다.
이쿠코는 카운터 자리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하루코를 보고는 방긋 웃는다.
옆자리에 앉아 하루코는 맥주를 주문했다.
“얼마나 마셨어?”
그렇게 묻자, 이쿠코는 “조금”이라고 대답했다.
하루코는 웃고 만다. 별 의미 없는, 그러나 더 이상은 따져 물을 수 없는 완벽한 대답이다.
“왜 이렇게 머리가 푸석푸석하니?”
스툴을 돌려, 하루코는 동생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 내렸다.
이쿠코는 잠자코 언니가 하는 대로 내버려둔다. 다림질도 제대로 안 한 낡은 원피스 차림으로.
자매는 맥주로 건배를 하고, 닭 꼬치구이를 열 개씩 먹었다.
이쿠코는 어렸을 때 편식을 하는 아이였다. 고기는 징그럽다면서 먹지 않았고, 생선은 구워야 먹었다. 구운 생선도 토막 나 있으면 ‘정체를 알 수 없어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통째로 구운 것 — 열빙어나 꼬치고기 — 만 먹었다. 채소와 과일에 대해서도 나름의 구별이 있었다. 아무튼 먹을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아이였다.
지금은 대개 잘 먹는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잘 먹는데도 살 안 찌는 ‘얄미운 체질’이라는 말까지 듣는다고 하는데, 이쿠코가 먹는 것을 보면 두 언니와 엄마는 지금도 반색한다.
“하루코 언니, 요즘 엄마랑 얘기했어?”
이쿠코가 물어, 하루코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아빠랑은?”
하루코는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하루코 생각에 이쿠코는 ‘천사처럼 착해서’ 사람들 걱정을 너무 많이 한다.
“그럼 안 되잖아. 얼굴도 보여주고 그래야지. 엄마나 아빠나 이제 노인네라고. 얼마 안 있어 죽을 텐데.”
하루코는 하마터면 정종을 뿜을 뻔했다. 그리고 이쿠코의 이런 말투가 ‘천사’의 징표라고 생각했다.
가게 구석에 있는 조그만 텔레비전 — 진짜 구닥다리다. 처음 이 가게에 왔을 때 이쿠코가 “와, 저것 봐! 프로그램은 요즘 거야” 하고 감격했을 정도다 — 에서 가요 프로그램이 흐르고 있다. 볼륨을 끈 탓에 소리는 나지 않는다. 텔레비전은 높은 선반에 놓여 있고 리모컨도 없어서, 채널을 바꿀 때에는 주인아저씨가 우산을 사용한다. 그래서 텔레비전 아래에는 늘 우산이 세워져 있다.
“구마키 씨는 잘 지내?”
이쿠코가 묻자 하루코는 “잘 지내”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 얘긴 하지 마. 보고 싶어지잖아.”
이쿠코는 어이가 없다.
이쿠코는 하루코를 심각한 연애의존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연애용’ 가슴(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그렇다는 말이지만)이 자기 몫까지 하루코에게 가버렸다고 생각한다. ‘지식욕’ 같은 것도.
실제로 이쿠코는 공부를 싫어했다. 학교는 좋아했지만, 화단에 물을 주고 토끼를 보살피고 당번 날 칠판을 지우고,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다친 아이를 보건실에 데려가는 일(이쿠코는 줄곧 보건위원이었다)이 좋아서였지, 공부는 싫어했다.
이쿠코 눈에 보이는 하루코는 언제나 공부벌레였다. 어렸을 때, 자매에게는 과외선생도 있었다. 그러나 하루코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진해서 학원에도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유학을 떠났고, MBA라는 학위를 따왔다. 요즘에는 라틴어 공부도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이쿠코가 여기 있어줘서 다행이지, 뭐.”
커다란 가방 — 그것은 이누야마 집안 둘째 딸의 트레이드마크다. 온갖 것이 다 들어 있다 — 에서 지갑을 꺼내면서 하루코가 말했다.
“또 알지도 못하는 사람 따라갔으면 어쩌나 했는데.”
이쿠코가 어깨를 으쓱한다.
“이제 그런 짓 안 해. 해봐야 별거 없잖아.”
그렇게 말하고서 이쿠코는 스툴에서 내려왔다. 하루코 잔에 일 센티미터쯤 남아 있는 술을 보고는 홀짝 마셔 치웠다.
구마키 게스케는 이누야마 하루코를 사랑하고 있다. 물론 사랑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주제넘을지도 모르지만, 애정이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집에도 있는데, 하면서 하루코가 못마땅해하는데도 들고 온 목제 스테레오에서 — 묵직한 소리가 나서 마음에 든다 — 콜트레인이 흘러나오고 있다. 구마키는 재즈를 좋아한다. 그것도 스탠더드 재즈의 조화로운 악기 소리를 좋아했다.
방은 난방이 들어와 따뜻하고, 테이블에는 다 갠 빨래가 놓여 있다.
구마키는 하루코에게 두 번 프러포즈를 했고, 두 번 다 거절당했다. 하루코는 결혼에 별 의의를 못 느낀다고 한다. 앞일은 알 수 없다, 당신이나 나나 언제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평생을 같이하겠다는 약속 따위는 애당초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면서.
구마키는 히죽 웃는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하루코는 일편단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도 그렇지, 하고 구마키는 연필을 깎으면서 생각한다. 구마키는 원고를 연필로 쓴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연필을 모두(일고여덟 자루가 있다. 녹색 잠자리표 HB다) 뾰족하게 깎는 작업을 좋아한다. 나무에서 풍기는, 마음이 차분해지는 그윽한 냄새.
어젯밤에도 하루코는 무척이나 정열적이었다. 함께 산 지 2년이 지났는데, 하루코의 정열은 조금도 식지 않는다. 구마키는 하루코의 향수 냄새가 코끝을 스친 것 같아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쉰다. 그러나 그것은 연필 냄새,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하얀 원고지였다.
시계는 밤 열 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하루코는 좀 더 늦어야 들어올 것이다. 늦는다고 한 날이면 그녀는 정말 늦게 들어온다.
구마키가 지금 쓰고 있는 원고는 의뢰 받은 일이 아니다. 써서 어느 출판사에든 들고 가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마감 날짜가 없다. 어느 자동차 레이서의 — 재능은 있는데,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레이스를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던 남자의 — 얘기를 다룬 논픽션으로, 구마키는 지난 반년 동안 이 일에 매달려 있다.
“재미있어, 그거?”
이 일을 막 시작했을 때 하루코는 그렇게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어서, “응” 하고 대답하자, 하루코는 눈이 사르르 풀리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꼭 써야겠네.”
포기도 격려도 아닌, 그러나 애정만큼은 확실하게 담긴 여느 때의 말투로.
구마키는 기억과 감상을 떨쳐낸다. 노트를 펼치고 머리를 업무용으로 전환한다. 낮에 청소기를 돌리기는 했지만, 책과 옷가지와 운동기구 — 덤벨과 복근 운동을 위해 발을 눌러주는 보드 — 와 진과 위스키와 소주 병, 그리고 하루코가 취미로 모으고 있는 포스터 액자가 사방에 널려 있는, 창문으로는 요요기 공원이 보이는 하루코의 아파트에서.
“기가 막히다. 너, 아직도 그러고 사니?”
생일날 밤에 있었던 사건의 전말과 옛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 얘기를 하자, 하루코는 그렇게 감상을 말했다.
“세상을 우습게 여기는 건 좋지만, 이쿠코 너도 이제 진짜 남자 친구를 찾아야겠다.”
자매는 장소를 아오야마에 있는 바로 옮겨, 달짝지근한 리큐어를 하나하나 마셔보면서 대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상을 우습게 보다니, 그런 거 아니야.”
이쿠코는 싱긋 웃으면서 반격한다.
“그래도 나는 언니의 그런 사고방식이 좋더라.”
그러고는 불쑥 하루코의 볼에 키스했다.
“남자한테 해야지, 이런 건.”
하루코가 그렇게 말하자, 이쿠코는 왠지 신이 나서, “왜?” 하고 묻고는 하루코의 볼에 다섯 번이나 더 키스했다. 하루코는 떠밀려 엉덩이가 절반은 스툴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이쿠코는 만족하면서 목이 긴 잔을 비우고 새 잔을 주문한다.
“이번에는 빨간 걸로”
하며 Marie Brizard를 가리킨다.
“나도.”
그리고 둘은 이쿠코에게 전화를 건 옛 친구와 그 남자와의 관계를 도마에 올렸다.
헐뜯기 게임은 세 자매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게임이었다. 주변 인물의 처신이나 이런저런 신문 기사에 대해, 셋이서 있는 대로 헐뜯는다. 그것은 게임이었다. 말이 점점 과해지고 욕이 튀어나온다. 누구 하나가 웃을 때까지 계속한다.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한 놀이. 셋은 그 게임의 의미를 그렇게 말한다.
실내는 어둡고, 조그만 양초의 불빛이 흔들리고 있다.
“널 보면, 내가 엄청 나이를 먹은 것처럼 느껴져.”
하루코는 그렇게 말하고, 물방울이 맺힌 차가운 잔을 들어 달달하고 붉은 술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