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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05. 2018

05. 배워서 남 줘라.(마지막 회)

<다시, 장인이다>



결국 최고의 지위에 올라섰지만, 장인의 길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최고의 숙련인 또는 전문가로서 장인들에게는 더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었다. 장인의 지위는 이들로 하여금 최고라는 자존감과 자신의 분야에 대한 사명감을 더욱 확고히 갖게 했다. 장인이 되었다는 것은 원칙을 고수하면서 철두철미하고 정확하게 일을 수행하는 최고의 숙련인 또는 전문가가 된 것을 의미했다.

장인이 됨으로써 자신의 직업 분야에서 본보기가 되어 기술을 전수 또는 공유하여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도 갖게 되었다.

더 크게는 자신의 일을 통해 국가와 사회 공동체에 가치있고 의미 있는 기여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감까지 지게 되었다. 한마디로, 장인으로서의 길은 필연적으로 계속 걸어가야 할 무한지대일 뿐이었다.

장인들에게 있어 새로운 길은 나눔으로 구체화한다. 나눔은 오히려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한 자극제가 되었다. 자기가 가진 지식을 나누어 주어야 자신이 이미 가진 지식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또 추구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박병일 명장은 이런 지식의 공유를 통해 자기 자신도 더욱 성장하고자 했다.

박병일
: 제 공부의 핵심이 뭐냐 하면 제가 가진 걸 남을 주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추구하고 버리고, 또 추구하면 또 버리고, 이렇게 계속 저를 버리고 또, 또, 또 이것이 저를 튼튼한 성으로 만들었어요.
나름대로 퍼 주다 보니까 제 실력을 제가 보충을 했죠. 그리고 많은 것을 얻게 되니까… 만약에 제가 안 퍼 주고 그때 아까워가지고 지금 돈으로 만들려고만 준비했다면 아마 저도 잊힌 기술자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새 저를 그렇게 비난했던 동생에서부터 요새는 하는 말이 ‘존경합니다’로 바뀌었어요. (302쪽)
장원섭, 《장인의 탄생》, (서울: 학지사, 2015) 중에서

장인은 이처럼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사명감을 갖는다. 그것이 처음부터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또는 어느 순간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게 되고 이에 따라 자신의 일을 더 널리 알리고 후세에 이으려고 애쓴다.

베풂의 가치를 갖는다는 점에서 장인의 배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스 윤리학》에 등장하는 실천적인 지혜 ‘프로네시스(Phronesis)’로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은 “신중한 판단으로 인도하고, 각각의 상황에 적절한 행동을 취하게 하며, 가치와 윤리에 의해 인도된다. 프로네시스는 훌륭한 장인의 덕목인 자신의 기술을 완벽하게 하려는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다”(野中郁次, 2010).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장인의 프로네시스가 일하고 배우는 그들의 삶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장인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많은 이는 장인의 일에 대한 태도가 스승으로부터의 철저한 훈련을 통해 또는 스승의 롤 모델을 통해 형성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의 장인들이 가진 일의 가치는 도제의 공동체에서 배워서 형성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최고의 지위에 오른 이후에 그들이 그런 가치를 실천하였다. 교육의 결과라기보다는 일의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과 최고의 위치에서 얻은 사회적 기대가 그들을 베풂의 가치로 이끌었다.

한마디로, 장인은 정상을 경험하고 고원에서 살아간다. 그러고 나서는 자신의 절정 경험을 다른 사람도 갖기를 바라는 선의로 그것을 후배, 동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준다. 자기와의 싸움을 통한 지속적 성장과 절정 경험으로부터 고원에서의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나눔과 베풂의 과정을 걷는다. 이렇게 정상의 경험과 고원에서의 삶이 일과 배움의 과정 속에서 서로를 강화하며 나눔과 남김의 가치 지향성을 더욱 상승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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