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라>
사랑한다는데
서로 아는 게 없고
만나서도
핸드폰과 넷이서 사귄다.
안 그래도 덧없는 인생
사랑만은
덧없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슨 말을 할지 모를
당신에게
그 재밌는 연예인 얘기도 하지 말고 친구 얘기도 하지 말고 내 얘기를 하라고?
내 무슨 얘기?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다.
Family, History, Issue. 이 세 가지를 말하면 된다.
매우 간단하지만, 이 간단한 것을 사람들이 그렇게 안 한다.
첫째, Family.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라. 부모 생존 여부, 형제 수, 직계 가족과 직계 가족에 영향을 미치는 친척들에 대한 정보를 가볍게 주고받으면 된다. 너무 진지하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얘기해 주는 거다. 할머니는 오빠를 좋아하고 엄마는 돈을 좋아하고 아빠는 여자를 좋아하고 나는 가족 중 누구를 좋아하고 누구랑 친하며 누가 불편한지 등등. 소품으로는 가족사진이나 앨범을 추천한다. 다들 이 정도는 이야기하지 않나 싶지만, 생각보다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거나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그냥 우리 얘기나 하자.”
“뭐 좋은 이야기라고 그런 이야기를 꺼내.”
그런데 가족에 대한 얘기를 나누지 않으면 러브 스토리는 진전이 안 된다. 서로에 대해 이해가 잘 안 된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연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맞는 생일, 여자는 잔뜩 기대를 한다. 나를 위해 온전히 빼놓은 시간, 맛있는 식사와 아름다운 꽃과 정성스런 선물, 그리고 촛불 켠 케이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그의 뚫어질 듯한 시선……. 사랑한다면 그 정도는 준비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웬걸, 생일 선물이랍시고 준 상자를 열어보니 마우스 하나만 덩그러니 들어 있다. 꽃다발도 케이크도 없다. 특별한 날이니 맛있는 거 사준다며 데려간 곳은 순댓국밥집이다.
“오빠, 나 사랑하는 거 맞아?”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화이트데이 즈음에 헤어지는 연인이 적지 않다.
기념일에 대한 기대치가 다르고, 다른 만큼 실망하고, 실망한 만큼 분노하여 헤어진다.
나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실인데, 집에서 생일을 잘 안 챙겨주거나 투박하게 챙겨주는 집들이 꽤 있더라. 따뜻한 미역국과 이만 원을 퉁치고 생일 선물과 삼만 원을 퉁치며 그저 그렇게 지내온 사람들도 많다. 생일을 케이크에 촛불 켜고 노래 부르며 보내지 않은 집이 무지 많다는 뜻이다. 그렇게 자란 사람이 갑자기 연인이 생겼다고 해서 정성 들여 고른 선물과 로맨틱한 분위기를 준비하기란 쉽지 않다.
마우스를 선물한 남자의 입장에서는 이처럼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선물은 없는 것이다. 그도 어릴 때 어차피 사야 할 학용품이나 운동화를 선물 받곤 했으니까. 생일 하나만 봐도 모든 가족이 다 다르다. 그래서 상대의 가족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필요 이상으로 서운해하지 않고 서로 조율해 갈 수 있다. 우리 대부분은 가족이라는 배경 안에서 성장하며 희로애락을 경험했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데 가족은 중요한 요소다. 가족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는 사람과 과연 안전하고 지속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두 번째, History.
당신의 역사다. 다섯 살 때, 열 살 때, 열일곱 살 때, 스물네 살 때, 서른 살 때의 당신 이야기를 하시라. 역시 너무 진지하지 않게 편하게 말하면 된다. 다섯 살 때 미끄럼틀에서 떨어져서 입술이 찢어진 얘기 학교 앞 분식점 떡볶이를 좋아해서 아르바이트까지 했던 얘기 전국으로 이사를 다니느라 친구가 없었던 얘기 왕따 당했던 얘기 같은 걸 연대기처럼 들려주는 거다. 어린 시절 어떻게 살았는지, 집은 어떤 모양이었는지, 그때 친구와 무엇을 하면서 놀았는지 이야기해 주면 된다.
남편과 연애할 때 나도 어릴 때 얘기를 많이 했다. 사실 그와 나는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살았다. 남편은 아기 때부터 그 동네에 살았고, 나는 열한 살 때부터 살았다. 집이 망하면서 이사를 하게 됐는데 그곳이 남편이 살고 있던 동네였다. 이사를 와서는 어느 교회를 다닐지 선택해야 했다. 여러 교회 가운데 나는 남편이 다니던 곳을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 얘기를 하다 보니, 뭔가 우리의 사랑이 그 옛날에 이미 운명처럼 정해져 있었던 것만 같았다. 우리 집이 망한 게 결국 너를 만나기 위함이었다며 의미를 부여하고 신기해했다. 이런 것들이 사랑의 연대를 깊게 하는 둘만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
세 번째, Issue.
당신 삶의 진실 혹은 비밀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다. 편하게 이야기했던 Family와 History의 숨겨진 진실이라고 할까. 할머니가 오빠 좋아했던 것, 남아선호사상이 정말 심했던 것, 그래서 중2 때 집 나갔던 것, 아빠가 여자 좋아하는데 그 여자가 엄마 아닌 것, 그래서 엄마는 돈을 좋아하는 것, 우리 가족은 말이 없는 것……. 당신의 삶에서 묻어두었던 이야기, 말하면 화나고 눈물 나고 창피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꺼내는 단계다. 주의할 점은, 적어도 만난 지 6개월은 지나서 서로 기본적인 라포(rapport)가 형성된 다음에 꺼내는 것이 좋다. 이슈란 어찌 보면 서로가 감당해야 할 짐이 되는 이야기다. 보다 진전된 관계로 가게 된다면, 당신 아버지의 빚이 삼억 원이라는 이야기는, 당신 오빠의 장인어른 빚이 삼억이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