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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11. 2018

01. 백지보다 오답이 낫다.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실수를 많이 해봐야 배우는 것도 많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실수는 죽어도 하기 싫어. 괜히 나섰다가 실수하느니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지. 그러면 어쨌든 중간은 되지 않겠어? 나중에 제대로 배우면 되지.’ 실수나 실패가 쉽사리 용납되지 않는 우리 현실 속에 만연한 생각이다. 분명히 잘못된 생각이다. 제대로 배우려면 실수를 제대로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실수란 자신감 있는 실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확신을 가지고 저지른 실수나 오답이 나중에 바로잡히게 되면 훨씬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고 더 오래 지속된다. 즉 과감하고 자신 있게 틀려야 나중에 더 잘하게 된다. 
  
실수의 긍정적 측면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컬럼비아대학의 자넷 멧칼프(Janet Metcalfe)와 리사 손(Lisa Son) 교수 등이 진행한 간단한 실험을 통해 왜 그런지 알아보자. 사람들에게 문제를 내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틀릴 수밖에 없는 어려운 문제다. 모르면 답을 쓰지 않아도 된다. 만일 답을 적었다면 자신이 적은 답에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답에 대한 확신의 정도에 따라 상중하로 그룹을 나눈다. 답을 아예 쓰지 않은 그룹까지 포함해서 총 4그룹이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이 4그룹 모두에게 정답을 알려준다. 그리고 다시금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그 정답을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 관찰했다.
  
누가 정답을 가장 잘 기억해냈을까? 자신의 오답을 확신했던, 다시 말해 자신 있게 틀렸던 그룹이다. 시험문제가 아닌 다른 형태의 일에 있어서도 이러한 결과는 일관되게 관찰됐다. 즉, 일이든 공부든 자신 있게 틀린 경우 이후에 바로잡아 준 지식이나 행동이 가장 잘 유지되었다. 그렇다면 아예 답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시험으로 치자면 백지를 낸 것이고 일로 치자면 아무런 시도를 하지 않은 경우다. 이때는 바로잡은 정답이나 정확한 행동을 기억해내는 정도가 자신 있게 틀린 그룹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밴더빌트대학의 리사 파지오(Lisa Fazio)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한 이유를 잘못된 기억이나 생각이 바로잡힐 때 사람은 그일에 훨씬 더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를들어, 아인슈타인의 고등학교 성적이 안 좋았다고 굴뚝같이 믿었던 사람과 그저 평범한 수준이었다고 어정쩡하게 믿었던 사람에게 ‘아인슈타인이 실제로는 우등생이었다’라고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줄 경우, 전자가 후자보다 그 사실을 훨씬 더 잘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자는 “어? 그게 아니었어?”라고 하면서 눈과 귀를 훨씬 더 쫑긋 세우기 때문이다. 이를 주의의 포획(attentional capture) 효과라고 한다.
  
실제로 자신감 있게 무언가를 저질러 약간의 실수를 한 이후에 훨씬 더 나은 성과를 보이는 현상들이 목격된다. 그러니 부담 없이 자신 있게 실수할 수 있는 심리적∙물리적인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그 환경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대한 답은 이미 앞에 나와 있다.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면, 이런 자신감 있는 실수가 허용되지 않고 미지근한 시도나 혹은 그 시도조차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이른바 정답이 주어지면 어떻게 될까?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려는 활력이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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