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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11. 2018

02. 야근이 일을 그르치는 이유?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상사가 다가와 일거리를 한아름 안겨주고는 한 마디 남기고 유유히 자리를 뜬다. “내일까지 가능하지? 부탁할게.” 울며 겨자 먹기로 야근에 돌입한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도 퇴근이 늦어지는 상사나 동료의 눈치를 보느라, 혹은 습관적으로 야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직장인이라면 이런저런 이유로 야근을 해보았을 것이다.

야근은 좋지 않다. 그 다음 날의 업무 효율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또한 방만한 일처리가 습성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상식적인 측면보다 더 나쁜 측면이 있다. 야근은 자신감을 과도하게 부추기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생각보다 일이 잘 안 풀리는 상황을 자초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는 자신감도 떨어진다. 야근이 지니는 의외의 부작용이다. 그 과정을 한번 알아보자.
  
시간은 별로 없는데 일이 닥친다. 야근이 시작된다. 몰입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이 몰입감은 심지어 때로는 내가 일에 열중하고 있다는 은근한 뿌듯함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이때의 몰입감은 사실 긍정적 몰입이 아니다. 중간점검의 시간을 갖지 못해 일을 그르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국 다트머스대학의 세안 강(Sean Kang) 교수와 UC 샌디 에이고대학의 할 패슬러(Hal Pashler) 교수의 연구를 보자. 연구진은 그림의 작가를 판단하거나 단어를 외우거나 특정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들을 사람들에게 시켜보았다. 단, 같은 종류의 일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조건을 달리했다. 어떤 사람들은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중간에 이탈하지 않고 몰입해서 하도록 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밀집(massed) 된 수행 혹은 밀집 공부라고 한다. 쉬운 예로 벼락치기를 떠올리면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하는 중간중간에 공백을 두게 했다. 또는 그 중간에 다른 종류의 일을 하게끔 했다. 일처리에 사용된 시간의 총량은 동일하다. 그 결과는?
  
대부분의 경우 밀집해서 작업한 경우 일의 정확도나 마무리에서 더 저조한 결과가 나왔다. 수치로 표현하자면 밀집된 작업의 경우 마무리 점수가 100점 만점에 60점 정도였고 공백을 둔 경우는 70~80점 정도였다. 연구와 조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략 10~20% 정도의 차이가 난다.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내가 그 일을 얼마나 잘 해낼까?’ 하는 확신에 있어서는 밀집된 작업이 공백 있는 작업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수치로 비교하자면 밀집된 작업의 경우에는 확신감이 100점 만점에 80~90점 정도로 나타나는 반면, 중간에 공백을 둔 횟수가 많은 경우에는 70점 정도로 10~20% 정도 더 낮게 나온다.
  
결과적으로 일의 성공적인 마무리와 자신감을 모두 고려하면 밀집된 작업의 경우 자신의 예측과 실제 일의 수행 사이의 격차가 훨씬 더 크게 벌어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격차만큼 우리는 낭패를 본다. 학창시절의 시험공부라면 낭패라고 해봐야 내가 느끼는 당혹감 정도겠지만 실제로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그 차이가 커지면 나와 조직 양쪽 모두에 큰 피해를 끼칠 수 있다.
  
그러면 왜 밀집된 작업에서는 확신감과 실제 수행 사이의 괴리가 커질까? 되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일의 중간중간에 빈 시간이나 공간이 끼어들게 되면 그 일에 다시 착수하면서 직전까지 했던 일을 일정 부분 다시 떠올려야 한다. 우리는 그때 자신의 일에서 허점과 빈틈을 발견한다. 벽돌을 쌓는 단순한 일도 중간에 잠시 허리를 펴고 쉬는 시간을 가질 때 삐뚤어진 부분이나 기운 곳을 찾아낼 수 있는 법이다. 이렇게 그일의 최종 결과에 대한 자신감 혹은 확신과 실제 일의 마무리 정도의 간격을 좁혀나가면서 사람은 더 정확해지고 일의 수준도 높여간다.
  
일을 하다 보면 ‘될 것 같다’ 혹은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꽤 달콤한 순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느낌이 우리를 배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시간에 쫓길 때의 몰입은 사실 진정한 몰입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야근의 부작용이 야기되는 대표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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