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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12. 2018

04. 숫자와 인간심리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많은 커피전문점들이 고객 유지 전략으로 ‘10잔 마시면 한 잔 무료’ 쿠폰을 활용한다. 그 쿠폰들 중에는 총 12칸 중 처음 2칸의 도장이 미리 찍혀 있는 게 있다. 이것은 손님을 또 오게 하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다. 실제로 컬럼비아대학의 란키베츠(Ran Kivetz) 교수 연구진은 이런 쿠폰을 받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10개의 빈 칸을 채워야 하는 사람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커피를 구매한다는 것을 관찰했다.

여기까지는 꽤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마지막 남은 몇 칸을 더 빨리 채우도록 하려면 정반대 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뉴욕대학의 안드레아 보네찌(Andrea Bonezzi) 교수와 노스웨스턴대학의 미구엘 브렌들(Miguel Brendl) 교수 등은 인간이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초반부와 후반부에 각기 다른 메시지에 더 강하게 동기가 부여된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기부 행위, 시험지 채점 등 다양한 일들에 있어서 처음에는 이른바 ‘지금까지 얼마나 했나’ 식의 메시지에 사람들은 더 강하게 자극받았다. 앞에서 말한 커피 쿠폰의 미리 채워진 두 칸 같은 경우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의 힘은 약해진다. 후반부에는 ‘앞으로 얼마나 더 해야 하는가’와 같은 메시지에 사람들이 더 강한 동기를 느끼고 하던 일에 박차를 가한다. 그러니 쿠폰의 10칸 중 ‘무려 8칸이나 찍었네’라고 계속 생각하게 내버려두기보다는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고객에게 ‘이제 겨우 2칸 남았다’고 다시 알려주는 게 좋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얼마나 했나’에 관한 메시지만 지속되는 가운데 후반부에 돌입할 경우 아무런 메시지를 듣지 않고 그 일을 했던 사람들보다 오히려 덜 열심히 하게 된다는 결과가 관찰됐다. ‘아, 내가 이만큼이나 했구나’ 하는 일종의 ‘안이함’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개별 행동이나 칸을 기수가 아닌 서수로 표현한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이 초반과 후반부에서 모두 잘했고 결과도 가장 좋았다는 점이다. 일례로 ‘세 번째 기부’ 혹은 ‘여섯 번째 채점’ 등의 메시지에 더 나은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이는 상황을 서수로 묘사할 때의 이점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과 두 개 다음에 배가 있을 경우 그 배는 기수로는 3이지만 서수로는 세 번째가 아니라 ‘첫 번째 배’가 된다. 같은 집합이라도 기수로 표현하는 것보다 서수로 표현하는 것이 집합의 구성원들을 훨씬 더 독립적으로 취급하게 만든다. 일로 치자면 하나하나가 분명히 다르게 구분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똑같은 일이라도 질적으로 다른 일에 임하는 자세가 갖춰지고 뭐든 빨리 잘 해내게 된다. 일례로 ‘OO차 세계 대전’ 혹은 ‘OO차 경제개발’ 등 기억에 남는 역사적 문구들도 그런 표현의 일환이다.

사실, 회식의 경우에도 “몇 시까지 있자”보다는 “몇 차까지 가자”라고 할 때 더 많은 직원들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게 된다. 서수는 같은 일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과 화룡점정이라는 말 역시 초반부와 후반부를 서수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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