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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13. 2018

06. 양초의 경험을 이용한 조명 디자인

<행위 디자인 씽킹>



불어서 끄고 싶어지는 양초의 경험을 이용한 조명 디자인, Hono

어포던스(affordance), 행위 유발성란 본디 생태심리학에서 사용하는 개념이었지만 미국의 인지심리학자 도널드 노먼(Donald A. Norman)이 어포던스라는 용어를 통해 ‘사물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결정하는 근본적인 성질’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행위를 유도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어포던스는 연속된 행위를 무리 없이 실현한다는 관점에서, 행위 디자인의 중요한 개념으로도 통용되고 있다. 형태를 통해 행위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은 국가와 문화를 초월한다. ‘무심코 이렇게 하고 싶어지는’ 행위는 만국 공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케이크에 꽂은 양초를 불어서 껐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느다란 양초의 끝에 불이 붙어있으면 입김으로 불어서 끄고 싶어진다. 형태를 통해 행위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은 국가와 문화를 초월한다.

‘Hono’는 일본어로 불꽃을 의미하는 ‘호노(炎)’라는 단어로 이름 지은 제품이다. 누구나 케이크에 꽂은 양초를 불어서 껐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느다란 양초 끝의 뾰족한 부분에 불이 붙어있으면 후 불어서 끄고 싶어진다. 그런 식으로 무의식 중에 몸이 기억하는 행위를 유도하고자 시도하게 되었다.

‘Hono’는 2005년 이탈리아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를 위해 만든 기술 시제품이다. 봉의 끝부분에서는 불빛이 흔들린다. 진짜 불꽃의 흔들림을 수치화하여 알고리즘을 제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쪽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서 구멍 안쪽 센서마이크의 마이크로 컴퓨터가 그곳을 통과하는 숨결의 주파수만을 감지한다. 입김을 불면 특정한 주파수의 음역이 일정량을 넘어서게 되고, 프로그램이 따라 불이 꺼지도록 고안된 장치이다. 입김의 강약에 따라 불이 꺼지기도 하고 꺼질 듯이 깜빡이기도 하는 실제 양초의 메타포(metaphor)인 셈이다.

사진출처: www.metaphys.jp


사진출처: www.metaphys.jp


이탈리아에 갈 때 나는 ‘Hono’의 시제품 70개를 가져갔다. 처음에는 ‘Hono’의 구조에 대해서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만일 ‘입김을 불면 불이 꺼진다’고 설명해 버린다면 이 제품을 실험하는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Hono’를 건네자 모두가 끝쪽에서 흔들리는 불빛에 주목했다. 한 사람이 거기에 대고 입김을 불었을 때는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Hono’를 통해 양초에 관한 체험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제품이 노리는 바였다. 일단 입김을 불면 10초 정도 불빛이 꺼졌다가 다시 불이 들어온다. 이 10초라는 시간은 불이 꺼져버린 탓에 어안이 벙벙해진 수 초, 그리고 다시 불을 켜기 위한 행동을 하기까지의 수 초간을 더 한 평균적인 수치이다. 불을 켜기 위해 ‘Hono’를 만지면 마치 짠 것처럼 다시 불이 들어오므로 누구나 두 번 놀라게 된다. 이처럼 사람의 체험을 바탕으로 행위를 예측하고 앞서가는 실험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입김을 불어서 불을 끈 뒤에는 다들 빙그레 웃음 짓곤 해서 ‘스마일 메이커’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Hono’가 대단히 재미있는 제품으로 호평받아서인지, 한산했던 첫날의 상황과는 달리 마지막 날까지 미술관을 방문하는 관람객이 점점 늘어났다. ‘거기에서 재미있는 뭔가를 하는 모양이다’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관람객이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웹사이트에 관련된 글이 다수 게재되거나, 입소문을 타고 보러 오는 사람들까지 생겨나면서 엄청난 성황을 이뤘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 역할을 알 수 있고 계획된 방식대로 다루고 싶어지는 것, 이것이 바로 어포던스 디자인의 특징이다. 직감적으로 사용법을 알 수 있다면 편리한 점들이 아주 많다. 직감을 통해 사용법을 알 수 있게 된다면 실패하는 일 없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앞서 예로 들었던 펜의 경우, 왜 우리는 망설임 없이 펜 끝을 종이에 가져다 대게 될까? 페트병은 어째서 잘록한 부분을 잡고 싶어지는 걸까? 사용자가 ‘나도 모르게 이렇게 하고 싶다’고 느끼도록 하는 형태는 우리 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매일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행위 디자인에 활용할 수 있는 커다란 힌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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