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폭력>
저자 주
주로 여성들에게 경험담을 들은 관계로 이 책에서 언어폭력의 대상(피해자)을 언급할 때 여성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이 절대 여자는 남자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단지 제가 남성들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을 뿐입니다. 독자 여러분 중에 남성이면서도 관계를 개선하고 상대방에게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수없이 노력한 분, 이 책에 나온 여성들과 자신의 입장이 같다고 느껴지는 분은 본문에 나온 ‘남성’을 ‘여성’으로, ‘여성’을 ‘남성’으로 바꿔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언어폭력이 생각이나 태도에 미치는 영향은 자기 자신 및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피해자의 믿음을 왜곡시킨다. 그러나 인터뷰에 응한 여성 모두가 그것을 말로 분명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왜곡된 믿음이 너무 깊이 박혀 오히려 그것이 실제라고 믿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당하는 일의 실체가 언어폭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아래에 나열된 믿음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었다.
●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잘 설명했다면 나의 질문이나 생각 때문에 그가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 나의 이해력에 문제가 없었다면, 그가 말한 것처럼 일을 ‘잘못’ 받아들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가 무엇인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 내가 무능하지 않았더라면 — 말을 잘못 이해하거나 별것 아닌 일을 크게 만드는 것 등 — 이렇게 상처받고 고통스러울 일도 없었을 것이다.
● 내가 진실하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그 남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상대는 직장 동료나 친구에게도 나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행동하며, 그들은 그것을 문제 삼지 않으므로 문제가 있는 쪽은 나다.
● 나에게 뭔가 결핍이나 결함이 있기 때문에 쓸데없이 힘들어하는 것이다. (이때의 결핍이나 결함은 구체적으로 특정된 것이 아니라, 셀 수 없는 비난으로 생긴 ‘막연한 느낌’이다.)
흥미롭게도 가해자가 파트너를 비난할 때 던지는 말들은 실상 가해자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 피해자가 인용한 남편의 대사다. “당신은 모든 걸 너무 진지하게 여겨. 당신은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 그리고 당신은 모든 것을 너무 비관적으로 봐.”
그러나 이러한 주장과는 반대로, 언어폭력 가해자의 파트너들은 자신이 겪는 고통의 심각성을 가벼이 여기거나 결정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또한 낙관적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어서 모든 것을 항상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파트너들은 자신이 제대로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그렇지, 분노 폭발이나 비꼬는 투의 깎아내리기가 그녀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가해자들이 깨닫는다면 그런 행동을 멈출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가해자가 하는 말과 행동에 대해 남자라면 다 그러는 줄 알았고, 다른 여성들은 그런 행동을 이해하는데 자기만 배우자(연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언어폭력적인 관계의 원리와 전개 양상을 파악하지 못하는 한, 파트너는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의 실체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많은 파트너가 의사소통을 좀 더 정확하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의사소통을 정확하게 함으로써 좋은 관계를 만들고 행복을 찾고자 하는 파트너의 노력은 모두 곤란한 상황으로 이어지고 만다. 이들이 이해와 친밀감을 기대하며 가해자에게 희망과 두려움을 털어놓을수록, 그는 피해자의 솔직함을 약점으로 인식하고 더욱 우월감을 느낀다. 피해자에게 차갑게 대함으로써 가해자는 통제력이 증가했음을 느낀다.
파트너가 자신의 관심사와 목표에 대해 이야기할수록 가해자는 그녀를 흔들어 놓을 만한 말이나 상황을 만들고, 그녀를 관심사와 목표로부터 멀어지게 만듦으로써 자신의 통제력을 재확보한다. 피해자가 화제를 제시하고 가해자를 대화에 참여시키려고 할수록 가해자는 그녀의 관심 및 그에 따른 우월감을 즐기고 대화를 거부한다. 함께 기뻐해 주리라 여기며 파트너가 더 많은 것을 성취할수록 가해자는 그녀의 노력을 하찮은 일로 만들고 폄하하여 우월감과 지배력을 유지한다. 가해자에게서 이해와 친밀감을 얻으려는 노력을 포기한 파트너가 친구들에게 기댈수록 가해자는 더욱 화를 내고 적대적으로 행동한다. 이러한 역설은 더 성장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고, 관계를 향상시키고자 노력하는 파트너를 어떻게 고통과 혼란에 빠뜨리는지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