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폭력>
저자 주
주로 여성들에게 경험담을 들은 관계로 이 책에서 언어폭력의 대상(피해자)을 언급할 때 여성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이 절대 여자는 남자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단지 제가 남성들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을 뿐입니다. 독자 여러분 중에 남성이면서도 관계를 개선하고 상대방에게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수없이 노력한 분, 이 책에 나온 여성들과 자신의 입장이 같다고 느껴지는 분은 본문에 나온 ‘남성’을 ‘여성’으로, ‘여성’을 ‘남성’으로 바꿔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존 스톨튼버그는 이렇게 말했다. “남성의 학대와 폭력성을 설명하고자 하는 연구는 때때로 변명을 찾는 쪽에 가까워진다. ‘걔가 자란 환경을 봐라. 어떻게 그런 애가 되지 않을 수 있었겠니? 불쌍한 것.’ 그렇게 함으로써 남성의 윤리적 책임 회피가 치료사들에게 정당화되고 학계에서도 인정받는 것이다.”
치유받지 못하는 상담
잭이라는 남성과 결혼 생활을 하는 질이라는 여성이 이 책의 초판을 읽고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왔다.
선생님의 책을 발견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됐어요. 제가 겪고 있는 문제가 아주 분명하게 나와 있었죠.그렇게 명확하게 정의된 자료는 처음이었어요.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늘 알고 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확인받게 되었거든요.
지금까지 제가 본 자료들에는 행복하지 않은 부부관계의 문제가 여자에게 있다고 나왔어요. 여자가 지나치게 남자를 보살피려 하고 너무 집착한다고요. 저도 모르게 이런 주장을 다 믿고 있었더라고요. 부부 관계와 남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지는 것이 여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요.
잭이 저를 탓하고 비난할 때면 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나는 그런 행동 하지 않았어”라고 설명하려고 했어요. 그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깨닫게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가 크고 무지하다 보니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죠. 제가 ‘진짜 좋은’ 여자라면 그를 이해시킬 수 있을 거라고, 폭력적인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저자 주: 이것이 가부장제가 여성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 결과다.)
하지만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는 폭력을 멈추지 않았어요. 여성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실패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문제는 제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설명하지 못하거나, 참을성이 없는 게 아니었고, 그의 학대받은 어린 시절이나 가족 관계도 아니었어요. 문제는 언어폭력이었죠.
제가 잘못해서 학대받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저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었던 거예요.남편은 언어폭력 가해자였고, 문제는 그 사람에게 있는 거였어요. 그걸 확인하고 나니 힘이 나기 시작했어요.
늘 그렇듯이 남편이 제 방에 들어와 비난을 쏟아붓고 책임을 전가할 때, 지식과 자기 확신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던 저는 “그만해, 잭. 나를 혼자 내버려 둬”라고 말했어요. 문지방에 서 있던 남편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꼼짝하지 못하고 서 있더군요. 결혼 후 처음으로 그는 언어폭력을 저지당했어요. 그러고는 방을 나가더니 나중에 다시 나타나서는 굉장히 어색한 말투로 “아까 당신이 그렇게 말했을 때, 마치 게임을 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어”라고 말하더군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충격이었어요. 속으로 생각했죠. ‘뭐라고? 결혼한 지 11년이 됐는데 그 11년 내내 당신은 나랑 게임을 하고 있었단 말이야? 당신에게는 결혼 생활 전체가 나를 지배하기 위한 게임에 불과했구나! 의도치 않게 당신이 당한 것과 똑같이 나를 학대한 게 아니었어. 당신은 의도적으로 나를 통제하려 했던 거야.’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 도움을 받고 싶어.” 남편이 말하더군요. 그 순간, 변화의 기회가 열렸어요. 좋은 치료사를 찾는 일이 중요했죠. 남편은 금방이라도 다시 폭력적인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었어요. 그이가 상담을 받는 데 동의하더군요. 개인 상담을 하는 치료사 중에 좋은 분을 알고 있어서 찾아갔는데, 결론적으로 그분은 커플 치료사로서는 그다지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사회적 성이나 파워게임에 대해 전혀 몰라서 언어폭력이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 이해를 못하고, 언어폭력을 신체폭력보다 하찮은 것으로 보더라고요. 그러려는 뜻은 아니었겠지만, 결국 그분은 저를 희생양으로 만들어버렸어요.
처음에 남편이 언어폭력을 행사한 것에 대해 100% 책임을 인정했는데도 치료사는 문제를 ‘이해’하겠답시고 저희 둘 다에게서 약점을 찾느라 탐정놀이를 했어요. 책에 제 경험하고 똑같은 부분이 나와서 형광펜으로 칠해서 줬는데 그건 거들떠보지도 않더라고요. 마치 “나의 눈에는 아픈 사람인 당신이 감히 어찌 높으신 심리 전문가에게 당신의 문제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려 하느냐. 그건 내 영역이지, 당신들의 영역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한 태도였어요.
그가 남편의 행동 교정안을 내놓았는데, 저도 절반을 담당하게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즉각 물었죠. 제가 왜 남편을 고쳐주어야 하는지, 남편이 아내를 구타하는 커플의 경우에는 어떻게 하는지, 아내의 잘못이 아닌 문제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 책임을 지라는 것인지요.
그러자 그가 말했어요. “아니요, 신체폭력이 있는 경우에는 부부를 분리시키고, 아내에게는 도움을, 남편에게는 폭력에 초점을 맞춘 상담을 제시하죠.”
저는 “언어폭력도 신체폭력과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 왜 저에게 제 문제가 아닌 일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하시는 거죠? 이건 성차별이에요”라고 항변했어요.
“질, 지금 말씀하시는 건 신체폭력의 경우고, 이건 고작 언어폭력이지 않습니까. 신체폭력과 언어폭력은 같지 않아요. 잭이 언어폭력을 저지른 건 사실이지만, 당신도 너무 예민해요. 일반적으로는 잭이 던지는 말 같은 건 그냥 털어낼 수 있어야 해요.”
우리는 서로의 의견이 다른 것에 동의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대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인정했던 저희 남편은 얼씨구나 하고 치료를 그만두었답니다. 자신의 책임을 저에게 전가할 다른 핑곗거리를 찾은 거죠. 아니나 다를까, 언어폭력의 수준이 끔찍할 정도로 심해졌어요. 심리 치료계가 자기 행동의 정당함을 인정해주었다고, 아니 심지어 그렇게 행동하기를 요구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도움을 받으려고 이름을 적어 두었던 심리학자로부터 폭력을 당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렇게 되고 말았어요.
치료사 찾기
내담자가 찾아오면 나는 그들의 대화 패턴이나 언어폭력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듣거나 하는 말이 언어폭력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고 나서 지속적인 치료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언어폭력에 대해 다방면으로 알고 있는 치료사를 추천한다.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결혼・가족・아동 상담사, 정신보건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치료사들이 이 책을 읽고 내담자에게 추천한다.
“상담사(의사) 선생님이 이 책을 추천해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겪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정말 잘 이해해주세요”라고 말하는 편지를 여러 통 받아서 알게 된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추천한 치료사의 이름은 말해주지 않을 때가 많다. 여러분이 훌륭하다고 생각한 치료사가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추천해주기 바란다.
전화, 편지, 이메일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혹시 우리 지역에 언어폭력에 대해 잘 아는 치료사가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나는 기쁜 마음으로 내 워크숍에 참석했던 치료사나 다른 사람에게 추천받은 치료사를 안내해준다. 하지만 그 상담사가 꼭 당신에게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심리 치료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이 사람이다’ 싶은 느낌이 올 때까지 최대한 많은 치료사와 만나보기를 권한다. 다만 나라면 다음과 같은 치료사는 선택하지 않겠다.
● 언어폭력을 신체폭력과 동일한 폭력 행위로 보지 않는 사람(이들은 훈련이 부족하다).
● 가부장제나 권력, 사회적 성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들은 가해자의 문제를 보지 못한다).
●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가해자의 학대 행위에 대한 책임을 어떤 식으로든 파트너에게도 함께 지우는 사람(이런 식의 접근은 피해자를 또 한 번 학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 책에 다 나와 있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런 사람들은 피해자의 경험보다 자신의 ‘전문 지식’을 높게 칠 것이다).
● 내담자를 존중하지 않거나 협력적인 방법을 추구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다. 여러분의 경험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여러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