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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25. 2018

05. 우주와 미지의 물리 법칙

<물리학은 처음인데요>



우주와 미지의 물리 법칙



대폭발 우주는 고에너지 상태
  
지상에 거대한 입자 가속기를 건설하여 고에너지 현상을 만들어 내서 실험하는 방법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 방법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인류가 기초 과학에 할당할 수 있는 예산 안에서 실험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지만, 우주로 눈을 돌리면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현재 우주는 매우 광활해서 거의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 드문드문 천체가 존재한다. 하지만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다. 즉 과거에는 텅텅 빈 공간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옛날 우주는 대단히 작았고, 그곳에 현재 있는 모든 물질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질을 좁은 곳에 밀어 넣으면 온도가 높아진다. 옛날 우주는 현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온도가 높은 뜨거운 우주였다. 이러한 뜨거운 우주가 팽창하여 차갑게 식은 결과 오늘날의 우주가 되었다. 온도가 높았던 우주 초기 상태를 대폭발 우주라고 부른다. 온도가 높다는 말은 입자가 지닌 에너지가 크다는 뜻이다. 즉 과거 대폭발 우주에서는 엄청난 고에너지 상태가 실현되어 있었다.
  
대폭발 우주에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온도가 높아지고 입자의 에너지도 커진다. 그러한 우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려면 매우 큰 에너지를 지닌 입자가 어떤 성질을 지니는지 알아야 한다. 즉 우주의 기원에 접근하려면 물리학의 기초 법칙이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10의 -12승 초 이전
  
기본 입자의 표준 모형은 지상에서 입자 가속기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최대 에너지의 범위 내에서만 확실하게 옳다고 확인된 이론이다. 이를 우주가 시작된 이후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0.000000000001초, 다시 말해 10의 -12승 초다. 그 이후의 우주에서는 표준 모형이 기본 법칙으로 성립한다.
  
표준 모형은 초기 우주가 어떤 상태였는지 알려준다. 현재 우주는 구조가 매우 복잡해서 기본 법칙을 안다 해도 그곳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도저히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초기 우주는 복잡한 구조가 아니었기에 기본 법칙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초기 우주는 어느 곳이나 다 비슷한 상태였다 보니 어떤 입자가 있었고 어떠한 상호 작용을 하는지만 알아내면 그것이 그대로 우주 전체의 특징이나 다름없다.
  
10의 -12승 초 이후의 우주에 관해서는 우주가 아직 단순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시기에 한해, 표준 모형으로 거의 해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고에너지 상태는 표준 모형이 성립하지 않는 영역이므로,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이론만으로 확실하게 알 수 없다.
  
10의 -12승 초란 너무나 짧은 시간이라 우리의 감각으로는 0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이 시간이 없었으면 우리의 우주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 짧은 시간 속에 우주의 모든 비밀이 응축되어 있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기원에 그곳에 있다.
  
이론적으로는 표준 모형을 넘어선 고에너지 상태를 나타낼 수 있는 가설적인 이론을 이것저것 생각해 낼 수는 있다. 그러한 이론이 정말로 올바른 물리 법칙인지는 지상의 실험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우주 초기에는 지상에서 실험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에너지 상태였기 때문에 그러한 가설적인 이론을 우주의 초기 상태에 적용해 보면 된다. 그때 엉뚱한 일이 벌어져서 우리가 아는 우주가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그 이론은 옳지 않다는 뜻이다.
  
  
빛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먼 우주
  
초기 우주를 직접 관찰할 수는 없다. 따라서 아득히 먼 과거의 우주가 남긴 흔적을 현재 우주 안에서 찾아야 한다. 다행히 우주에서는 먼 곳을 관측하는 일이 곧 과거를 관측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정보는 빛의 속도보다 빨리 전달될 수 없으므로, 먼 곳에서 온 정보일수록 옛 우주의 정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빛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먼 장소는 우주가 시작된 지 37만 년 후의 우주다. 그 이전의 우주는 빛이 물질에 가로막혀 똑바로 나아갈 수 없으므로 관측할 수 없다. 이는 마치 구름이 껴서 해가 보이지 않는 것과 같아서, 37만 년 전의 우주를 ‘맑게 갠 우주’라고 한다.
  
우주가 개서 똑바로 나아갈 수 있게 된 빛은 그대로 138억 년 동안 우주를 직진하여 마침내 지구에 도달했다. 이것이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이라 불리는 것으로, 1965년에 발견되었다. 이는 우주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다는 직접적인 증거기도 하다.
  
그 후로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관측이 상세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2009년에 쏘아 올려 2013년까지 운용된 관측위성 플랑크(Plank)는 전에없이 정밀하게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을 측정해 냈다.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에는 맑게 갠 우주 이전의 정보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그래서 초기 우주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우주 초기 요동이 커다란 정보원
  
맑게 갠 우주, 다시 말해 시작된 지 37만 년 된 우주에서는 충분히 기본 입자의 표준 모형이 성립하므로, 그 시점의 정보를 통해 직접 미지의 물리 법칙에 관한 정보를 얻지는 못한다. 만약 직접 그 정보를 얻으려면 우주가 시작된 지 10의 -12승 초 이전을 봐야 한다. 따라서 그 시절의 흔적은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과 기타 관측 결과 속에서 찾아야 한다.
  
현재 우주에 있는 물질 구성이나 우주의 구조를 만들어 내기 위한 밀도 차이 속에는 우주가 막 시작된 시점의 흔적이 포함되어 있다.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이 초기 우주를 조사하는 데 유용했던 주된 이유는 초기 우주의 밀도와 관련 있다.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은 방향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는 맑게 갠 우주에서 장소에 따라 온도가 달랐음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온도 요동’이라고 한다. 온도 요동의 기원은 우주 초기에 있었던 약간의 밀도 차이다.
  
또한 우주 초기에 있었던 약간의 밀도 차이는 먼 훗날인 현재 우주에서 보이는 다양한 구조인 은하, 별, 행성 등이 만들어진 원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최초에 있었던 약간의 밀도 차이를 우주의 ‘초기 요동’이라고 한다. 초기 요동의 양상이 바로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정보원이다.
  
우주의 초기 요동은 10의 -12승 초 이전의 우주에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초기 요동을 분석하는 것이 곧 미지의 물리 법칙을 모색할 유력한 수단이 된다. 입자 가속기를 이용해 직접 물리 법칙을 알아보는 것에 비해 이 방법은 간접적이라서 다소 답답한 면도 있다. 하지만 입자 가속기 거대화의 한계에 부딪힌 현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대체 연구 수단으로서는 유망하다고 볼 수 있다.
  
  
유망한 가설
  
우주의 초기 요동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있는데, 현재 가장 유력한 설은 양자의 요동이 기원이라는 내용이다. 특히 우주가 시작된 직후, 구체적으로는 10의 -38승 초 시점까지 우주가 엄청난 급팽창을 했다는 설이 있다. 이를 우주의 급팽창 이론이라고 한다. 만약 실제로 급팽창이 일어났다면 우주가 왜 이렇게 광대하며 어느 곳에서나 모습이 비슷한지, 다시 말해 그 밖의 가설로는 설명하기 힘든 우주의 여러 성질을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래서 현시점에서 가장 유망한 가설이다.다만 급팽창 이론은 현재 확립된 기본 입자의 표준 모형을 이용한 예언이 아니므로, 급팽창의 원인은 미지의 물리 법칙 속에서 찾아야 한다.
  
만약 급팽창이 일어났다면 최초에 우주가 다소 불균일했더라도 급격한 팽창 때문에 전체적으로 균일해지고, 최종적으로는 모든 장소가 다 비슷한 대단히 일관적인 우주가 완성된다. 하지만 양자의 불확정성 때문에 완전히 균일해지지는 못해서, 극히 미세한 비일관성이 생긴다.
  
이 양자 요동이 우주의 초기 요동을 만들어 냈으며, 그 후에 우주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구조인 은하와 별 등의 기원이라는 것이 현재 이론적으로 가장 유망한 가설이다. 이 가설이 정말로 우주의 진실인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이 가능성을 검증하는 일이 향후 우주론 연구의 커다란 목표 중 하나다.
  
  
우주 관측을 통한 이론 선별
  
만약 급팽창 중의 양자 요동이 우주의 초기 요동의 기원이라면, 우주의 초기 요동을 조사하는 일이 곧 급팽창의 원인을 찾는 일로 이어진다. 급팽창이 있었다 해도 그 원인은 아직 특정되지 않았다. 미지의 물리 법칙에 의한 일이기 때문이다.
  
급팽창이 만들어 낸 양자 요동의 성질은 급팽창의 원인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초기 요동을 예언하는 이론 중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의 온도 요동이나 현재 우주와 맞지 않은 이론은 즉시 부정할 수 있다. 그리하여 현재는 급팽창이 있었다고 가정했을 때, 그 원인을 우주 관측을 통해 어느 정도 선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우주를 상세하게 관측하는 일은 미지의 물리 법칙을 탐구하기 위한 유용한 수단이다. 우주 관측은 입자 가속기 실험과는 달리 자유롭게 상황을 제어할 수 없다. 따라서 되도록 상세하고 정밀한 정보를 대량으로 모아야 한다. 정보를 대량으로 축적하면 모든 관측 결과와 들어맞는 이론을 효율적으로 선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향후 연구에서 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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