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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27. 2018

04. 고급 정보를 캐내는 대화의 기술

<365 월세 통장>




속초의 아파트로 찾아갔을 땐 다행히 세입자를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배당을 신청한 세입자는 차분한 성격의 아기 엄마였다. 나는 세입자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하면서 친근하게 다가가 질문을 건넸다. 동시에 눈으로는 빠르게 내부를 훑어보았다.

“배당 신청하셨어요? 혹시 사시는 데 불편한 점은 없나요? 수리해야 할 곳은 있나요? 난방비는 보통 얼마나 나오나요? 아기 사진이 정말 귀엽네요. 집에 아기가 있으니 들어가진 않아야겠어요.”

그녀는 집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는데 주방이 조금 낡은 편이고, 아기가 있다 보니 벽지와 장판이 엉망이라고 했다. 계속 대화를 나눠보니 이 집에 계속 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점유자의 배당 신청은 매각물건명세서에서 확인할 수 있고, 아파트 상태는 눈으로 훑어보기만 해도 대강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집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선 반드시 대화를 시도해봐야 한다. 만약 말이 통하지 않고 강경하게 나오는 점유자라면, 명도를 할 때 시간이 많이 걸리고 까다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 인터넷으로 배당에 대해 알아보고 신청하는 세입자가 많아졌다. 꼬마 아파트는 보증금액이 많지 않아서 배당을 신청하면 거의 전액 돌려받는다. 배당을 받으려면 점유하던 집을 낙찰자에게 양도했다는 낙찰자의 명도확인서가 필요하다. 따라서 경매 절차를 빨리 끝내고 배당을 받기 위해 세입자 대부분은 입찰자의 질문에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답해준다.

나는 세입자뿐만 아니라 아랫집 사람에게도 찾아가 누수에 문제가 없는지 물어보았다. 한번은 지인이 리모델링이 아주 잘되어 있는 집을 높은 가격에 낙찰받았다. 나중에 집에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니 누수로 방과 욕실 배관을 수리한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현장조사 때 만난 선순위임차인이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보증금을 배당받고 나가기 위해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곧바로 문제가 생기진 않았지만, 6개월이 지나자 다시 누수가 발생했고 아랫집 천장 전체에 곰팡이가 슬어 공사비가 꽤 많이 들었다고 했다.

“안녕하세요. 윗집이 경매에 나와서 낙찰받으려고 하는데요. 혹시 윗집 누수 문제는 없나요? 있다면 수리비를 감안해서 낙찰받고 해결해드리려고요.”

경험상 이렇게 질문하면 아주 흔쾌히 답을 해준다. 내가 먼저 나서서 공사를 해주겠다고 하는데 기꺼이 답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고 공사의 범위가 크거나 문제가 재발할 것 같으면 당연히 입찰을 포기한다. 다행히 아랫집에 사시는 할머니는 별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이뿐만 아니라 의외로 아파트 인근에 있는 수리업자들에게 고급 정보를 얻을 때도 많다. 누수나 결로, 곰팡이 등의 문제가 자주 생기는 아파트는 소문이 나기 마련이다. 예전에 아파트 수리를 맡기며 친분을 쌓은 도배업자가 누수 공사를 자주한 집을 귀띔해주어 입찰을 포기한 적도 있었다. 이후 관리실에 들러 관리비를 알아보는 것으로 아파트에서의 볼일을 다 마쳤다.

이제 시세와 수요를 조사할 차례였다. 경매 때문에 중개소를 찾는 투자자들 중에는 그 지역에 거주할 생각이라고 운을 떼며 경매 투자자임을 감추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더 자세한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중개업자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그들은 매수와 매도, 임대 계약을 할 때 수수료를 받는다. 실거주자는 아무리 짧아도 몇 년을 거주하기 때문에 중개업자 입장에서는 그들에게 많은 수수료를 받기가 어렵다.

반면 투자자는 비교적 단기간에 매매와 임대를 여러 번 진행하기 때문에 수수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실제 거주하려는 사람보다 투자자를 더 환영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래서 나는 중개소에서도 경매 때문에 온 투자자라고 당당히 밝히고 아파트와 지역에 대해 상세히 묻는다.

이날도 다행히 꼼꼼하고 성실한 중개사를 만났다. 추후 낙찰을 받으면 계약을 일임하겠다고 하니 더 성심성의껏 상담을 해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오래되긴 했지만 학군이 좋고 가격이 저렴해 꾸준히 수요가 있다고 했다. 내가 발품을 팔아 알아본 정보와 동일했다.

권리나 현장에 큰 문제가 있는 집은 아니었는데도 꼼꼼히 조사를 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며칠 후 나는 직접 확인하고 얻어낸 정보를 믿고 과감하게 입찰가를 적어 제출했다. 그리고 결국 낙찰에 성공했다.
그렇게 부푼 마음을 안고 다시 세입자를 찾아갔는데, 이 집을 사고 싶다는 게 아닌가? 나의 1순위 목표인 단기매매가 곧바로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계약 조건과 방법을 논의하고 이제 자리를 떠나려는데, 그녀는 내가 낙찰을 받아서 다행이라는 말을 건넸다.

경매로 물건이 나오고 난 후 나 말고도 다른 남자 몇 명이 찾아왔었는데, 좀 무섭기도 하고 경매로 나온 집이니 영 찜찜해서 이사를 갈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경매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도 곧 집 앞에 있는 학교에 다닐 예정이고 이사하는 일도 만만치 않으니 가격만 괜찮으면 내게 사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 집을 4000만 원에 낙찰받아서 4800만 원에 매매하기로 했다. 명도와 수리에 비용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시세보다 200만 원 저렴하게 팔았다. 물건 검색과 임장, 입찰을 포함해 일주일 정도 시간을 들여서 각종 비용을 제외하고 나니 매매차익으로만 약 600만 원을 남겼다.

심지어 회사에 휴가를 내고 겸사겸사 들른 지역에서 하루 동안 현장조사를 하고 이뤄낸 성과였다. 즐거운 마음으로 휴가를 떠난 곳에서 일주일 만에 600만 원 정도의 돈까지 벌었으니,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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