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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y 16. 2018

05. 컵라면 개발을 둘러싼 기가 막힌 사연?

<창의력에 미쳐라>



사실일까?
라면이 용기를 보호한다?

고통받는 이의 배고픔을 덜어 주었고,
바쁜 이의 시간을 덜어준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함.
그 수상자, 라면!
최고의 역발상 제품! 그 이름은 컵라면!

‘요리 솜씨 불문!’
‘취사도구 불요!’
‘어디서건 뜨거운 물만 있으면 3분 만에 뚝딱 완성되는 음식!’

이는 모두 컵라면을 가리킨 표현이다.
컵라면은 등장할 당시부터 편리함 때문에 ‘마법의 라면’이라 불리기도 했다. 현재 라면의 최대 소비처는 단연 편의점이라고 한다. 이는 편리함은 물론 다양한 종류 때문이다.

인스턴트 라면은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라는 사내가 개발한 발명품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48세였다. 1957년에 신용조합 파탄으로 전 재산을 날린 안도 모모후쿠는 이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인스턴트 라면 개발에 착수한다. 개발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그에겐 돈도, 노하우도, 인력도 없었다. 그래서 자택 뜰 모퉁이에 작은 창고를 하나 세운 후에 홀로 면(麵) 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면 배합과 스프 제조에 어느 정도 성공한다. 그러나 면의 적절한 건조 방법을 찾지 못해 1년이란 세월을 더 허송했다.

어느 날, 그는 아내가 부엌에서 튀김 만드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다.
“그래, 튀김 원리를 응용해보자.”
고온의 기름 속에 면을 집어넣자 온도 차이로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면이 건조 상태로 바뀌었다. 여기에 다시 뜨거운 물을 붓자 수분이 빠진 구멍 사이로 물이 들어가 잠시 뒤 원래의 부드러운 면이 되는 게 아닌가.

이렇게 만들어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이 바로 ‘치킨 라면’이다. 치킨라면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히트 상품 반열에까지 오른다. 라면은 “들판의 나무 한 그루보다는 숲이 더 번창한다”는 모모후쿠의 신념처럼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러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스턴트 라면은 성장률 둔화와 시장 포화라는 거대 장벽과 부딪힌다. 새로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모모후쿠는 이에 굴하지 않고 또 다른 제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사업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다. 슈퍼마켓 바이어들에게 일본에서 가지고 간 치킨 라면의 시식을 부탁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고 뭔가 망설이는 듯 보였다.

샘플 라면을 담아 시식할 수 있는 적당한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이윽고 그들이 꺼내든 것은 종이컵이었다. 그들은 샘플 라면을 잘게 나눠 종이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후에 포크로 찍어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식을 마친 후에 그 종이컵을 휴지통에 버렸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모모후쿠는 순간 놀라운 영감을 얻었다.



‘서양인들은 젓가락과 밥그릇을 사용하지 않아. 그렇다면 컵 속에 면을 넣어 포크로 먹을 수 있게 만들면 되겠는걸!’

컵라면이라는 새로운 제품을 탄생시킨 금쪽같은 아이디어는 바로 여기서 착안했다.


개발을 둘러싼 기가 막힌 사연

컵라면의 개발 과정은 생각만큼 순탄치 않았다. 이런저런 장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첫 번째 장벽, 라면이 들어갈 용기(그릇)
먼저 도자기와 유리, 종이, 플라스틱, 금속 등으로 만든 용기를 닥치는 대로 수집해 실험에 착수했다. 그 결과, 당시 일본에서 신소재로 출시되고 있던 발포스티롤에 주목하게 되었다. 가벼우면서도 단열성이 높고 경제성도 우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발포 스티롤은 주로 생선을 담을 때 사용하는 상자로 활용되었으며 두께는 무려 2cm나 되었다. 식품 용기로는 도저히 사용할 수 없었다.

라면 용기는 얇고 통기성이 적은 것이어야 했다. 오랜 고민 끝에 모모후쿠는 용기 두께를 2.1mm까지 얇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용기 크기와 형상은 ‘한 손으로 집어 들 수 있는 크기’로 결정해 제작에 들어가려 했으나 당시 일본에는 일체 성형이 가능한 기계나 회사가 없었다.

결국 미국의 한 회사에서 기술을 도입해 합병 회사를 차렸다. 이후에도 컵라면 용기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처럼 컵라면 개발은 라면 그 자체가 아니라 적절한 용기 개발에서부터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두 번째 장벽, 밀도
컵라면 속에 들어 있는 라면의 형태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혹시 그런 경험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자세히 살펴보기 바란다. 힌트를 한 가지 준다면, 라면 밀도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를테면, 컵라면 밀도를 균등히 한 다음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윗부분은 부드럽고 아랫부분은 딱딱한 상태의 라면이 완성된다. 이는 뜨거운 물이 위로 향하고 다소 낮은 온도의 물이 아래에 머물면서 나온 결과다. 이 때문에 그 상태로는 안 된다. 컵 안에서 면이 골고루 익어야 소비자는 라면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모모후쿠는 라면 밀도 문제로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다 튀김을 만들 때 잘 튀겨진 튀김이 자연스레 위로 떠오르는 성질을 발견하고는 이를 응용하기에 이르렀다. 즉, 라면 윗부분은 조밀하게, 아랫부분은 약간 엉성한 형태의 라면을 완성한다. 오른쪽 사진을 주목하라.


세 번째 장벽, 곧잘 망가져 버리는 용기
컵라면이 컵라면으로 존재할 수 있는 핵심 요건은 무엇일까? 바쁜 현대인들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한 끼를 때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 컵라면의 첫 번째 조건은 뭐니 뭐니 해도 ‘스피드’다.

그렇다면 짧은 시간 안에 면이 부드러워져야 하고, 용기가 외부 압력 등으로 인해 쉽게 망가져서는 안 된다. 만약 누수라도 생긴다면 그런 용기에 담긴 라면은 컵라면으로서의 생명을 다한 거나 진배없다. 이런 불안은 개발 초기부터 현실로 대두되었다. 수출 혹은 유통 과정 중에 컵라면 용기가 쉽게 망가져 버리곤 했다.

마침내 모모후쿠가 떠올린 생각은 라면을 용기 속에 떠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앞의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라면 지름을 용기 바닥의 지름보다 크게 만들어 라면을 그 중간에 꽉 고정시키는 중간보지(中間保持) 기술을 완성한 것이다.

라면이 중간에 고정되어 용기의 지지대 역할까지 함으로써 외부 압력에도 용기가 망가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해외로 수출되는 과정에 다소 험하게 다뤄지더라도 컵라면은 쉽게 망가지지 않았다. 이 기술은 실용신안으로 등록되어 예기치 못한 엄청난 부가 효과도 가져왔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사과 상자의 존재 의의는 무엇일까? 사과 보관이나 운반 편의성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알맹이), 즉 사과가 상처를 입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원리를 거스르는 것이 세상에 있다면, 그건 바로 컵라면이 유일하다. 용기 속의 라면은 보호받아야 하는 내용물인 동시에 용기를 안에서 떠받치는 지지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최고의 역발상 제품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개발된 세계 최초의 컵라면 ‘컵누들’은 발매 초반에는 좀처럼 매출이 늘지 않았다. 하지만 야외에서도 손쉽게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편리성 때문에 차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1년 농심이 국내 최초로 사발 형태의 용기면 ‘사발면’을 내놓아 컵라면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직접 끓여야 하는 기존의 봉지 라면과 달리 끓는 물만 부으면 몇 분 안에 곧바로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은 바쁜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 새로운 식사 문화로 자리매김한다. 그런 컵라면! 알고 보니 창의력의 집합체였다.


Think
Critically

1. 위대한 영감은 늘 예상외의 상황에서 나온다.
2. 갖은 장벽과 난관은 역발상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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