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의 질문법>
명절 때는 이틀 정도를 어머님 집에서 동생네 식구들과 같이 지낸다. 우리 식구 넷에 동생 식구 넷, 거기에 어머니까지 총 아홉 명이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처음에는 반갑고 즐겁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피곤이 엄습한다. 거기에 이웃에 사는 조카가 명절이라고 애 둘을 데리고 집에 왔다 가면 난 파김치가 된다. 나는 오랫동안 이게 의문이었다. 명절이라고 해서 내가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음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설거지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텔레비전을 보고, 조카들과 노는 게 하는 일의 전부다.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할까?
내가 생각한 이유 중 하나는 적절한 공간 확보의 실패 때문이다. 너무 좁은 곳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서른 평 남짓인 아파트에 혼자 사신다. 혼자 살기엔 충분하지만 그런 곳에서 아홉 명이 하루 종일 비비고 있는 것 자체가 피곤한 것이다. 만약 집이 훨씬 크고 마당도 있고 산도 있다면 이렇게까지 피곤하진 않을 것이다. 사람에겐 적절한 공간이 필요하다.
공간의 여유만큼 시간 여유도 중요하다. 신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 관해 들은 적이 있다. 한 팀은 시간적 여유가 있고 다른 한 팀은 여유가 없게 만들었다. 이들이 강의를 들으러 가는 중간에 절실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설정해놓고 이들의 반응을 보는 실험이었다. 결과는 뻔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팀은 자발적으로 이들을 도왔지만, 시간에 쫓긴 팀은 모른 척하고 자기 갈 길을 갔다는 것이다. 실험해보지 않아도 충분히 결과를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다. 여유가 있어야 남도 도울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여유는 시간과 돈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간과 돈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의 여유이고, 이는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뭔가 내부에 자기만의 생각으로 꽉 찬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고 싶지도 않다.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 쉽게 결론을 내리는 사람, 선입관과 고정관념에 얽매인 사람,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 공부하지 않으면서 세상만사를 다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대화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공간 확보의 기술이다. 인간(人間)이란 말이 한자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뜻하는 것처럼 소통에서도 빈 공간이 있어야 대화가 원활해질 수 있다.
대화는 질문과 자기주장을 두 축으로 네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질문은 없고 각자 주장만 있는 대화 형태가 최악이다. 서로 남의 말은 듣지 않고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만 떠드는 것이다. 일명 ‘경로당 대화’다. 차선은 한쪽은 질문하고 다른 쪽은 답을 하는 형태다. 질문하는 쪽과 답하는 쪽이 구분되어 있다. 최악보다는 낫지만 최선은 아니다. 최선은 서로가 질문도 하고 답도 주고받는 것이다. 질문과 답이 섞여 있는 형태다.
질문 없는 대화는 사실상 대화가 아니다.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질문은 자기 안에 공간이 없으면 나올 수 없다. 자기 확신으로 넘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거나 남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것뿐이다. 질문을 한다는 건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 상대에게 뭔가 배울 게 있다. 저것이 더 알고 싶다’라고 하는 공간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공간이 있어야 질문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질문이다. 우선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자. 질문을 하고 생각을 하다 보면 공간이 생긴다. 대화에서도 물론 질문이 중요하다. 질문을 해야 두 사람 사이에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질문 없이 대화를 하는 건 산소가 부족한 곳에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잠시는 괜찮지만 오래 있으면 급격하게 피곤해진다. 질문은 마음의 공간을 확보하는 최고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