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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28. 2016

07. 즐겨라, 내가 타 없어지지 않게

<내 아이를 위한 인문학 교육법>


얼마 전에 아내와 함께 세계적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공연에 다녀왔다. 아내도 나도 참 바쁘게 살고 있지만, 시간을 내어 공연장을 찾은 이유는 그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었다. “당신에게 음악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Mischa Maisky)



“나에게 음악은 정의와 사랑입니다.”
   
그다음 질문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고 싶냐?”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걸작이었다.
     
“사랑하는 마음을 주고 싶습니다.”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는 내내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답변 내용을 읽는 순간 바로 공연 표를 예매했다. “만약 당신에게 첼로를 연주하는 최고의 비법을 알려달라고 하면 어떤 훈련을 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방금 저의 첼로 연주를 듣지 않았습니까? 저는 방금 모든 교육을 끝냈습니다. 제가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연주를 들려드리지 않았습니까? 사랑과 행복을 깨달으면 첼로 연주를 잘하게 됩니다.”
   
어떤 특별한 교수법을 기대했던 기자와 독자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답변이었다. 가슴 찐한 감동을 안고 그의 연주를 직접 듣기 위해 공연장으로 달려갔는데 뜻밖에 생소하고 어려운 곡이 많이 연주되었다. 하지만 사랑과 정의를 이야기하는 세계적인 거장을 만났다는 생각에 마음은 뿌듯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미샤 마이스키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마음이 내게 좀 부족하구나. 더 배워야겠다.’
   
나는 이렇게 예술을 만나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고 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지만, 인문학을 한다는 사람이 비인간적인 삶을 살게 될까 봐 시간을 쪼개 공연장을 찾는다. 문학과 예술을 자주 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생긴다. 마음이 넓어지고 타인에게 관대해진다. 문학과 예술에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가 담겨 있고, 말과 글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감정과 정서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 표현하는 가치・감정・정서에 자주 접속할수록 나의 감정과 정서도 풍부해지고 타인과 함께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또한, 문학·예술을 통해 나 자신을 배려하고 나 자신을 존중하고 나에 대해 알게 되면 저절로 내 아이도 잘 대하게 된다.
     
동서양의 역사를 보아도 명문가들은 문학과 예술을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우먼 인 골드>를 보면 에스티로더 가문이 클림트의 작품 <아델라의 초상>을 1,500억 원에 사는 장면이 나온다. 평범한 우리 시각에서 보면 미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술의 가치를 알고 있는 명문가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시대 명문가들도 똑같았다. 공자와 맹자의 저서를 읽는 것과 더불어 사군자를 그리고 가야금을 뜯었다. 문학과 예술을 소중히 하는 것이 명문가의 자질을 갖추는 기본 소양이었다. 우리가 이런 명문가의 자질을 부모님께 못 받았다 하더라도 자녀들한테는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혹은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도 문학과 예술을 자주 접해야 한다. 이것은 나를 훈련하는 길이기도 하다. 일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훈련이다. 그래야 급한 일이 있어도 가족에게 내가 필요할 때는 일을 내려놓고 갈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고 가족보다 일을 우선시하게 되면 사람과의 관계보다 일 속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되면서 갈수록 일에 빠지기 쉽다. 나는 내 삶이 100% 일로 채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남들에는 인간적으로 살라고 하면서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나날이 일에 찌들어가는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면 안 되지 않는가?
     
인문학은 내 삶에 질문을 던지게 하고 나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삶에 대한 질문을 지속해서 붙들게 해주고 그에 대한 답을 찾게 해준다. 그렇게 답을 찾아가는 중간중간 문학과 예술로 삶의 쉼표를 찍어주면서 내가 타 없어지지 않게,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금방 끓어올랐다가 금방 식는 냄비가 아니라 은근하게 타오르는 화로가 되어 내 삶의 불길을 꾸준히 지켜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인문고전이고 문학과 예술인 것이다.
     
음악을 들을 때나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도 앞서 이야기한 영화 보기 방법처럼 입체적으로 보는 연습을 하면 좋다.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나라면 어떻게 표현했을지, 또 그 작품을 연주하는 사람은 어떤 기분인지, 또 나라면 어떤 악기로 연주했을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음악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아는 만큼, 느끼는 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음악가나 미술가에 관해 공부해보는 것도 좋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고 하지 않던가. 작품을 만든 예술가에 대해 알게 되면 더 깊고 풍부하게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다. 작가에 관해 공부할 때는 너무 힘들게 할 필요는 없다. 한 번에 한 명을 정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피카소에 관해 공부하기로 했다면 한 달에 한 권 정도 피카소 관련 책을 읽고 피카소 작품을 찾아본다. 음악도 먼저 작곡가를 한 명 정한다. 베토벤이라면 그에 대해 알아본 다음 그의 대표작 10곡 정도를 반복해서 듣는다. 다 들을 필요도 없다. 귀에 익을 때까지 반복해서 들으면 어느 순간 가슴에 특별한 느낌이 온다. 그 느낌을 잘 정리해보면서 곡에 대한 이해능력을 키울 수 있다.
     
영화나 예술 작품을 입체적으로, 인문학적으로 보게 되면 세상과 사물을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게 되고, 이건희 회장의 말처럼 ‘사고의 틀’을 넓힐 수 있게 된다. 부모가 먼저 인문학적으로 감상하는 훈련을 충분히 하면 아이를 이끌어주기 쉽다.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볼 때나 음악을 감상하고 그림을 볼 때, 이런 방식으로 이끌어주면 더욱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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