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Jul 28. 2016

05. 빈혈의 원인이 구충이다?

<기생충 콘서트>

구충과 제3세계

구충은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5억~7억의 감염자를 거느린 중요한 기생충이며, 특히 못사는 사람들이 많은 아프리카나 일부 아시아 국가들이 구충으로 인해 적잖은 고통을 겪고 있다. 가뜩이나 철분이 부족한 임산부나 성장기의 어린아이가 구충에 걸리면 훨씬 더 치명적일 수 있는데, 이들의 피를 빠는 기생충이 있다는 건 기생충 옹호자인 내가 보기에도 부끄러운 일이다. 이들이 신발을 신지 못하는 게 구충에 자주 감염되는 이유니 만큼, 기생충의 사슬을 끊어내는 길은 역시 경제 발전이 유일한 것 같다.

(위로부터) 구충의 유충, 구충의 이빨




알레르기 치료에 쓰이는 구충

여기까지 읽으면 구충이 참 나쁜 기생충 같다. 하지만 구충은 돼지편충과 더불어 알레르기와 자가면역질환, 즉 자기 면역계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질환의 치료에 쓰이고 있는 좋은 기생충이다. 기생충이라고 해서 모두 알레르기에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닌데, 전문가들은 구충이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소위 ‘조절 T세포’를 활성화시킴으로써 면역질환을 치료한다고 추측한다. 돼지편충이 그렇듯이 구충 역시 아직 FDA 승인을 받은 정식 약은 아니다. 하지만 효과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면역질환에 걸린 분들이 개인적으로 구충을 구입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는데, 구충을 파는 인터넷 사이트(http://wormswell.com/)의 홍보 문구를 잠시 보자.

“구충을 사세요. 200달러만 내면 전 세계 어디든지 구충 25마리를 배달해 드립니다. 크론씨병 같은 염증성 장질환은 물론이고 천식, 습진, 음식물 알레르기 등 여러 면역질환에 효과가 있습니다.”


이 방법이 좀 솔깃한 이유는 돼지편충은 500~1,000개의 알을 2주마다 10번 먹어야 하는 반면, 구충은 그보다 훨씬 간편하기 때문이다. 피부에 붕대를 대고 25마리가 든 액체를 붕대에 쏟은 뒤 열두 시간 동안 놔두는 게 전부로, 그러면 그 액체에 있던 구충의 유충이 피부를 뚫고 몸 안에 들어간다. 피부를 뚫을 때 가려울 수 있으며, 장에 안착하기 전에 폐에 들르는 고약한 습성 때문에 알레르기 증상이 도질 수도 있지만, 2주가 지나면서 점차 효과가 나타난단다. 구충제 한방으로 언제든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한 가지 더. 구충이 피를 빨 때 성가신 점은 사람의 혈액이 금방 굳어 버린다는 것인데, 구충은 피를 굳지 않게 하는 소위 항응고제를 분비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한다. 여기에 감동한 한 회사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심장에 판막질환이 있다든지 뇌졸중이 염려된다든지 할 때 항응고제를 쓰는데, 기존의 항응고제는 합성된 것이다 보니 이런저런 부작용이 있다. 하지만 구충의 항응고제를 쓰면 친환경적이어서 더 낫지 않을까’ 스스로의 생각에 감탄한 회사 측은 이를 바탕으로 특허를 내는데, 이 연구가 잘 된다면 우리는 구충에서 추출한 항응고제를 먹고 각종 질병을 예방할 수 있으리라. 구충이 자신의 죄 값을 갚고 인류에게 봉사할 그날을 기다려 보자.

작가의 이전글 07. 즐겨라, 내가 타 없어지지 않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