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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y 21. 2018

08. 창의력 살인자

<창의력에 미쳐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함으로써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우리 각자는 모두 다르고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 코카콜라 회장 브라이언 다이슨(Brian G. Dyson)


창의력 살인자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탐스러운 화단이 하나 있다. 그 이름은 창의력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화단은 누군가로부터 종종 짓밟힌다. 꽃과 나무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병들어간다.

경험이 쌓이는 만큼 열정과 패기는 슬며시 꼬리를 내린다. 현실 지향적으로 선회하는 만큼 창의력의 빛은 조금씩 바래가고 결국에는 ‘그냥 다른 사람만큼만 하자’는 달콤한 유혹을 거부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그동안 애써 일궈온 창의력이란 싹이 시들기 시작한다. 이는 다름 아닌 창의력 살인자의 출현을 뜻한다. 하지만 깨달아야 한다. 엉덩이를 땅바닥에 찰싹 붙이고 있으면 당장은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엉덩이에는 종기가 하나둘 돋기 시작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실 창의적 발상을 방해하는 요인들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다음 세 가지가 대표적이다.



동조(同調) 현상

대한민국에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사람
·말없이 동조하는 사람
·동조를 거부하는 사람

앞의 두 사람은 관리하기 편한 반면, 마지막 사람은 관리는 고사하고 상대에게 눈엣가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행이 우르르 몰려간 식당에서 “뭘로 주문하시겠어요?”라는 종업원의 물음에 은근히 옆 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사람이 있다. 다행히도 같이 간 누군가가 “짜장면으로 통일!”이라는 발언에 두말하지 않고 묻어간다. 괜히 잘난 척 깐죽대다가 손가락질당하기 십상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무언의 동조 압력이 연출한 해프닝이다.

이웃집 철수가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 우리 집 영희도 피아노 학원에 보내야 한다. 또 같은 반 친구가 미술 학원에 다니면 우리 아이도 미술 학원 수강증을 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이는 모두 조바심이 낳은 동조 현상이다.

배움이 아니라 경쟁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교육은 학습은커녕 아이의 창의력만 짓밟고 파괴한다.

기업도 그렇다. 기업은 창의력이나 업무 능력이 뛰어난 인재도 좋지만 협조적이고 충성심 높은 인재에게 애정이 간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학교와 사회에서조차 동조를 잘하는 인재를 ‘협조성이 있는’ 사람으로 보고 반겨온 그간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동조 현상은 창의력과 독창성을 짓밟는 최악의 요인이자 고정관념 타파의 최대 걸림돌이다.


기능적 얽매임(functional fixedness)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경험을 통해 다양한 지식을 쌓는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경험과 습관, 사회적 합의 등이 뒤엉키며 딱딱하게 머리가 굳어간다. 이 때문에 경험과 습관, 사회적 합의(가장 많이 쓰이는 용도) 이외의 방법을 떠올리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이런 현상이 바로 ‘두뇌의 기능적 얽매임’이다.

급하게 깔때기가 필요하다고 가정하자. 서랍 여기저기를 뒤져봐도 집 안엔 깔때기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깔때기를 사러 동네 슈퍼를 찾아야 할까?

이때 페트병이 깔때기를 대체할 수 있음을 떠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료수가 들어 있었던 플라스틱 병’이라고 하는 기능적 얽매임을 벗어던지고 ‘깔때기 대체품’이라는 신속한 발상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본연의 용도 이외의 사용법을 떠올리는 것이 바로 당신의 창의력 수준이다. 그런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경험에 얽매이지 말고 두뇌를 의식적으로 해방시켜야 한다. 뇌가 머릿속에만 머물게 하지 말고 세상 구석구석 어디든 두둥실 떠다닐 수 있게 해야 한다.


권위주의적 분위기

이것은 누군가가 가진 권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사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동조 현상이 매우 강한 사회에 살고 있다. 특히 다수파 의견이나 권력자, 언론 등에 대해서는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뉴욕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친구가 직접 겪은 일이다. 교수님이 음악을 한 곡 틀어놓고 ‘이퀄라이저’라는 기계로 고음대와 저음대의 소리를 조절하면서 무엇이 다른지, 어떤 소리가 더 좋은지 학생들과 토론을 하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이전 소리가 낫다”, “아니다” 하며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데 그 친구는 아무 차이도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당황한 친구는 같이 수업을 듣는 한국 학생에게 “정말 들리냐”, “혹시 음색 조절하는 기계가 꺼진 것은 아니냐”고 두 번이나 확인을 했다. 하지만 “잘 들어보라”는 위로의 말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친구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에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난 뒤, 교수는 기계가 꺼져 있었던 것을 확인하고 학생들에게 사과를 했다. 음악에 전혀 변화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친구는 자괴감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꺼져 있는 기계를 만지며 학생들에게 계속 의견을 물었던 교수와 열띤 토론을 벌였던 학생들은 서로 얼마나 민망했을지….

불의의 교통사고로 화상을 입은 후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있는 이지선의 ‘푸르메 칼럼’에 등장하는 글이다.

아이는 어른에게, 부하는 상사에게, 피고용자는 고용자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아름다워 보인다. 이런 습성은 오랜 기간 상명하복과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사고의 유연성과 창의력, 독창성이 자라나기는 힘겨워 보인다.


당신은 눈 뭉치?

당신의 생각이 주변 사람들과 다를지라도 은근슬쩍 묻어가려 하지 말라. 눈 뭉치도 아니거늘 꼭 하나로 뭉쳐야 할 이유는 없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과감히 ‘아니오(No)’를 외쳐야 한다.

신이 당신을 이 세상에 왜 내려보냈는지 생각해보라. 무뇌(無腦) 상태로 남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라고? 절대 그렇지 않다.

타협하려 들거나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 하지 말고 자신만의 생각을 마음껏 피력하라. 당신은 지구상에서 아주 특별하고 독창적인 존재다. 광활하고 유구한 우주 역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존재다.

테이블을 둘러싸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허심탄회한 분위기는 삼겹살을 굽고 술잔을 돌릴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상사와 부하 사이, 어른과 아이 사이,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도 지위와 입장을 벗어나 자유로운 대화가 얼마든 오갈 수 있어야 한다.

무지개가 왜 아름다운지 아는가? 다양성 때문이다. 언제든지 생각의 무지개를 활짝 펼쳐라. 다양성은 창의력이란 씨앗의 텃밭이자 그 계발에 절대 필요한 우리 사고의 균형점이다.


Think
Critically

1. 그냥 묻어가려는 동조 현상은 고정관념 타파의 최대 걸림돌이다.
2. 경험에만 얽매이지 말고 이따금씩 두뇌를 의식적으로 해방시켜라.
3. 다양성은 창의력이란 씨앗의 텃밭이자 사고의 균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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