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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y 28. 2018

03. 누가 처음에 질서를 만들었는가?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



엔트로피(자연 물질이 변형되어, 다시 원래의 상태로 환원될 수 없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가 계속 증가한다면 엔트로피는 왜 처음에 그렇게 낮았던 것일까?
  
주사위 200개를 모두 다 6이 위로 보이도록 커다란 상자에 담아서 자전거에 매달아 달리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상자 안의 엔트로피가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동안은 상자 안에 있는 많은 주사위들이 여전히 6이 위에 보이겠지만 한참 동안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가다 보면 언젠가 카오스적인 균형 상태가 만들어지게 된다.
 


상자 안의 주사위들은 처음에 누군가가 아주 심혈을 기울여 정리했을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낮은 엔트로피 상태인 것이다. 우리의 우주도 이와 마찬가지로 어느 시점에는 극히 낮은 엔트로피 상태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날 엔트로피가 이처럼 끊임없이 급속하게 증가할 수 없을 것이다. 누가 그랬을까? 누가 처음에 질서를 만들었을까?
  
이에 대해 가능한 답은 바로 우연이다. 계속해서 서로 충돌했다가 다시 멀어지는 엄청난 양의 입자들을 상상해보자. 이것은 주사위가 든 상자를 여러 번 힘차게 뒤흔든 상태와 비교할 수 있는 엔트로피가 극히 높은 상태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입자의 혼잡 속에서 아주 우연히 다섯 개의 입자가 좁은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때로는 더 많을 수도 있다. 아주 드물게는, 예를 들어 스무 개의 입자가 아름다운 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엔트로피가 높은 환경 속 낮은 엔트로피의 우연한 섬인 것이다. 엄청난 수의 입자를 가지고 있고 아주 오래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아주 우연히 정확하게 충돌하여 즉흥적으로 우주가 만들어진다. 우리의 우주 바깥에는 여전히 어지럽고 무질서하게 떠돌아다니는 입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우주는 엔트로피가 낮은 우연한 요동인 것이다. 주사위가 들어 있는 상자를 계속해서 흔들어대다 보면 언젠가 동일한 숫자를 가리키는 주사위 구역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물론 상당히 사리에 맞지 않게 들린다. 공기 중의 모든 입자들이 언젠가 커다란 공간의 맨 위쪽 6분의 1 구역에 모일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는 현저히 낮다며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가 오늘날 보는 모든 입자들이 언젠가 정확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충돌해서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인가?
  
사실 이것은 들리는 것만큼 그렇게 미친 소리는 아니다. 우주는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이 오랫동안 혼돈의 시대가 존재하다가 갑자기 우연히 우리 세계가 탄생했고, 최초의 빅뱅 이후 수십억 년은 빅뱅 이전의 지루하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최대 엔트로피의 시대와 비교하면 아주 우스울 정도로 짧은 순간인지도 모른다.
  
또는 우주는 우리가 보는 아주 작은 일부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지도 모른다. 이는 초우주의 지역 어딘가에서 즉흥적으로 빅뱅이 일어날 가능성을 현저히 높일 것이다. 무한한 세계에서는 있음 직하지 않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자주 일어난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불가피한 일이다.
  
이렇듯 우연히 카오스에서 생성된 우주를 ‘볼츠만 우주’라고 부른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런 생각을 한 것은 볼츠만이 처음이 아니었다. 약 2,000년 앞서 로마의 작가인 루크레티우스(Titus Lucretius Carus)가 볼츠만의 생각과 깜짝 놀랄 정도로 비슷한 물리학적 이론을 기록했다. 루크레티우스는 물질이 우연하게 움직이는 아주 작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우주의 무중력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래서 우주를 떨어지는 원자들의 집합으로 생각했다. 원자들은 계속해서 아래로 떨어지면서 우연히 조금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빗나가고, 언젠가는 충돌하게 된다. 그리고 그중 충분히 많은 원자들이 충돌하게 되면 우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순전히 우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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