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학교는 왜 이런 문제를 낼까?

<지식인 복잡한 세상을 만나다>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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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등급 분류기

학교란 무엇인가? 교과서적인 답변에 따르면, 고등학교는 국민이 갖추어야 할 자질을 키우기 위해 고등수준의 지식을 전수받는 곳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많이 다르다. 특히 입시교육은 점점 과열되며 학생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과연 이러한 선택은 옳은 것일까? 과도한 입시교육이 학생들의 창의력을 더 훼손하지는 않을까? 남다른 창의력을 지닌 학생이 입시과정을 거치며 재능을 다 잃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고등학교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지식 전수나 인재 육성이 아니라, 인간을 등급별로 분류하는 데 있다. 일부 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대학교에 진학한 후 고액 연봉과 사회적 체면이 보장된 직장에 들어간다. 또 일부 학생은 그저 그런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머지 학생은 대학교 문턱도 밟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는 시시각각 사회에 의해 등급이 매겨지는데, 그중에서도 고등학교 때 부여되는 등급이 거의 평생 유지된다. 이 점에서 고등학교는 일종의 ‘등급 분류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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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출제자가 잔뜩 꼬일 대로 꼬인 해괴한 문제를 내는 까닭은 거창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출제 목적은 수험생들이 문제를 풀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인간을 다양한 등급으로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어려워야 한다는 점이며, 문제가 사람과 사람을 분류하고 계급으로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목적은 다한 것이다.

왜 이런 식으로 입시교육이 발전한 것일까? 이 문제는 현대사회의 운용방식에 관련된 것이지만, 100년 전 미국의 포드자동차가 처했던 상황에서 답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당시 포드는 숙련된 전문 기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쉽게 배울 수 있는 작업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일손을 구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높은 업무 강도, 긴 업무시간, 낮은 임금으로 인해 몇 달은커녕 며칠도 버티지 못하는 작업자들이 수두룩했다. 고민 끝에 포드는 작업자의 일일 최저임금을 5달러로 인상하고 (당시 평균 임금의 두 배 이상에 해당한다) 업무시간을 9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했다. 직장에 처음으로 애착이 생긴 작업자들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장에 형성되어 있던 것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 때문에 사람들은 포드사에서 일하고 싶다며 제 발로, 그것도 앞다투어 몰려들었다. 이러한 상황이 펼쳐지자 포드사는 작업자를 선발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했는데, 그 내용이 꽤나 황당하다. 집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은 아무리 봐도 업무 성과와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선발 기준은 구직자를 탈락시키기 위해 마련된 것에 불과했다.

포드사의 전략은 현대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은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하는 한이 있더라도 ‘누구나’가 아니라 충성심과 단합력을 지닌 직원을 원한다. 즉,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기업에서는 ‘아무나’ 원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문턱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턱은 어떤 분야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 중 일부를 걸러낸다. 그리고 이미 안으로 진입한 사람이 실제로 자신의 능력을 통해 지위를 얻었다고 느끼게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도 공정하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어떤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많기 때문에 문턱이 제한된 정원수 외의 인원을 도태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력은 가장 좋은 문턱이 된다.

한국의 대학교 입시 경쟁은 세계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하다. 명문 학교들은 오로지 시험 점수만 따질 뿐 스포츠, 문학, 가정 배경, 교우 관계, 인성 등은 전혀 감안하지 않는다. 대기업에서 높은 자리에 오른 임원들이 대부분 SKY 출신이라서 CEO끼리도 이른바 학연이 형성되어 있다. SKY의 진학 여부에 따라 향후 받게 되는 연봉은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자연스레 한국 고등학생의 학습 시간은 세계 평균을 훌쩍 넘어선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는 것도 모자라 하교한 후에는 학원으로 향한다. 일부 학생들은 입시스킬을 알려주는 학원의 강의를 공교육 수업보다 더 열심히 듣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혁신능력은 창의력을 죽이는 입시교육으로부터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과학기술이 가장 앞선 국가 중 하나로 손꼽히며, 나아가 철저한 입시 문화 속에서도 뛰어난 스포츠 선수를 여럿 배출했다. 영화, 드라마, 음악 분야에서도 전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한국인이 많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우리는 상식적으로 교육이 강해야 국가가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리 가난해도 배움을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실 이는 오해에 불과하다.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한 국가의 교육 수준은 그 국가의 경제가 발전한 시점부터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한국도 산업 업그레이드를 완료한 후 젊은 세대에게 수준 높은 일자리를 대량으로 제공했다. 그러자 청년 세대는 해당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연스레 공부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즉 산업 발전 이후에 교육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 수준이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성장으로 사회에 고소득 직업이 생겨나고 그 자리에 대한 수요 때문에 보다 수준 높은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편이 옳다. 한 국가에서 신규 일자리가 생겨나지 않는다면 혁신형 인재는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할 것이다. 요컨대 인재와 일자리는 동시에 성장한다. 그리고 일자리 기회가 교육의 발전을 견인한다는 사실은 역사적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학생들이 대학 입시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아닌지는 국가 경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으며, 교육 수준이 높아야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주장은 사실상 낭설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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