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서, 조선을 말하다>
세종, 조선의 기틀을 다지다.
세종은 1418년에 즉위했다. 조선이라는 왕조가 개창한 지 채 30년도 안 된 시기라, 전대를 기준으로 삼기에는 부족한 때였다. 아버지인 태종은 형제와 장인까지 죽이며 왕조의 기틀을 확립하고자 했다. 태조 이성계부터 태종 이방원까지 조선 초기는 말 그대로 핏빛 혼란의 시기였다. 세종까지 피로 얼룩진 정치를 했다면 조선은 권력 투쟁의 장이 되어, 껍데기만 남고 백성은 소외되었을 것이다.
왕조의 역사가 짧아 참고할 전거가 없다면 옛 자료를 모아 정리하거나, 실질적인 자료를 통합해야 한다. 세종은 대대손손 본받고 따라야 할 조선 왕의 모범 답안을 스스로 작성해야 했다. 세종은 대대로 기준이 될 책들을 편찬했다.
고대부터 당대까지 통합 전쟁 역사서
세종은 군대의 역사를 통합하고 기준을 세우는 작업을 진행했다. 『역대병요』는 조선 건국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전쟁사를 통합해 정리한 역대 전쟁사 모음 책이다. 중국의 상고시대부터 고려 말까지 중요한 전쟁을 모아 정리해놓은 책이다. 1444년(세종 26) 집현전 학사들을 중심으로 정리하기 시작해 세종이 승하하고 1년 뒤인 1451년에 나왔다. 수양대군이 쓴 『역대병요』 서문에는 그의 편찬 의도가 정확히 담겨 있다.
수양대군이 쓴 『역대병요』의 서문이다. 수양대군은 군사적 능력이 탁월해 세종 대에도 다양한 병서 편찬 업무를 담당했다.
"이 책에는 수천 년 이래 사적의 득실과 성패, 강약의 형세, 전쟁에서 대적할 때의 용기와 비겁, 교묘함과 졸렬함, 충성스러움과 간사함 등 모든 행적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나 있다."
당대의 성공과 실패를 망라해 교훈이 되거나 경계할 만한 사례를 수집했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이라는 상황에 군주와 신하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살펴 이후 전쟁이 벌어질 경우 모범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중국 중심의 한계를 넘어서다.
『역대병요』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중국의 전쟁을 중심으로 다루었기에 단순한 전쟁사 고전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역대병요』 최종 작업이 진행될 문종 대 초반에 우리나라 전쟁사 모음인 『동국병감』 편찬 계획이 잡혔다. 당시 이 병서의 편찬과 관련해 의정부에서 올린 글을 보면, 우리나라 중심의 새로운 전쟁 역사서 편찬을 기획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역대의 일은 사책(史冊)에 상고하면 알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일은 마땅히 가장 먼저 알아야만 할 것인데도 전연 알지 못하고 있으니, 매우 옳지 못합니다. 바라건대 삼국시대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외적이 와서 침범한 일과 우리나라에서 준비하고 방어한 계책의 수미와 득실을 자세히 참고하고 주워 모아서 전하의 관람에 대비하겠습니다."
『동국병감』은 우리나라의 전쟁 역사를 모은 책으로 중국과의 투쟁이 잘 담겨 있다. 『동국병감』은 장수들의 필독서였다. 특히 중종 대에는 병조에서 “우리나라의 형세와 병가의 승패가 기록되지 않은 것이 없어 무사가 마땅히 배워야 하는 책이다”라며 왜구 토벌과 삼포왜란 등도 추가해서 증보판을 만들자고 건의하기도 했다.
심지어 중국 사신들도 『동국병감』을 읽어보기 원했다. 특히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 장수들은 조정에 공식적으로 요청하기도 했으나, 오해가 생길 수 있어 조정에서는 공식적으로 공개하는 것을 꺼렸다.
『동국병감』에는 전쟁이라는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내용이 담겨 있다. 전쟁의 역사를 통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돌아볼 수 있기에 한일병탄 이듬해인 1911년 조선광문회에서 상하권을 합본해 한글판으로 간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