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복잡한 세상을 만나다>
물아일체의 경지
컴퓨터는 계속해서 인간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 그럼 인간의 일자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 는 것일까? 컴퓨터와 인간의 협력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지금 이공계 출신에게 적분 계산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1990년대에 내가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모두 적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왜냐면 매스매티카라는 연산 소프트웨어가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스매티카는 적분, 방정식, 추리 계산을 사람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풀어냈다.
당시 수학과 교수님께서 매우 침통한 표정으로 매스매티카가 무척 대단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매스매티카를 사용해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다네. 그래도 매스매티카에 너무 의존하지 말게. 증명이나 추리문제가 나오면 꼭 직접 계산해보게.”
수십 년 전, 전자계산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 선생님들도 이렇게 말했으리라.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만 해도 수업 시간에 전자계산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미국의 초중고에서는 계산기 사용을 허락하지만 수업 중에 여전히 학생들에게 필산, 암산을 가르친다. 그런데 최근 핀란드에서는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필산이나 구구단 외우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 계산문제를 전부 계산기로 처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컴퓨터와 함께 작업해야 한다면 컴퓨터에 어떤 일을 맡기고 어떤 일을 금지해야 하는 것일까? 이는 인류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다.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인간과 컴퓨터 중에서 누가 ‘주(主)’가 되어야 할까? 당연히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대답한다면 현실을 잘 모르는 것이다. 지금은 예술과 같은 영역에서조차 반드시 사람이 주가 되지는 않는다.
영화 <아바타(Avatar)>를 보자. 이 영화를 ‘사람’만의 힘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착각이다. 컴퓨터를 통한 특수촬영이나 특수효과가 없었다면 <아바타>는 결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 유명 중국배우는 특수효과가 많이 쓰이는 영화 출연을 제안받고 “와이어에 매달린 채 텅 빈 스크린을 배경으로 이 동작 저 동작을 하려니 내가 마치 컴퓨터의 도구나 허수아비가 된 기분”이라며 거절하기도 했다지만, 컴퓨터 작업이 많이 들어가는 영화는 계속해서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사람과 기계의 관계는 일찌감치 변했다. 요즘 기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어도 인간과 비슷하다. 컴퓨터 가격이 점차 저렴해지는 반면 컴퓨터를 활용한 특수효과 비용은 점점 오르고 있다. 그래서 영화에서 특수효과가 차지하는 예산 비중이 늘어나는 데 비해 스타 배우의 중요성은 감소하는 추세다. 일부 영화에는 배우들의 출연료보다 특수효과 비용이 더 크게 들고 있다.
컴퓨터가 담당하는 일은 시각효과뿐만이 아니다. 배우들이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이나 발음하기 어려운 대사도 수정할 수 있다. 심지어 가수들의 ‘음 이탈’을 감쪽같이 고쳐준다. 과거 가수들은 녹음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수십 번씩 반복해서 불러야 했지만 이제는 아마추어 가수조차 집에서 노래를 한 번 부른 뒤에 오토튠으로 수정한다.
컴퓨터는 가수를 음 이탈의 고통에서 해방해줬지만 그걸 바라보는 팬들의 심경은 착잡하기만 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과연 온전한 그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컴퓨터의 솜씨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안에 컴퓨터가 이미 세상을 떠난 스타의 목소리로 신곡을 발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기계가 성행하면 인간이 설 자리는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벌써부터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기상예보처럼 컴퓨터에 대한 의존도가 큰 작업에서도 컴퓨터 혼자 일을 처리하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는 날씨와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하고 사전에 입력된 수식에 따라 계산을 한 뒤 결과를 보고한다. 컴퓨터가 이렇게 알아서 척척 처리하는데 사람의 역할이 과연 필요하냐고? 물론 필요하다. 왜냐면 계산모델에 미세한 결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종종 상황을 예측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경험 있는 예보관이 수시로 조정해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이란, “컴퓨터 모델 내의 결함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축적된 것”이다. 즉 컴퓨터의 결함을 미리 예측하고 올바론 결과가 나오도록 계산하는 그런 탁월함 말이다.
이렇게 컴퓨터의 결함을 상쇄하고 컴퓨터의 장점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일, 바로 여기서 미래에 인간이 설 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앞으로 인간의 특성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기계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 ‘물아일체’가 되어 작업을 수행하고 다른 사람과 경쟁해야 할 것이다.
그 팀워크는 사람이 컴퓨터의 판단, 예측 능력이 확장될 수 있도록 돕는 데 달렸다. 컴퓨터는 더 이상 인간의 비서가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맹수라 하겠다. 승리의 관건은 그 맹수를 다루는 사육사의 솜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