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서, 조선을 말하다>
정도전, 조선이라는 나라를 설계하다.
삼봉 정도전은 말 그대로 조선을 일구어낸 미완의 혁명가다. 정도전은 1388년 6월, 위화도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를 도와 새로운 국가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정도전은 같은 스승을 따르던 포은 정몽주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스승인 목은 이색 역시 고려 말 개혁가로 사회변혁에 눈을 뜬 학자였지만, 고려 왕조 전복은 고려하지 않았다. 정몽주 역시 스승을 따랐다. 그렇게 길이 갈라졌지만, 스승이 남긴 개혁안 중 무과를 설치하고 무관을 선발해 전쟁에 대비하는 등 실질적이 개혁안은 정도전에게 이어졌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인 어진이다. 왕으로 등극한 사람은 이성계지만, 실제로 조선을 설계한 사람은 정도전이었다.
정도전은 성리학적 가치인 ‘덕치(德治)’로 모든 것을 바꾸어나가기 시작했다.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기는 것을 시작으로, 왕도 민심과 어울리지 못한다면 과감히 바꾸어야 한다는 민본정치를 주장하며 새로운 ‘조선’을 설계하고 그려나갔다.
‘개인의 군대’를 ‘국가의 군대’로
그러나 당대는 사병(私兵)의 세상이었다. 개국공신과 지방의 토착 세력은 자신이 거느린 사병을 강화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강한 사병뿐이며, 국가는 없어져도 자신의 권력은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은 시간이 갈수록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나라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실질적인 군사력은 아직도 고려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정도전은 사병을 혁파하고자 칼을 빼들었다. 모든 군사를 단일한 지휘 체계로 움직이는 공병(公兵)으로 전환하는 것은, 그가 꿈꾸어왔던 새로운 나라의 중요한 대들보였다. 사병을 혁파하고 공병으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조선은 그저 이름과 왕만 바뀐 ‘그 나물의 그 밥’이 될 것이었다.
『진법』이 실린 정도전의 문집 『삼봉집』
단일한 지휘 체계 속에서 군령에 따라 신속 정확하게 움직이는 군대는 정도전이 꿈꾸던 조선을 지킬 첨병이었다. 『진법(陣法)』은 정도전의 개인 문집인 『삼봉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새롭게 개편한 군대를 빠르게 통일하기 위한 군사이론과 단순하면서도 공격적인 전술 전개가 핵심이다.
단순 명쾌하고 강고한 조선군의 시작
『진법』은 일정한 체계 없이 27가지 항목이 나열되어 있다. 『진법』의 첫 장인 「총술」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말은 “군사는 믿음으로써 다스리고, 승리는 변화무쌍한 기병으로써 거둔다”다. 지휘하는 장수가 군사들을 믿고 군사들이 서로를 믿을 때 안정적인 부대 운용이 가능하고, 성공적인 부대 운용은 용병술로 적의 허를 찌를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진십오지도」는 이 병서의 핵심으로 기본대형을 정리하고 확대 방법을 설명한다. 군사들이 진법을 이룰 때 최소 결진 단위를 5명으로 구성된 오(伍)로 정하고 배수로 확대해나가며 10명으로 구성된 십(什)을 기준으로 부대 편제를 구성했다.
『진법』에서 가장 중요하게 부각한 것은 대형 진법 운영 시 독특한 전투 방식이다. 대장이 있는 중군을 중심으로 군사들을 전후좌우에 배치할 때, 중군과 전군은 움직이지 않은 채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후군이 가장 먼저 선제공격하고 이어 좌우 익군이 측면에서 협공해 적을 밀어내듯 공격하는 전술이다.
정도전이 꿈꾼 조선을 담은 책
『진법』에는 정도전이 꿈꾸었던 새로운 국가에 걸맞은 군사력 확립 의도가 담겨 있다. 사병을 혁파해 공병으로 만들고, 지방군과 중앙군을 단일한 지휘 체계로 품어 단단한 조선군으로 만들기 위한 원칙을 담아놓은 것이다. 『진법』은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병서로, 조선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그러나 정도전이 그토록 갈망하던 새로운 조선의 꿈은 개국한 지 7년이 되던 해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으로 사그라졌다. 그리고 정도전은 500년 가까이 역적으로 기록되었다. 정도전은 조선을 설계하고 튼실한 기둥을 세웠지만, 역사는 오래도록 그를 역적이라 불렀다. 하지만 백성들만 바라본 거침없는 개혁가이자 실천하는 지식인을 꿈꾸었던 정도전이 있었기에 500년 조선왕조가 순조롭게 시작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