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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01. 2018

05. 통계는 생명을 살린다. (마지막 회)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



치명적인 질병의 원인을 알아낸 것은 정말 영광스럽고 대단한 일이었지만 제멜바이스의 결정적인 업적은 사실 다른 데 있었다. 그는 통계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제멜바이스는 그냥 느낌이나 의사로서의 경험만 가지고 주장을 펼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깔끔하게 정리한 통계 숫자를 통해 자신의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어떤 의료적 조치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굳이 작용 방법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는 없다. 손 소독의 성공적인 효과는 통계적으로 봤을 때 너무나 명확해서 제멜바이스는 이런 효과를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의학에서 이런 상황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 태양계에서 행성의 움직임을 장기적으로 예측하기 어렵고, 날씨나 로또 공의 움직임도 예측할 수 없는데 인간의 몸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각각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살아 있는 기계이며, 우리 몸에 비하면 화성 탐사선은 지극히 단순하다. 내가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팔에 상처가 생겨 피가 난다고 해도 내 몸은 조금의 운만 있으면 저절로 낫는다. 발가락이 부러져도 몇 주가 지나면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다시 걸어 다닐 수 있다. 값비싼 정밀시계나 초음속 비행기를 가지고 비슷한 실험을 해보자!
  
우리 몸은 상당히 튼튼하고 이것은 큰 행운이다. 심지어 의료 처치상의 실수도 대부분 별다른 후유증 없이 잘 이겨낼 수 있다. 많은 질병들은 치료 여부와 상관없이 저절로 낫고 지나간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의학은 물리학이나 화학과 같은 기초과학 분야와는 달리 원인과 결과, 치료 방법과 성공적인 치료의 관련성을 입증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건강과 질병, 회복과 악화, 삶과 죽음 사이는 주로 우연이 결정한다.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단순히 우연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우연히 살모넬라균에 감염된 닭고기 수프를 먹고 병이 난다. 만약 수프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면 이를 근본적으로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우연한 일들은 우리의 몸이 무언가를 예측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비슷한 증세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 좋은 효과를 본 약을 복용했는데 우리에게는 이상하고 예측할 수 없는 연쇄반응을 일으켜 안 좋은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또한 의학에는 아주 근본적인 물리학적 우연이 있다. 우리 세포 속의 DNA가 고에너지 전자기파 방사선을 흡수하고 양자우연성이 이로 인해 질병의 발병 여부를 결정할 때 그렇다.
  
주사위를 던졌을 때 6이 나온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질병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두 개의 주사위를 계속해서 던져보고 그 결과를 꼼꼼히 기록함으로써 비교해볼 수 있다. 이렇게 해보면 그중 하나의 주사위 모양이 불규칙적이라 좋은 숫자가 훨씬 더 자주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다음에 주사위를 던질 때 어떤 숫자가 나올지 미리 알아맞힐 수는 없지만, 다음에 주사위 놀이를 할 때 어떤 주사위를 사용하는 것이 더 유리한지는 알게 된다. 제멜바이스의 업적은 바로 이것이다. 분만실에서 어떤 산모가 병에 걸릴지는 여전히 우연이 결정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처치 방법을 알고 있으면 훨씬 더 많은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따라서 제멜바이스는 현대 근거 중심 의학의 선구자라고 볼 수 있다.
  
이로부터 약 100년 후 스코틀랜드의 의사인 아치 코크런(Archie Cochrane)은 2차 세계대전 중에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했다. 포로수용소에는 결핵이 널리 퍼져 있었지만 코크런은 어떤 치료 방법으로 당장 위급한 사람들을 구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에게는 유효한 과학적 자료가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전쟁이 끝난 후 의학에 과학적인 방법을 도입하기 위해 앞장섰다. 그는 오늘날 의학 연구에서 여전히 지켜야 하는 많은 과학적 규칙의 토대를 처음 만든 사람이었다. 코크런 연합은 그의 이름을 따서 설립되었다. 이 연합은 연구자들과 의사들의 조직으로서 최신연구를 기반으로 여러 가지 의학적 치료에 대해 연구한다. 이렇게 해야만 어떤 치료 방법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아니면 어떤 경우에는 환자들이 그냥 우연히 건강해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연구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는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건강 통계 자료가 엄청나게 소중한 자료라는 사실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미 널리 자리 잡은 치료 방법이 효과 없는 것으로 판명 난 경우도 많았고 심지어 해로운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가령 수백 년간 환자들을 불필요하게 괴롭혔던 사혈의 경우가 그렇다.

어떤 환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해지기도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사혈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더욱 믿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환자가 사망하게 되면 피를 충분히 뽑아내지 않아서 그렇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19세기에 들어서 제멜바이스가 손 씻기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무렵에야 사혈을 과학적으로 조사해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수치를 통해 사혈이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위험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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