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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01. 2018

03. 과감한 결단력

<징둥닷컴 이야기>



2004년에 류창둥은 직원들을 소집해 회사의 향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회의 주제는 바로 기존의 오프라인 매장을 과감히 접고 순수 온라인소매업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류창둥이 온라인으로 사업방향을 전환하겠다고 주장한 이유는, 우선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사용자경험’효과가 생각만큼 뛰어나지 않다는 데 있었다. 소비자가 온라인을 이용하면 가격 흥정이나 진품 여부를 고민할 필요 없이 편안한 곳에 앉아 훨씬 저렴하게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게다가 영수증도 정식으로 발급받을 수 있다. 또한 징둥의 온라인 성장속도가 오프라인을 훨씬 웃돌았던 점도 류창둥이 결심을 굳힌 또 다른 이유였다.
  
하지만 류창둥의 주장은 직원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당시 중국 내 인터넷 보급률이 높지 않았으며 컴퓨터 보유대수도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직원들은 인터넷 주문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온라인시장에 대한 회의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그리고 당장은 온라인 구매건수가 워낙 미미한 상황이라 얼핏 상대적으로 성장속도가 빠른 듯 보이겠지만, 구매건수가 어느 정도 누적된 이후에도 과연 지금처럼 고속성장률을 유지할지는 미지수라며 반대쪽으로 입을 모았다.
  
2003년에 징둥멀티미디어는 매출액이 이미 8,000~9,000만 위안에 달했다. 어느새 중국 최대의 광자기디스크 제품 판매업체로 성장했고, 사업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향후 500개의 신규 매장이 오픈될 예정이었다. 상황이 그대로만 지속된다면 단 몇 년 사이에 오프라인 매출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시점이었다. 당시 쑤닝과 궈메이는 전국 단위로 발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며 매장 개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시장을 키워가고 있었고, 오프라인 소매유통체인점은 곧 최고 전성기에 진입해 활황을 만끽할 터였다. 또한 이러한 호황이 최소한 몇 년은 유지될 수 있을 듯했다.
  
징둥의 직원들은 쑤닝과 궈메이를 본보기 삼아 열심히 노력한다면 분명 앞날이 창창하리라 예상했다. 비즈니스모델이 명확하고 이익도 예측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굳이 불확실한 모험에 명운을 걸고 멀리 돌아가려 하는지 직원들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당시를 돌이켜볼 때, 류창둥의 독단적인 결정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징둥은 역사의 무대에 서지 못했을 것이다. 기나긴 회의와 지루한 토론이 반복되었지만 사실은 류창둥이 일방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원 모두가 다양한 의견을 피력했지만 류창둥은 그중에서 본인 의중에 부합되는 내용만 취사선택한 후 그쪽 방향으로 토론을 이끌었다. 그러니 회의결과가 뻔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는 전자상거래로 구조전환을 추진하자고 주장할 경우 직원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을 간파하고 있었고, 따라서 어떠한 반대의견도 무의미했다. 그렇게 매장철수가 기정사실이 되었다.



결국 제품구매를 위한 용도로 판매점 하나만 남겨둔 채 나머지 매장은 모두 철수시켰다. 굳이 판매점 하나를 남겨뒀던 이유는 이렇다. 창업 초기에 징둥은 중관춘의 다른 대리점에게서 제품을 공급받았는데, 판매점의 명의를 그대로 유지하면 도매가로 제품을 구할 수 있었다. 일반 소비자가 아무리 가격을 깎아도 도매가보다 저렴할 수는 없었다. 2006년에는 그나마 남아 있던 유일한 판매점도 문을 닫았다. 매장을 철수하는 과정에서 회사를 떠난 직원도 있었다. 그들은 류사장이 제멋대로 전횡을 부리며 무리수를 둔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무모한 구조전환이 실패로 돌아갈 거라는 우려도 있었다. 회사에 남은 직원들도 사실 전자상거래의 장밋빛 미래에 희망을 품었다기보다는 류창둥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랐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때 전자상거래 분야로 뛰어들지 않고 오프라인 매장을 유지했다면 징둥은 지금도 여전히 소매유통체인점의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경쟁상대도 당당왕과 줘웨왕이 아니라 훙투싼바오(宏圖三胞)일 것이다. 그렇다면 징둥은 지금의 홍투싼바오와 마찬가지 신세가 되어,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잠식해가는 상황을 넋 놓고 바라볼 뿐 속수무책으로 냉가슴을 앓고 있을 게 분명하다. 홍투싼바오는 다년간 오프라인 매장을 끊임없이 늘리며 확장노선을 걸어왔다. 그러다 차츰 무용지물로 전락한 덩치 큰 매장들을 이제 와서 거추장스럽다며 단칼에 자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한 상태에 놓인 것이다.
  
작은 배는 회전하기 쉽다는 말이 있다. 몸집이 작으면 그만큼 기동성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이 말처럼 류창둥이 과감한 결단력으로 구조전환을 추진한 덕분에 징둥은 신속히 움직였고 이제 막 기지개를 편 온라인 대세에 밀리지 않고 보조를 맞출 수 있었다. 인터넷 거품붕괴라는 후유증으로 2000년에서 2002년까지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중국의 인터넷시장은 회복하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왕이의 창업주인 딩레이(丁磊)가 중국의 새로운 갑부로 등극했으며 중국의 디지털 영웅들은 비즈니스업계에 충격에 가까운 획기적인 열풍을 몰고 왔다. 이들은 기적처럼 순식간에 부를 축적했는데, 원천은 바로 지식혁신이었다. 뛰어난 인적자원을 기반으로 한 획기적인 창의력이 바로 그 원동력이었다. 또한 스톡옵션(Equity incentive, 주식성과급 제도의 일종)과 공개적이고 투명한 자본의 힘, 그리고 현대적 기업제도 등도 성공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이후 10년 동안 가장 감동적이며 기적적인 성공신화가 모두 이들 손에 의해 쓰였다. 디지털시대 영웅들은 1992년 전후로 창업한 기업인의 왕좌를 대신 차지하면서 중국의 새로운 비즈니스 거두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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