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복잡한 세상을 만나다>
풍요로운 물질의 시대
인류는 역사상 유례없이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지금도 빈부격차가 감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글로벌화, 기술의 발전, 한층 자유로운 경제제도로 인해 점점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여태껏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부자는 안락한 시간을 보내고 빈자는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해야 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가 더 피곤한 삶을 산다. 부자가 쉴 틈 없이 일하며 돈을 모으고, 일을 하지 않는 ‘빈민’은 복지제도에 기대 비교적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기도 하는 것이다(지난 세대와 달리 현대사회에는 자수성가형 부자가 많다). 미국에서는 복지 제도에 대해 사람들이 불평을 터뜨리는 모습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부지런히 일한 자신이 낸 귀한 세금이 일도 안 하고 빈둥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쓰인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대에 제정된 상당수의 운영 규정이 현대사회에 적합하지 않다. 복지제도나 그 효용에 대한 시각도 재정비해야 할 때가 왔다. 복지제도가 나태와 무위도식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과연 옳을까?
지금처럼 물질이 풍족한 시대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소비를 독려하는 행위는 사회 발전을 이끌 수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행위가 경제발전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제임스 리빙스턴(James Livingston)은 《절약에 반대하다(Against Thrift)》(2011)에서 경제, 정치, 도덕적 측면에서 봤을 때 소비가 생산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지난 100년 동안 미국의 경제성장 정책과 경제사를 살펴보았을 때, 미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동력원은 투자가 아니라 소비라는 것이다.
사실 투자가 성장을 가져온다는 이론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뒤에는 시장이 무한대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시장이 포화상태라면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할까? 잉여이윤이 제품 개발, 생산에 쓰이지 않고 금융시장으로 흘러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다면? 리빙스턴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소비의 확대이며, 이를 위해 사회복지 증대와 같은 재화의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세계를 놀라게 할 관점을 제시한다. 즉 소비가 생산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생산은 오로지 돈을 벌겠다는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가리킨다. 리빙스턴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데만 집착하는 노동자가 소비자가 되면 그의 가치와 수준이 올라가게 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더 나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메커니즘이 사회 전체의 가치와 수준을 높인다.
미국에서 민권운동과 같이 사회 발전을 촉진하는 움직임이 빈번히 일어나는 것도 소비문화의 영향이 크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던 시절, 미국 상류층에서는 흑인 음악이 클래식 음악에 비해 예술적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고 거부감을 보였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입맛’이 그리 비싸지 않은 일반 시민이 돈을 벌고 소비자가 되면서 이른바 대중음악 시장이 탄생했다. 여기에 음반의 등장으로 흑인 음악이 빠르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흑인에 대한 미국 내 이미지가 서서히 개선되고 언론의 보도를 통해 미국 전역에서 흑인에 대한 동정 여론이 형성됐다. 그리고 1980년, 미국 프로미식축구 슈퍼볼(Super Bowl) 경기에 유명 흑인 선수가 찍은 코카콜라 광고가 등장해 크게 유행하면서 흑인문화가 미국의 주류문화로 자리 잡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흑인 음악이나 흑인 배우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한때 손가락질받던 흑인들이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된 데는 마틴 루터 킹 같은 위인의 공도 크지만, 흑인 문화에 호응한 미국의 소비자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소비문화로 사회 변혁을 해석할 수 있는 사례는 꽤나 다양하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 반체제인사였다가 훗날 체코 대통령으로 선출된 바츨라프 하벨(Václav Havel)이 1978년에 발표한 <힘없는 이들의 힘(The Power of the Powerless)>은 소비문화를 알리는 선언으로 평가된다. “우리는 최신 유행하는 음악을 들을 권리를 원한다. 국내뿐 아니라 서구의 대중음악까지!”
이러한 목소리는 이보다 더 이른 시기, 미국에서 ‘더 많이(More)’라는 구호로 울려 퍼졌다. 미국노동총동맹 창립자인 새뮤얼 곰퍼스(Samuel Gompers)는 노동자로서,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시키고 싶지도 않고 대기업을 무너뜨릴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노동자의 유일한 요구는 ‘more’, 즉 더 많은 임금, 더 나은 근로조건, 더 많은 휴식시간 등이라고 주장했다. 풍요경제의 소비욕구는 과거 가난하고 무지했던 사람들을 부유하고 지적으로 만들어서 민주주의에 더 힘을 불어넣을 것이다.
이른바 소비문화는 ‘평범한 사람’이 내디딘 하나의 역사적인 발자국이다. 과거에는 문화, 과학, 예술, 정치 등의 분야를 모두 엘리트가 장악했었다. 수많은 소시민은 하루 종일 기본적인 생존 조건을 위해 싸울 뿐 어느 것에도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물질이 풍요로운 시대를 맞아 평범한 사람에게 소비자라는 새로운 역할이 주어졌다. 소비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 평범한 사람은 더 이상 원하는 것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 노동력으로서 사회로부터 선택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사회를 선택할 수 있다. 평범한 사람의 선호와 선택이 예술의 경향을 바꾸고 기술 분야의 운명을 가르며, 어떤 사업가가 부자가 될지 결정하게 된 것이다.
때로는 소비문화가 너무 가볍게 보이기도 하고, 소비자들의 여론이 정책을 후퇴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큰 ‘척도’에서 봤을 때 ‘더 많이’, 즉 더 많은 물질, 더 많은 교육, 더 많은 휴식시간을 외칠 때 세상은 분명 우리 모두가 ‘고귀한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곳으로 진화할 것이다. 소비문화야말로 진정한 ‘서민의 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