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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03. 2018

04. 한 우물만 파라.

<징둥닷컴 이야기>



21세기 초 인터넷 거품 붕괴의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은 전자상거래업체는 겨우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2005년이 되어서야 중국 전자상거래시장이 비로소 살아나기 시작한다. 류창둥은 운 좋게도 이 분위기에 때맞춰 편승할 수 있었다.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말이다.
  
징둥처럼 중관춘 대리점들도 나름대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했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새 소리소문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렇다면 류창둥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한 우물만 파면서’ 전력투구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거의 대부분의 업체들이 온라인시장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하나씩 배우면서 차근차근 길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두 손에 온·오프라인을 모두 움켜쥐었던 업체들은 여전히 오프라인 매출 비중이 훨씬 큰 상태였고, 그러다 보니 생소한 온라인 분야를 느긋하게 앉아서 배울 만한 여력도 동기도 없었다.
  
사실 ‘한 우물 파기’는 류창둥이 부모님에게서 깨달은 교훈이다. 그의 부모님은 평생 동안 여러 사업을 했었다. 작은 공장을 운영한 적도 있고 배를 저어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으며 도매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 당시에 현(縣)·성(城)의 백화점들은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큰 트럭에 재고상품을 산더미처럼 싣고 내려와 읍내장터에서 펼쳐놓고 팔았다. 그 가격이 워낙 파격적이다 보니 물건을 풀어놓기 무섭게 동이 날 정도로 농민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 가운데 시골에서 도매업을 하겠다고 사업을 벌였으니 아무리 용을 써봐야 잘될 리 없었다. 그의 부모님은 결국 2년 만에 원금을 몽땅 날린 채 도매업을 접고 다시 배를 몰기 시작했다.
  
지난 10년여 동안 중국에서 소위 ‘돈 좀 되는’업종은 꽤 많았다. 일례로 해외무역이나 부동산 분야가 상당한 각광을 받았다. 그래도 류창둥은 한눈팔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하나의 분야를 제대로만 판다면 언젠가 반드시 보상이 주어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무슨 사업을 하면 짭짤한 재미를 볼 수 있다며 살살 부추기는 소리도 주변에서 간혹 들려왔지만, 이 말에 솔깃해서 무모하게 덤비면 결국에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사실을 류창둥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뚝심 있게 외길인생을 고수했다. 10여 년 동안 징둥은 소매업 관련 사업에만 몰두하면서 온라인쇼핑몰을 중심축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꾸준히 확장해나갔다. 이에 대해 류창둥은 이렇게 말한다.
  
어떠한 비즈니스든 모두 ‘사슬’로 구성된다. 비즈니스에 대한 판단은 직관력이 아닌 정밀한 분석에 의해 내려져야 한다. 사슬과 사슬을 하나하나 엮듯이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운다면 다음 단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징둥의 모든 금융상품은 전자상거래와 떼려야 뗄 수 없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전자상거래가 없다면 징둥의 금융도 발판이 없는 것과 다름없다.
  
비즈니스의 룰은 매우 단순하다. 바로 가치를 창조하면 수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수익은 파도처럼 기복이 존재하는 곡선이지만, 가치란 이러한 곡선의 기준점으로서 절대 불변한다. 수익은 가치보다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흔들리고 우여곡절이 생겨도 수익은 가치에서 너무 멀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즉 수익의 추세와 가치의 추세는 같은 흐름을 탄다는 뜻이다. 하다못해 폐지를 줍는 하찮은 일을 하더라도 가치가 있을 수 있으며 부자가 될 수도 있다.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징둥이 물류거점을 확장한 것도 ‘가치’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구매 플랫폼을 제공하고 편리한 배송으로 소비자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것, 그리고 원가를 낮추며 재고자산 회전율을 높이는 일. 이러한 모든 것이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징둥멀티미디어에 대한 고객의 신뢰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CPU(중앙처리장치)와 하드디스크, CD플레이어 등 고객의 다양한 수요가 이어졌다. 게시판에 원하는 제품목록을 올리는 고객도 있었다. 류창둥은 게시판을 면밀히 살핀 후, 어떤 제품을 온라인쇼핑몰에 올려놓을지 직접 전화로 지시를 내렸다. 사실 어떤 제품이 팔리고 어떤 제품이 외면받을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단순히 고객 수요에 맞춰서 제품을 구비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이 있으면 당장 중관춘으로 달려가 제품을 구해오는 식으로, 고객 요구사항에 맞춰 온라인에 제품을 올리기 시작했다. 정품만 취급한다는 신뢰와 저렴한 가격 덕분에 고객의 구매 열기는 끊이지 않았다.
  
2004년 말 회사 송년회에서, 류창둥은 그해가 가장 편한 잠을 이룬 한 해였다고 회상했다. 대리점을 운영할 때는, 만일 본사에서 대리점운영권을 연장해주지 않으면 회사 존폐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위기에 처할 수 있었다. 모든 운명이 다른 사람의 손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손발이 닳도록 죽어라 영업해도 결국은 제품을 공급받아야 팔 수 있었다. 때문에 해마다 연말만 되면 다음 연도의 대리점 계약을 갱신할 수 있을지 전전긍긍해야 했다. 반면 인터넷은 최종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중관춘 매장에서 제품을 구해 판매하면 그만이었다. 더 이상 명줄을 남에게 맡기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오히려 역으로 최종소비자인 실수요자만 많이 확보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명줄을 쥐고 흔들 수도 있는 위치에 설 수 있었다.
  
소매업의 본질은 소비자를 파악하여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어떠한 소매업종이든지 다음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바로 원가 절감과 효율성 제고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소매업과 전자상거래의 원가구조는 유사한데, 주로 구매원가와 영업비용, 재고원가 등으로 구성된다. 오프라인은 임대료가 원가에 포함되며 대개 매장의 위치가 고객 유동량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의 상업부동산 가격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어서 임대료의 비중도 높아졌다. 온라인의 경우는 접속량을 늘릴 수 있는 광고비용과 IT 연구개발비용, 그리고 물류비용 등이 원가에 포함된다.
  
소매업체는 소비자의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여 향후 판매량을 예측함으로써 재고비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전통적인 소매업의 경우는 운영효율을 상대적으로 통제하기 힘들고 제품의 판매량도 예측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2001년에 소매업을 하면서 징둥도 연간 마우스가 몇 개 정도 판매될지 예측했었지만 그다지 실효성은 없었다. 전통적인 소매업과 온라인사업의 ‘공급사슬관리(supply chain management)’는 사실 크게 다를 게 없다. 구매와 운영 등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없는 것이다.
  ㅎ 
오프라인 소매기업은 일정한 규모로 사업이 커지면 본사와 지사, 중개상이라는 세 단계의 관리구조가 정착되기 마련이다. 또한 이 경우 직영매장과 가맹점과의 마찰도 피하기 어렵다. 반면에 온라인기업은 중앙집권형 관리구조를 채택할 수 있어서 모든 일을 본사 한 곳에서 결정하고 처리할 수 있다. 물류와 고객서비스만 별도로 지점을 확보해 운영하면 된다.
  
한번은 필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류창둥 사장이 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Southwest Airlines)에 대해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굴지의 항공사가 경영난으로 허덕일 때도 유독 사우스웨스트만 수십 년 동안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항공사는 주로 미국 국내에서 도시 간 노선을 운항하는데 낮은 원가경영으로 유명한 회사다. 그는 이런 사례들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고 했다. “최근 10~20년 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혁신모델은 모두 원가의 절감과 효율 제고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원가를 더욱 낮추거나 효율을 더욱 높여야 한다. 이 둘 중에 하나를 최소한 실현해야만 혁신모델을 통해 생존·발전할 수 있다. 만일 이 둘을 전부 놓친다면 제아무리 획기적인 혁신모델이라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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