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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03. 2018

06. 2008년 : 자본시장 혹한기에 시련을 겪다.

<징둥닷컴 이야기>



2008년의 투자 유치 경험을 통해 징둥과 캐피탈투데이 모두 커다란 교훈 하나를 얻었다. 융자받을 기회만 있다면 반드시 그 기회를 잡으라는 것이다. 직원의 이직이나 경쟁업체의 공세 또는 매출하락 등의 요인으로 회사가 내일 당장 문을 닫지는 않는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그 회사는 100% 문을 닫게 돼 있다.

당당왕(중국판 아마존으로 불림)은 2006년에 2,7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후 2007년과 2008년에는 펀딩에 성공하지 못했다(2010년 12월에 상장하기 전까지 당당왕은 자본시장에서 눈에 띌 만한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그리고 경쟁상대인 줘웨아마존(줘웨왕이 아마존닷컴에 인수되어 자회사가 됨)은 미국 본사가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자금난을 겪는 바람에 운영예산이 대폭삭감되었다. 이때만 해도 류창둥은 당당왕과 줘웨아마존을 전자상거래 분야의 거물급으로 여기며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에 비하면 자신은 아직 애송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존재감조차 없었던 ‘애송이’가 연이어 자금 확보에 성공하면서 종합쇼핑몰의 면모를 갖춰갔고 자체적인 물류거점도 확보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징둥이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비약적으로 성장한 결정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징둥이 캐피탈투데이로부터 첫 번째 투자금을 건네받는 시점에 미국의 아마존닷컴은 시장에서 강세를 계속 이어가, 2007년 1사분기 매출이 30억 달러를 돌파했고 주가는 240% 폭등했다. 대부분의 투자가들이 중국 인터넷회사에 대한 투자를 결정할 때 염두에 두는 게 있다. 바로 미국 시장의 성공모델이다. 투자가들은 미국의 성공모델을 참고해 자신의 손안에 있는 패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 모델에 가장 근접한 패를 최종 선택한다. 징둥에 대한 투자도 내일 당장 이익을 바라고 진행한 게 아니었다. 투자가들은 아마존모델을 면밀히 검토하고 매년의 발전상황과 재무제표를 분석한 후 그 자료를 징둥의 운영현황과 비교해 투자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중국에도 필연적으로 아마존과 같은 기업이 탄생할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그렇다면 미래의 중국 아마존이 현재는 어떠한 모습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앞으로 어떠한 길을 걸을 것인지 심사숙고한 것이다. 업계를 한 바퀴 훑어본 이후 정교한 체로 걸러낸 업체가 바로 징둥이었고, 아마존과 가장 근접한 기업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징둥에 대한 기업실사와 평가를 진행하면서 아마존의 발전모델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을지 가늠했던 것이다.
   
게다가 때마침 징둥의 경쟁상대가 주춤하는 양상이었기에 징둥은 더욱 투자가치가 있었다. 만일 아마존이라는 성공사례가 없었다면 징둥이 무슨 수로 투자가를 설득할 수 있었겠는가? 또다시 5년이라는 세월 동안 돈을 쏟아부으라는 말이 먹혔을 리가 없다. 
   
징둥은 출중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투자가들은 류창둥의 전략을 인정하고 선뜻 투자에 나섰으며 인터넷시장이 활황을 맞이하자 그 가치는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가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징둥은 해당 업계의 독보적인 완자(玩家, 게이머라는 의미로 새로운 조류를 추구하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로서 돈을 버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돈을 ‘없애는 데’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러자 그를 뒤쫓던 경쟁자들도 어쩔 수 없이 돈을 버는 쪽보다는 돈을 ‘없애는’쪽에 치중해야 했다. 시장이 호황일 때는 투자가들도 여기저기 투자를 하지만 시장이 불투명해지면 신중을 기하며 3위 밑의 회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징둥의 책략은 ‘이 시장에서 맏형이자 돈도 제일 많은 우리와 돈을 누가 더 많이 쓸 수 있는지 한판 붙어보자’는 것이었다. 징둥을 쫓아가며 돈을 쓴 후발업체들은 점점 지쳐갈 것이고 시장상황이 열악해지면 돈이 떨어져 고사할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류창둥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우리가 택한 전략모델에서는 투자가 매우 중요합니다. 자금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저는 당시에 돈에 대한 원칙 자체가 없었어요. 시장이 과열되어 이성을 잃을 정도가 되면 사실 우리 자신도 뭐가 뭔지 분간을 못하게 돼요. 그런데 이때 제일 먼저 이성을 찾는 사람이 오히려 시장에서 가장 먼저 퇴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두가 이성을 잃고 날뛸 때는 우리도 같이 이성을 잃어야 한다는 거죠.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반드시 충분한 자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다행히도 징둥은 모두가 이성을 잃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충분한 돈을 손에 쥐고 있었고 그래서 오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느덧 모두 다 이성을 차렸더군요. 퇴출될 업체는 이미 거의 다 시장에서 정리가 돼버렸고요.”
  
2,000만 달러를 투자받은 후부터 징둥은 대규모 브랜드 확장 전략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시장을 재빨리 장악하고 경쟁상대를 압박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당시에 바이두 검색창을 열면 오른쪽 거의 모든 광고를 징둥이 차지하고 있었고 뉴스를 클릭해도 수많은 징둥 광고를 볼 수 있었다. 마침 그해에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포털 사이트의 광고가 잘 팔리지 않아 가격도 매우 저렴했는데, 이런 이점까지 누리며 징둥과 판커청핀(凡客誠品, 영문명 Vancl, 인터넷 의류기업) 두 업체는 인터넷 광고를 거의 독차지했다. 그렇게 최저가와 신속한 배송을 내세워 이 두 업체는 성장을 거듭했고, 이후 4년 동안 B2C 전자상거래 신화를 새로 쓰며 업계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선도기업으로 부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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