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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05. 2018

09.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예측, 일단 의심하라>



토트넘 하이크로스의 해리스 경이자 영국경제문제연구소의 대표였던 고(故) 랠프 해리스(Ralph Harris)는 사람들의 논쟁거리가 될 입장을 자주 취했다. 그는 마거릿 대처의 열렬한 추종자이며 유럽연합통합 회의론자에다가 열차 내 흡연금지에 반대하는 운동가로 활약했다.
  
게다가 그는 예측 회의론자이기도 했다. 한때 그는 ‘모든 예측 작업은 과거를 회고하며 흘깃거리고 있다. 이를 좀 더 실감 나게 묘사하자면 앞으로 가는 배를 후진시켜 왔던 항로를 그대로 되밟는 격이라고 하겠다’라고 썼다. 예측 전문가들 중에서도 특히 통계 예측 전문가들이 과거 동향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을 들이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예측 전문가들은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역사가에 더 가깝다는 곱지 않은 눈길을 받기도 한다.
  
분명히 우리가 과거 자료에 지나치게 집착하는데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모든 과거가 다 자료화되어 있지도 않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에 치중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희소한 사건들은 기록물에 전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에 그런 일들이 벌어질 가능성을 무시해버린다. 한편, 과거라는 렌즈에만 의존해서는 인터넷의 개발과 같은 새로운 사건들이 출현하는 새로운 변화를 제때 내다보지 못한다.
  
컴퓨터 통계와 인간, 이 둘이 모두 미래를 제대로 내다보려고 노력할 때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들은 일종의 족쇄 노릇을 한다.


특히 인간은 가까운 과거와 현재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워크숍을 열어 참가한 팀장들에게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보여주는 시나리오를 작성해 달라고 주문했더니 테러범 활동과 같이 대중매체에서 집중조명을 받아온 최근 사건들에 상당히 많이 치중했음이 드러났다.
  
철학자 칼 포퍼 경은 역사주의, 즉 ‘역사가 진화하는 저변에는’ 일정한 리듬, 패턴, 동향 그리고 법칙들이 있다는 생각을 비판했다. 그는 역사가 가는 길과 인간지식의 성장과정은 긴밀히 결속되지만 그 어떠한 사회도 미래에 그 사회가 무엇을 알게 될지를 오늘 이 시점에서 예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인간 역사가 걸어갈 미래의 노선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의 예측이 인류 역사라는 커다란 화폭 위에서 앞으로 어떤 일들이 발생할지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내일 날씨, 다음 주 제품 판매실적, 오늘치를 축구경기의 승자, 우리 자신의 소소한 개인사에서 중요한 일들도 예측한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더 범위를 키워볼 때, 테러범들의 공격, 경기침체 혹은 대기업의 향후 지불능력 등을 예측하기도 한다. 현재 우리가 가진 과거 자료나 과거에 겪은 경험이 실제로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어서 이런 일들을 예측하는 데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도 이런 자료들이 던져주는 메시지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이것들을 철저히 조사하되, 적합한 방식을 동원하고, 아울러 상상력도 발휘하면서, 훌륭한 정보를 얻고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최신자료 외에는 모두 다 버리려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기존자료들이 정규분포모형과 같이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이상적인 모형들과 ‘궁합이 잘 맞는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단지 편리함만 쫓지는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의 정보 속에 자가당착적인 기묘한 내용이나 터무니없는 일들을 포함시키다 보면 곧 ‘큰코다칠’ 일이 곧바로 벌어질 것이다.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No one Would Listen)》를 집필한 해리 마코폴로스(Harry Markopolos)는 이 책에서 버니 매도프(Bernie Madoff)의 재무보고서상의 수치들이 가당치도 않은 가짜임을 보여준다. 이윤을 표시한 그래프가 45도의 각으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상황은 도저히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마코폴로스의 지적은 그야말로 우리를 강타했다. 그리고 그가 들추어낸 모든 것이 진실임이 밝혀졌다. 그 덕에 매도프가 폰지 사기극을 벌이고 있었을 가능성은 우리의 뇌리에 각인되었고 앞으로도 언제나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런 희대의 사기극을 알리는 자료들은 우리 앞에 버젓이 존재했다. 단지 통찰력과 상상력을 제대로 겸비한 사람이 나타나 그 사기극을 포착하기만 하면 되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맥스 베이저만(Max Bazerman)교수와 자문위원인 마이클 왓킨스(Michael Watkins)는 9/11 테러, 허리케인 카트리나 그리고 미국 에너지기업 엔론의 파산과 같은 충격적 사건들은 당시에 우리가 확보한 정보만으로도 모두 다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밝혔다. 이 모든 사태들을 시시콜콜하게 죄다 예측하지는 못하겠지만, ‘미국 항공기에 가해진 테러범 공격’과도 같이 두루뭉술하게라도 예측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만 했어도 그 일이 ‘터지기’ 전에 미리 조처해 제거할 수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현재의 동향들을 곰곰이 짚어서 이들이 서로 관련성이 있음을 포착하고 그 속에 함축된 의미를 분석하는 작업을 실시하는 노력을 부단히 경주하는 일, 즉 예측의 기본을 충실히 이행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이 일을 제대로 해낼 때만이 우리가 여태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 우리 앞에 잠복하고 있을 가능성을 경각심을 갖고 헤아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서구의 노령인구, 의료 서비스 향상,전 세계의 에너지 사용증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 첨단정보 기술향상, 그리고 지구기온의 상승과 같은 제반 동향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할 때 어떤 결과를 빚을까?
  
과거 및 현재에서 얻는 경험, 자료 그리고 지식 덕분에 예측의 신빙성은 드높아진다. 이는 물론 우리가 이 모두에도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솔직하고 개방된 태도로 불확실성까지 참작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사실 인터넷의 출현도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하버드대학교의 사회학 교수였던 대니얼 벨은 당대 미국 최고석학들 중의 한 사람으로 칭해지고 있다. 1979년,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향후 20년 동안 가장 주요한 사회변화는 주요 사회기반시설의 세 번째 분야에서 나타날 것이다. 이 변화는 전화, 컴퓨터, 팩스케이블 텔레비전과 비디오디스크라는 첨단과학기술이 융합하여, 개인 간의 의사소통 방식, 자료송신 방식, 제한된 화폐 거래 및 교환 방식, 뉴스·오락·지식의 새로운 전달방식 등에서 대단위 규모의 재편작업이 초래되는 맥락에서 대두될 것이다.’ 선견지명의 정수를 보여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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