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Jun 05. 2018

07. 독재적 의사결정자

<징둥닷컴 이야기>



징둥이 처음 온라인시장에 진입할 당시 제품 선택은 우연에 의해 이루어졌다. 오프라인에서 원래 광자기디스크제품을 판매했기 때문에 IT제품을 들고 온라인에 진입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제품 카테고리를 확장하는 과정은 뚜렷한 확신 하에 단계적으로 추진됐다. 우선 IT제품을 판매하다가 디지털 통신제품을 추가했으며 그다음에는 소형가전, 대형가전, 생활용품, 도서 순으로 확장해나갔다. 여기서 류창둥의 전략적 안목을 엿볼 수 있다.
  
대형가전을 취급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며 독자적인 창고를 갖춰야 한다. 뿐만 아니라 배송에 있어서도 중소형제품과는 달리 에어컨이나 냉장고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별도의 운송요원이 필요했다. 게다가 설치와 AS까지 고려해야 한다. 중견관리자들은 다시 생각해 보라고 호소했지만 류창둥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고 매우 완강했다. “반드시 해야 합니다. 소비자가 징둥에서 휴대폰도 사는데 가전제품을 사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전업체도 징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오프라인 유통채널인 궈메이와 쑤닝의 시장점유율이 너무 높기 때문에 제조업자도 계속 궁지에 몰리는 처지입니다. 징둥이 발전하려면 반드시 새로운 제품을 판매해야 하며, 새로운 품목을 추가하지 않으면 분명 향후 발전에 지장이 있을 것입니다.”
  
도서품목을 추가할 때도 강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류창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징둥을 통해 고객이 모든 수요를 충족하도록 만들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류창둥이 강행한 여러 의사결정 가운데 가장 격렬한 반대에 직면했던 것이 바로 도서품목 추가 건이었다. 우선 투자가들이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비록 경영진 내부에서는 추진하는 쪽으로 가까스로 결론이 났긴 했지만 과반수에 가까운 사람이 반대표를 던졌다. 11개 부서 관리자 중에, 찬성은 6표에 불과했다. 그런데 결국에 류창둥의 식견과 전략적 안목이 옳았음이 또다시 입증되었다. 그 이후로 류창둥이 무슨 의견을 제시하든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 역시 매우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었는데 갈수록 반대 목소리가 힘을 발휘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사회는 원래 서로가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곳이다. 만일 상대방을 설득 못하면 투표로 결정했는데, 9개 의석 중에 류창둥이 5개 의석을 대표했다. 이는 게임의 법칙과 다름없다. 몇십 억 달러를 투자한 사람 중에 누구는 의결권을 가지고 있고 누구는 없는데 그 연유가 무엇인지 묻자, 류창동은 이렇게 대답했다.
  
만일 너도나도 모두가 의결권을 가지고 있으면 회사에 의사결정권자가 없어집니다. 각자 의견이 일치하지 못해서 모두 상대방 의견에 반대표를 던졌다고 칩시다. 그러면 이 회사는 한마디로 엉망진창이 돼버리는 거죠.
  
벤처투자가는 해당 분야를 잘 알아야 합니다. 만일 잘 모른다면 저도 어찌 될지 두렵네요. 그래서 해당 분야에 정통하지 못한 투자가는 자신의 의사결정권도 넘겨줄 수 없는 겁니다. 어떤 결정이 옳은지, 그리고 향후 사업방향이 예상대로 진행될지 여부조차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징둥 투자자가 의사결정권을 넘겼다는 것은 이미 우리 사업을 잘 이해한다는 의미이고 징둥의 전략방향이 옳다고 확신한다는 의미입니다. 고위층 경영진의 투표에는 다수결원칙을 적용하는데, 소수가 다수의견을 따르는 거죠. 제 한 표도 그냥 한 표에 불과합니다. 예전에 제가 쌀을 판매해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콩과 녹두도 팔고 말이죠. 그런데 대부분의 직원들이 성공확률이 낮다고 반대해서 결국 부결됐어요. 만일 한 기업의 창업주가 늘 옳은 말만 하고, 실수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 기업은 생명을 잃은 것과 다름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제가 전지전능한 신도 아닌데 무슨 수로 100% 다 맞추겠어요? 따라서 그럴 때는 아무래도 직원들의 지혜를 빌리는 게 현명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전략적인 중대 의사결정에서 류창둥이 절대적 독재자로 군림한 것은 사실이다. 징둥은 류창둥 혼자 힘으로 만든 게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류창둥이라는 한 개인에 의해 징둥의 전략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류창둥은 “전략은 나 혼자 고민하면 되는 일이다”라고 말해왔다. 얼핏 들으면 다소 거슬리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류창둥 외에 다른 사람들은 현업에 바쁘며 매일 분주히 움직여야 했다. 특히 말단직원일수록 자질구레한 업무 부담이 더욱 가중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고민할 시간이 없기 마련이다. 이들은 주위의 사소한 일에 둘러싸여 있어서 사고의 흐름이 막힐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하루 종일 이런저런 잡다한 일로 짬을 낼 수 없어서 도무지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제발 쥐어짜지 말라”고 하소연하는 직원들이 많다. 사실 현업실무에서 벗어나야만 더욱 장기적인 전략을 고민할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류창둥은 관리에도 특히 뛰어난 자질을 보이는데, 비유하자면 제갈량 스타일에 가까운 편이다. 그는 무슨 일이든 심사숙고해서 미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후에, 아래 직원에게 실행을 지시했다. 또한 모든 지시가 류창둥 자신에게서 출발되는 상명하달 형태로 업무를 추진했다. 이러한 ‘탑다운’업무방식은 부권사회의 특징이 강한 중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특히 80~90년대에 창업한 기업인은 가부장적인 가장처럼 독단으로 사업을 운영하며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편이다.
  
류창둥은 급성장한 창업회사일수록 절대적인 통제력으로 회사를 진두지휘할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회사가 안정적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윗사람 지시에 불응하는 회사라면 앞날이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민영기업에는 독재가 필요하며 민주적인 운영방식이 오히려 회사를 망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징둥은 창업주가 전략적인 측면과 ‘사용자경험’에 있어 절대적 독재권을 행사함으로써, 임직원이 ‘사용자경험’을 소홀히 여겨서도 그 원칙을 위배해서도 안 된다고 철석같이 믿도록 만들었다. 이는 누구나 무조건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이었다. 이와 동시에 기업전략을 확고히 수립하고, 전체 임직원이 회사의 전략목표와 정책노선에 따라 걸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경영철학은 과거 10년 동안 징둥이 고속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류창둥 본인이 커다란 톱니바퀴처럼 앞에서 이끌고, 그 뒤로 크고 작은 바퀴가 정교하고 단단하게 맞물리게끔 해서 맹속력으로 질주했던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3. 조기교육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