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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ug 01. 2016

09. 프리다 칼로와 천경자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

                                                                                                                                  

프리다 칼로의 셔츠를 입고 있는 천경자


천경자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과 드라마틱한 삶을 진솔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멕시코의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와 비견할 만하다. 프리다는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었고, 18살 때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해 30여 차례의 수술을 받으며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게다가 21살 연상의 난봉꾼인 디에고 리베라와 어렵게 결혼했지만, 그가 프리다의 여동생과 불륜을 저지르며 견디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세 번에 걸친 유산의 아픔과 자살을 시도할 정도의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기구한 삶의 역경과 남자로 인해 고통받으면서도 특정 유파를 따르지 않고 자전적인 이야기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두 여류작가는 통하는 바가 많다. 하지만 이들이 추구한 예술적 이상은 결코 같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꿈과 환상을 쫓고 그곳에서 영혼의 위안을 얻은 천경자와 달리 프리다는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한 유물론자였다. 당시 프리다가 유럽에 갔을 때 초현실주의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지만, 그녀는 “내가 그린 것은 항상 내 현실이었다”라며 초현실주의 운동에 동참하지 않았다. 공산주의의 이상을 위해 투쟁한 레온 트로츠키를 절대적으로 지지한 프리다는 리베라와 함께 공산주의 모임에 적극 참가한 현실주의자였다. 따라서 천경자와 달리 환상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치유하고자 하지 않았고,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체념과 원망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즉 4차원의 세계나 영적인 세계에서 구원을 갈망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프리다가 자신의 고통을 관조하고 객관화하는 데 주력했다면, 천경자는 자신의 슬픔과 한을 아름다운 환상과 대립시키며 신명 나는 승화를 추구했다.

프리다와 천경자의 자화상은 외형적으로는 유사해 보이지만, 예술세계에서 추구하는 이상이 전혀 다르다. 프리다의 <가시 목걸이를 한 자화상>을 보면, 원망과 체념이 섞인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목에 걸친 가시나무 목걸이와 흐르는 피는 그럴 수밖에 없는 심리적 고통을 암시한다. 프리다의 작품에도 머리에 꽃과 나비가 나오고, 자신의 고향에서 친구처럼 기르던 원숭이와 개, 앵무새 등이 나온다. 그러나 이것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자신의 강박적인 심리의 대용물일 뿐 악몽 같은 현실을 반전시킬 어떤 환상적 장치는 아니다.

프리다 칼로, <가시 목걸이를 한 자화상>, 1940, 캔버스에 유채, 62x47cm




반면에 천경자의 자화상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는 자신의 한과 고통을 승화하고자 하는 초월적 열망으로 가득하다. 유난히 긴 목의 여인은 밀려오는 고독과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여 입술을 굳게 다물고 초점을 잃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머리에 화관처럼 쓰고 있는 네 마리의 뱀은 22세 때의 슬픈 기억을 환기시킨다.

당시 그녀는 집안의 몰락과 처절한 가난, 불행한 결혼,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 등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불행의 비를 맞으며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뱀을 그렸고, 그것을 계기로 화가로서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천경자에게 뱀은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이다. 또 동공을 열고 허공을 응시하는 여인의 눈에는 숙명적 한과 초월적 환상이 가득하다. 이처럼 자신의 한과 환상을 드라마틱하게 대립시켜 승화시키는 것이 천경자 예술의 문학적 구조이다.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1977, 종이에 채색, 42x34cm



"내 그림 속에 아름답다 못해 슬퍼진 사상, 색채를 집어넣고자 노력하는 것이 바로 한이다. 왜냐하면 내 인생이 어쩌고저쩌고 식의 그런 범상한 한이 아닌 예나 지금이나 어쩔 수 없이 불쌍하고 아름답고 슬픈 혈육 관계의 한 같은 것, 그런 것을 그림으로써 아름다운 자연에 곁들여 승화시키고 싶어서이다. 그러니까 창(唱)도 그렇고, 소설이나 전설 역시 그렇고, 모든 예술은 한을 승화시켰을 때 향기가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천경자 예술은 자신의 한을 환상으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굿이나 판소리의 메커니즘과 유사하다. 여기에서 한은 고통의 원인을 원망하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억압된 감정을 신명으로 반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천경자가 특히 즐겨들었던 판소리 심청가에서 마음씨 착한 심청이는 봉사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300석에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그러나 하늘의 도움으로 황후로 환생하고, 맹인 잔치에서 아버지를 만나 눈을 뜨게 해준다. 혈육의 정 때문에 생긴 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하늘의 도움으로 해결되는 심청전의 스토리에는 한국 특유의 한의 미학이 담겨 있다.

자아의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오는 감정의 응어리인 한은 풀리지 않으면 살기가 되어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죽어서라도 반드시 한을 풀고자 했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신과 만나는 조건으로 여겼기 때문에 체념과는 달리 비극적이면서 종교적이다. 그래서 천경자는 아름다움의 원류로서 한을 사랑하고, 슬픔 뒤에 오는 정화로 생의 의지를 복원하고자 했다. 이처럼 한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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