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너는 어때?

<피에스 프롬 파리>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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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은 같은 블록을 두 번이나 돌다 마침내 두 줄로 주차된 도로에 대충 차를 세우고 두 승객을 돌아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뭐, 너무 낯설지는 않지?”
“네 운전 실력이야, 뭐.” 아서가 대답했다.
“누구 때문에 내가 수술대 밑에서 두 시간이나 쭈그리고 있었던 거, 얘기했지?” 폴이 로렌을 쓱 쳐다보면서 말했다.
“스무 번도 더 했지.” 아서가 대꾸했다. “왜?”
“그냥. 자, 열쇠 받아. 맨 위층이니까 가방 들고 올라가. 난 주차장에 차 넣어두고 올게.”

로렌과 아서는 방 하나를 차지하고 짐을 풀었다.
“조가 안 오다니, 서운하네.” 폴이 들어오면서 말했다.
“어린애에게는 너무 긴 여행이라서.” 로렌이 설명했다. “대모 집에 맡겼는데 되게 좋은가 봐.”
“대부 집으로 데려왔으면 훨씬 좋아했을 텐데.”
“우리도 오붓한 여행 꿈꿀 수 있잖아.” 아서가 끼어들었다.
“누가 뭐래, 오래된 연인이신데. 대부인 내가 조를 자주 못 보니까 하는 말이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든가. 그러면 조를 날마다 보고 살 텐데.”
“뭐 좀 먹을래? 케이크를 어디다 뒀더라?” 폴이 중얼거리면서 주방 수납장을 열었다. “케이크 분명히 사뒀는데.”

로렌과 아서는 눈길을 주고받았다.

폴은 커피를 따라주면서 자신이 짜놓은 관광 프로그램을 상세히 설명했다.
때맞춰 날씨까지 좋으니 첫째 날은 에펠탑, 개선문, 시테섬, 몽마르트르 언덕의 사크레쾨르 대성당 같은 파리의 명소를 둘러볼 거고, 부족하면 다음 날도 계속 관광하기로.

“우리 둘의 오붓한 여행이라니까…….” 아서가 상기시켰다.
“어련하시겠어.” 폴은 약간 거북한 얼굴이었다.

로렌은 마라톤 같은 관광을 시작하기 전에 좀 쉬고 싶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친구끼리 할 얘기도 많을 텐데 자기를 빼놓고 둘이서 점심을 먹으라고 했다.

폴은 아서에게 정오에는 테라스에 해가 내리쬐니까 건물 아래층 카페로 가자고 말했다.
아서는 셔츠를 갈아입고 따라나섰다.

카페에 자리 잡고 앉은 두 친구는 잠시 말없이 서로를 지켜봤다. 마치 둘 중 누가 먼저 말을 꺼낼지 기다리는 것처럼.

“여기서 지내는 거 행복해?” 결국 아서가 먼저 내뱉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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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런 것 같아.”
“그런 것 같아?”
“행복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작가의 문장으로는 그럴듯하군. 하지만 질문한 사람은 난데.”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데?”
“진심.”
“난 내 직업이 좋아. 가끔은 내가 남의 나라에 침입한 느낌이 들어, 소설 여섯 권을 썼을 뿐이지만. 많은 작가들이 나를 그렇게 보는 것 같아. 동료 작가들이 털어놨거든.”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은 있고?”
“작가 클럽에 등록했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일주일에 한 번 저녁때 나가서 수다를 떠는데, 주로 우리 작업의 심리적 압박에 관한 얘기지. 그러다 맥주 마시러 브라스리(음식과 칵테일, 와인, 맥주 등을 모두 주문할 수 있는 레스토랑)로 가기도 하고. 너한테 이런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 좀 웃긴다. 울적하기도 하고.”
“잠자코 듣고 있는데, 왜?”
“너는 어때? 사무실은 잘돼?”
“너에 대해 말하는 중이었어.”
“사실은 글 쓰는 데만 전념하고 있어. 몇몇 도서전에 참여하고, 이따금 서점 사인회에도 가고. 작년에는 내 책이 좀 팔린 독일과 이탈리아에 갔었고. 일주일에 두 번 헬스클럽에 가. 운동은 끔찍하게 싫지만 건강히 살려면 어쩔 수 없지. 그거 말고는 계속 글을 쓰지. 더해야 되나?”
“그래, 아주 즐거워 보여, 폴.” 아서가 냉소적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그건 아니지. 난 밤에 행복하니까. 밤에는 내 소설 속 인물들을 만나거든. 그래, 맞아, 인생이 즐거워지고 있어.”
“만나는 여자는 있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자주 만나는 건 아니니까. 아무튼 끊임없이 그녀를 생각해. 그건 네가 잘 알잖아?”
“누군데?”
“내 소설을 번역하는 한국인 여자, 놀랐지?” 폴이 쾌활한 척하면서 말했다. “한국에서는 내가 인기 있는 모양이야. 가본 적은 없어, 알잖아, 내가 비행기 무서워하는 거. 나를 파리에 데려다 놓은 비행기,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칠 년 전인데!”
“난기류 속에서 열한 시간, 나한테는 어제 일같이 끔찍해.”
“언젠가는 다시 떠날 날이 올 텐데.”
“글쎄, 그건 모르지, 체류증 받았거든. 뭐, 정 안 되면 배를 타면 되지.”
“그 번역가는 어떤 여자야?”
“어메이징하지, 그녀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해가 갈수록 빠져들고 있어. 장거리 연애는 진짜 쉽지가 않아.”
“폴, 내 눈에는 너 많이 외로워 보여.”
“외로움이 위안이 되었다고 말한 사람이 너 아니야? 내 얘기는 많이 했고! 너희 둘은 어때? 그리고 조의 사진 있으면 보여줘, 많이 컸겠다.”

매혹적인 여자가 옆 테이블에 앉았다. 폴은 여자에게 아무 관심이 없었다. 아서는 그게 걱정됐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폴이 말을 계속했다. “연애, 여러 번 해봤어.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그리고 경이 나타났고. 다른 여자들과는 달라. 경이랑 있으면 내가 정말 나 자신으로 느껴져. 굳이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되고 유혹할 필요도 느끼지 않아. 경은 내 책에서 나를 알아가고 있는데 그게 또 어처구니가 없어. 내 책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거든.”
“누가 그 여자한테 네 책을 번역하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잖아.”
“내 화를 돋우기 위해서, 아니면 나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어쩌면 경이 좀 과장해서 말하는 건지도 모르지.”
“네가 혼자 사니까!”
“너무 길게 늘어놓는다고 생각하겠지. 근데 말이야, 누가 말했더라?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고 혼자 살 수도 있다고.”
“내 상황은 좀 특별했어. 그런데 넌 그렇게 정해버리고 있잖아.”
“내 상황도 특별해.”
“역시 작가라서 다르네. 어째 너를 행복하게 해줄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하려는 것 같다.”
“나 행복하다니까, 빌어먹을!”
“그래, 되게 그런 것 같다.”
“젠장, 아서, 나를 분석하려고 들지 마. 끔찍이 싫으니까. 그리고 네가 내 인생에 대해 뭘 안다고.”
“우리는 청소년 시절부터 알아온 친구야. 네가 어떻게 할지 예측하는 데 구차한 설명 따위가 필요 없는 사람이야, 나는. 내 어머니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많은 걸 얘기하셨지. 그래서 말인데 다음 소설은 카멜에 있는 네 어머니 집을 배경으로 쓰고 싶어. 거기 안 간 지 너무 오래됐다.”
“누구 때문인데!”
“그리워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 폴이 말을 이었다. “기라델리 스퀘어 초콜릿 상점, 요새 끝까지 하는 산책, 파티, 사무실에서 벌이던 치열한 논쟁, 대화할 때마다 그 끝은 늘 우리 둘의 미래를 설계하는 거였는데.”
“우연히 오네가를 만났어.”
“나에 대해 뭐라고 해?”
“응, 그래서 너는 파리에 산다고 말해줬어.”
“돌싱은 아니지?”
“손가락에 반지는 없더라고.”
“굳이 나를 떠날 것까지는 없었는데.” 폴이 피식 웃으면서 덧붙였다. “오네가는 우리 우정을 질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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