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가 작은 일생>
친구가 가입한 회원제 스포츠클럽의 조식이 맛있다는 소문이 자자해 한번 찾아가 봤다.
뷔페 형식으로 중앙 테이블에 과일과 달걀, 빵과 요구르트가 놓여있었다. 맛도 괜찮고 전망도 훌륭한데 입구에 “싸 가시는 일은 삼가주세요.”라고 쓴 종이가 붙어있는 걸 보고 조금 놀랐다.
옆자리에 운동을 끝낸 맵시 좋은 젊은 커플이 앉았다. 쓸데없는 지방이라곤 몸 어느 구석에도 없어 보이는 근육질의 두 사람이 테이블 위에 가져다 놓은 접시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둘 다 삶은 달걀을 여섯 개씩이나 가져왔던 것이다. 합계 열둘의 달걀을 보고 내심 ‘이래서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한 걸까?’ 하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두 사람이 달걀 껍데기를 벗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몸매 좋은 사람들이 달걀을 여섯 개씩이나 먹을 것인가 하고 지켜보는데, 뜻밖에도 노른자와 흰자를 요령 있게 나누더니 흰자만 먹고 노른자를 모두 남기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버려질 노른자를 바라보노라니 식량이 부족해 살기 힘든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슬퍼졌다. 예전에 아프리카 카보베르데공화국을 방문했을 때 묵은 작은 호텔에서 주 1회만 제공되던 달걀이 조식으로 나오자 “앗, 달걀이다!” 하고 기뻐했던 일이 생각났다. 카보베르데공화국은 그즈음 세계의 빈곤국 가운데 하나였다.
이미 돈을 지불했으니 누구든 먹던 음식을 남길 자유는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사람의 권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먹는 방식이 정말 괜찮은 걸까.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실제로 행하면 품위가 없어지는 일이 있다. 혼자 독차지하거나 나누지 않는 것이 바로 그런 일. 손쉬운 예로, 초밥집에서 돈이 있다고 참치 뱃살만을 주문해 먹는 사람을 들 수 있다. 그 사람 때문에 식당의 다른 손님들은 뱃살을 맛보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다른 사람과 나눌 줄 모르고 자기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행동 양식은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조금 전 언급한 아프리카의 카보베르데공화국은 아프리카 대륙의 서쪽, 대서양에 떠 있는 작은 섬나라다. 이 나라까지는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가야 하는데, 나는 도중에 그만 짐 가방을 모두 분실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 나라에 도착했을 때는 말 그대로 몸에 옷만 걸친 채 내던져진 신세가 되고 말았다. 여행 목적이 사진 촬영이었기 때문에 기분 전환도 할 겸 노천 시장에서 현지인들이 입는 셔츠를 사 입고 카메라를 목에 건 채 돌아다녔다.
그런데 내 모습을 본 한 꼬마 여자아이가 다가오더니 흙이 묻은 손으로 꼭 쥐고 있던 빵을 나눠서 반쪽을 나에게 내미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먹을 것을 못 살 사람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자기 배를 채우기에도 부족해 보이는 빵을 생면부지의 외국인에게 주저 없이 나눠준 여자아이의 눈동자는 맑고 반짝였다. 따뜻한 기분이 가슴 깊은 곳에서 뭉클하며 퍼져 나왔지만 손바닥에 놓인 흙 묻은 빵을 어쩌나 하고 난감해했던 기억이 난다.
나누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고통받을 거라고 느낄 때, 사람은 빵 한 쪽이라도 나눌 수 있다. 그런데 많은 것이 넘쳐나면 나누지 않아도 된다. 풍요로움 속에서도 나눌 줄 아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접시에 남겨진 산처럼 쌓인 노른자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