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가 작은 일생>
데라다 도라히코의 《과학자와 머리》라는 수필집 가운데 공감 가는 대목이 있다. 과학자는 “사리 분별이 느리고 이해력이 떨어지는 촌뜨기에 벽창호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부분이다.
왜일까?
머리가 좋은 사람은 앞날을 꿰뚫어보므로 결과가 안 좋을 것 같거나 전망이 어두운 일은 아예 시작할 생각도 않는다. 반면 머리 나쁜 사람은 머리 좋은 사람이 하지 않는 일에 덤벼든다. 결국 안 된다는 걸 알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은 결코 무용한 시간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 다른 방법을 발견하게도 되기 때문이다.
하나 더.
머리가 좋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흠을 잘 간파하고 비판을 일삼는다. 그러면 자신이 대단하게 느껴져 노력을 하지 않게 되고, 결국 발전도 멈춘다. 반면, 머리가 나쁜 사람 눈에는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이 훌륭해 보인다. 따라서 자신도 훌륭한 일을 해보기 위해 애쓴다. 머리 좋은 사람은 비평가는 될 수 있지만 스스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기는 힘들다고 데라다 도라히코는 말한다. 모든 행위에는 실패의 위험이 동반한다. 그래서 실패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과학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머리 좋은 사람, 일의 결과를 미리 생각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푸는 일에도 맞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매일 밤 11시까지 여는 스포츠클럽에 들러서 10분쯤 수영하는 것을 퇴근길의 습관으로 삼고 있다. 수영을 하고 나면 어김없이 기분이 상쾌해진다. 기분이 가라앉았을 때 아주 잠깐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바뀐다. 퇴근길에 잠깐 운동을 하거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느낄 수 있다. “10분 수영하는 걸로 뭐가 바뀌겠어요.” 하는 것은 머리가 좋은 사람의 말.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몇십 년도 더 전에 사라 본의 음악을 듣고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어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머리 좋은 사람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작정 시작해서 어쩌려고.”, “그런다고 사라 본이 될 수는 없잖아.”, “아무리 해도 돈이 안 생길 거야.”, “그런 걸 할 의욕이 있으면 다른 걸 하는 게 어때?”라는 말을 들었다.
데라다 도라히코의 분류에 따르자면 굉장하구나, 하고 생각해서 하기 시작한 나는 머리 나쁜 사람에 속할 것이다. 결국 안 된다는 걸 알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안 된다는 걸 알고 나서도 계속하고 있으니까. 머리가 나빠도 보통 나쁜 게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얻은 만남이나 배움은 내 마음의 보물이 되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해보고 싶은 것을 시작하거나 문득 의문을 느낀 것의 근본을 궁금히 여기는 호기심. 그 호기심이 내게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해봤자야.”, “결과가 뻔해.”라는 생각에 시작도 하지 않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