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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15. 2018

07.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슬픈 날엔 샴페인을>



캘리포니아 주의 동남쪽 사막에 아이밴파 드라이 레이크(Ivanpah Dry Lake)라는 지역이 있다. 레이크라고는 하지만 호수는 아니고 비구름이 지나가면서 쏟아져 내린 빗물이 넓고 평평한 지역에 한시적으로 고여 있는 것인데, 호수처럼 맑고 넓어서 레이크라고 불리는 것이다. 최근 이곳에 22억 달러가 투입된 거대한 태양열 이용 시설인 클린 에너지(clean energy) 생산 시설이 설치되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파워 타워(power tower) 3개를 설치하고, 지상에는 차고 문짝의 크기만 한 거울 18만 개를 설치해 태양빛을 40층 높이의 보일러 탑으로 반사시키는 것이다. 탑 안의 물이 데워지면 데워진 물이 증기를 만들고 증기가 터빈을 작동시켜 캘리포니아와 그 주변의 주들로 보낼 전기를 만들어내는데, 현재 650기가와트(GW)를생산해내고 있다. 척박한 산과 땅, 지평선만 보이는 사막의 한복판에 사열식을 하듯 모여 있는 태양열 판과 은빛 강철탑은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차가운 조형미를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 이곳은 하늘을 나는 새와 사막동물들에게는 화탕지옥이다. 성경이나 불경에 나오는 모습의 지옥은 아니지만 컴퓨터와 최첨단 시설을 갖춘 현대적 모습의 지옥인 것이다. 이곳에서는 대략 2분마다 한 마리의 새가 불에 타서 추락한다. 태양반사 거울판에서 나오는 레이저같이 강한 광선이 근처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깃털을 점화시켜 새들이 연기를 뿜으며 떨어지는 것이다. 밝은 빛에 작은 곤충들이 꼬이면 그런 곤충들을 잡아먹는 새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기 때문에 탑들이 새들을 유인하는 함정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부의 전문가에 따르면 이것 때문에 죽음을 당하는 새가 일 년에 약 2만 8천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일반 새들뿐만 아니라 황금독수리, 매, 사막거북과 파충류까지도 클린 에너지 생산 때문에 죽어가는 것이다. 보이는 것 뒤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한 잔의 와인은 바쁘게 달려가는 시간을 잠시 늦추게 해준다. 흉보다는 덕담을, 정치 이야기보다는 여행 이야기를, 슬픔보다는 기쁨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게 해준다. 그러나 풍요롭고 아름답게 반짝이는 한 잔의 와인에는 호세, 프란체스코, 마리아, 가르시아 등의 이름을 가진 멕시코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와 애환이 담겨 있다. 포도 생산 지역을 포함해서 미국의 농업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멕시코 사람들이다.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 전체 와인의 90퍼센트 정도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4백 가지 농작물을 생산해내는 세계 제일의 농업 생산 지역이다. 아몬드, 아티초크(artichoke), 대추, 피스타치오, 무화과(fig), 건포도, 복숭아, 마른 자두, 호두 등 30여 가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을 생산해내고 있고 농업의 경제 규모도 3천억 달러에 달해 미국 내 총생산의 5퍼센트를 차지한다. 고용시장의 규모도 미국 전체의 2퍼센트에 해당할 만큼 규모가 크다 보니 농장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절박한 상황이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일하는 멕시코 농장 노동자들의 수는 대략 백만 명이 넘는데 그중 삼분의 일은 불법체류자로 추정된다. 농장 일은 일이 힘든 것에 비하면 임금이 턱없이 낮은 직종이지만 그 정도도 그들에게는 매우 큰 금액이라서 많은 멕시코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다. 미국으로 밀입국하기 위해서는 전문 월경꾼들에게 7~8천 달러를 지불해야 하는데 가족과 친지들이 십시일반으로 그 비용을 마련해준다. 후불제도 있다고 하는데 외상으로 할 경우 전문 월경꾼들은 희망자의 부모와 가족을 먼저 만나두었다가 돈을 부치지 않았을 때는 그 가족을 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경을 넘어서 어느 특정 도시까지만 넘겨주는 것이지 그 이후의 일까지 책임져주는 것은 아니다. 돈이 없어서 스스로 국경을 넘는 사람들은 약간의 마른 음식과 물 한 통을 가지고 국경수비대의 감시와 한낮 사막의 뜨거움을 피해 낮에는 자고 주로 밤 시간을 이용해 일주일 정도를 걸어야 하는데, 무사히 월경에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다. 게다가 운이 나쁘면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일과 채소가 익을 때면 불법체류자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진다. 과일이나 채소 같은 밭작물은 제때 수확하지 않으면 곧 쓰레기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불법체류자들에 대해 미국인들은 대체로 싫어하는 그룹과 관대한 그룹으로 나뉜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불법체류자들이 자기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으며 자신들이 낸 세금이 불법체류자들의 치료와 그 아이들의 교육에 쓰인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농장주들은 밭에서 일하려고 하는 백인들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낮은 임금과 과도한 노동량, 어려운 환경 때문이다. 백인들은 물론이고 어느 누가 자기 아이들을 황량한 농촌에서 학교에 보내길 원한단 말인가? 불법체류자든 아니든 멕시코인들이 아니면 그 거대한 땅에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체류자들의 임금이나 혜택, 노동환경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 불법체류자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2030년경에는 히스패닉(Hispanic, 스페인 언어를 쓰는 사람)이 미국 전체 인구의 20퍼센트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될 만큼 그들의 인구는 미국 내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멕시코인들에게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 남서부의 모습은 낯설지가 않다. 그들의 선조가 대대로 살아왔던 땅이기 때문이다. 스페인으로부터 3백 년 간의 식민 지배를 받는 동안 그들의 언어와 문화와 종교는 스페인 식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라스베이거스(Las Vegas), 샌디에이고(San Diego),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산타마리아(Santa Maria), 산호세(San Jose), 산타페(Santa Fe) 같은 도시의 이름은 모두 스페인어에서 온 것인데, 아직도 미국 서부의 60퍼센트가 넘는 지명이 스페인 말로 되어 있다. 여유, 낭만, 기쁨, 덕담, 음식, 예술 등과 함께 늘 등장하고 행복하게만 보이는 한 잔의 와인 뒤에는 보이지 않는 멕시코 노동자들의 힘든 삶이 녹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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