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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15. 2018

01. 학교는 어떻게 나를 만들었을까?

<넥스트 위너>



교육은 의심할 바 없이 내 인생에서 활용해온 모든 가능성의 원천이다. 아마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학교는 지나치게 목표 지향적이다. 우리가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우리의 선택은 점점 더 좁은 범위로 집중된다. 중학교 2~3학년이 되면 이미 자신이 선택한 분야로 ‘진로 결정’이 시작된다. 금요일 밤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제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나이에 인생에 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시기에 특정 과목에서 성취가 저조하면, 그와 연관된 진로에서 성취할 기회마저 박탈당하게 된다. 지금은 조금 덜 하지만, 음악이나 미술처럼 좌뇌 논리 사회에서 가치가 떨어지는 특정 과목을 좋아하면, 그것을 추구하지 말도록 요구당한다. 중학교 때 수학에 실패하면 고등학교 수학에서 성취하기 어려우며, 고등학교 수학에서 높은 성취를 이루지 못하면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 고등학교 2학년에 진로를 바꾸려고 생각하면 특정 과목의 학습 시기를 놓쳐 삶의 흐름 자체가 깨진다.  



따라서 비교적 어린 시기, 법적으로도 이성적인 나이에 훨씬 못 미쳤을 때 과학, 예술, 인문학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더는 배우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 주제 영역에서 테스트를 통과하는 방법만을 배우고 있다. 우리는 구체적인 정보를 암기하고, 이것을 통해서만 더 높은 수준의 주제에 계속 집중할 수 있는 자격을 받는다. 궁극적인 목표는 최종 관문을 통과하여 공식 자격을 얻는 것이다.

당신이 회계사나 엔지니어처럼 전통적인 산업시대의 직업을 갖고 싶다고 하자. 중학교 3학년이 되면 이 직업을 준비할 특정 기초과목들을 수강하기 시작할 것이다.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이 원하는 필수 과목을 수강하지 않으면 진학할 수 없다. 그리고 대학 학위가 없으면 잠재적 고용주는 당신을 채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이 원하지 않은 영역에서 자격을 얻었더라도 똑같이 좌절하게 된다.
  
우리가 과목을 선택하는 데에도 그 이면에는 사회적 판단의 가중치가 깔려있다. 우리 선생님과 동료들이 지적 위계 상에서 우리를 어디에 배치할지 파악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잠재력이 가장 뛰어난, 가장 똑똑한 사람은 좌뇌 논리 사회에서 가장 가치 있는 과목인 수학과 과학에 능한 사람이다. 위계 구조상 바로 한 단계 아래에는 금융, 경제, 문학 등 존경받는 인문학에 밝은 사람이 있고, 당연히 위계 구조의 바닥에는 예술과 같은 과목에 뛰어난 사람이 자리한다.

예술과 같은 과목에 뛰어난 사람은 대개 낙제생으로 여겨지며, 그나마 자기 재능을 활용하여 삶과 경력을 유지하면 다행이다. 예술가 대부분에게 경력은 경제적 가치가 거의 없고, 기껏해야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여가를 즐기는 부수적인 활동일 뿐이라고 아이들은 거짓 설득을 당한다. 하지만 애플과 나이키와 같은 회사가 제품의 예술적 디자인을 바탕으로 상품 중심의 경쟁에서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왜 제한된 과거의 경제적 잠재력만을 근거로 개개인에게 주어진 재능과 열정을 경시해야 하는가? 이런 경제적 제한이 급격히 뒤바뀌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우리는 학교 교육의 기초형성 시기에 학습의 기본부터 배운다. 그러니까 자기 두뇌와 신체가 할 수 있는 것을 배운다. 매우 신중하고 반복된 연습을 통해 우리는 읽기, 쓰기 그리고 수학과 씨름하는 능력을 키운다. 우리는 사물을 예술과 놀이, 창의력과 혼합한다. 물건을 만들고 자기 몸을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폭넓은 학습 경험의 하나로 스포츠와 신체 활동을 탐구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놀고 협력하며, 함께 일하는 것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배운다. 

초등학교가 끝날 무렵이면 견고한 기초가 구축되며, 그것만으로도 아이 대부분은 자기 삶에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하지만 독창적인 자기만의 감각을 개발하지 못한 채, 그저 지적 가능성만을 열어두고 더 큰 게임을 하기 위해 졸업한다. 중등학교에서는 학습의 기본 요소들이 실제 삶을 시작하는 데 활용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교육 피라미드 모델이 실제로 적용된다. 


학년이 거듭될수록 개인적인 활동이나 참여는 제한된다. 이런 제한은 육체적인 활동에서 시작된다. 글쓰기나 타자 이외에 다른 곳에 손을 사용한다면 곧바로 제한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 시간 정도 체육이라는 사치를 누렸던 때를 생각해보자. 이 시간을 거의 자유시간이라는 ‘선물’로 간주하지 않았는가? 과학을 공부한다면 어떤가? 인문학을 배울 기회를 잃게 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다음에는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이 함께 배우고 일하는 경로로 들어선다. 꿈이나 여러 가지 재능, 세계관이 다른 동급생들은 우리가 가는 학습 경로에서 사라지고 다른 경로에 들어선다. 우리가 배우는 과목의 폭이 좁아질 때마다 사고의 유연성은 조금씩 상실된다.
  
중학교 졸업반에 이를 무렵의 나는 어땠을까? 밀접하게 연결되고 세분된 과목들로 넘어가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진로가 심각하게 제한되었다. 내게는 어떤 진로가 기다리고 있었을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전공은 경제학, 회계학, 법률학, 영어 그리고 수학이었다. 이런 시스템의 결정대로 나는 과학을 더 배울 수 없는 시스템 속에서 그대로 시간을 보냈다. 불행하게도 내가 과학에 대한 열정을 발견한 것은 훨씬 나이가 들어서였다.

학습 피라미드에 더 높이 오를수록 선택한 과목은 더 깊이 파고들지만, 그만큼 우리의 세계관은 제한된다. 사회와 경제가 극한으로 변화하는 시기에, 특히 오늘날과 같이 과거에 서로 완전히 나뉘었던 다양한 산업이 교차하는 시기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가능성에 노출될 기회를 얻는 것이며, 다양한 학문에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아는 것은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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