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아이를 앗아가고 어른을 남겨 놓았다.

<불안과 함께 살아지다>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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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딱똑딱.’

시간이 정말로 이런 소리를 흩뿌리며 흘러가지는 않는다. 표현할 길이 없어 ‘똑’과 ‘딱’으로 표기하지만, 그도 ‘똑’만 이어지던가, ‘딱’만 이어지던가 하는, 같은 소리의 연속이다. 그러나 우리는 ‘똑’에 멈추어 놓고서 ‘딱’을 기다리는, ‘똑딱’의 리듬감으로 시간을 인식한다. 그렇듯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의 체계로 세상을 보고 듣는다.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고, 들리는 대로 듣는 것이 아니다. 보고 싶은 것을, 듣고 싶은 것을, 보고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가, 이미 구비되어 있는 언어적 정보로 환원된 심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가 관여한 사건은 이미 팩트가 아니다. 그저 너와 나의 기억이 해석해내는 언어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시간이 털어내고 간 우연들은 우리의 해석을 거쳐 시간의 뒤안켠에 쌓여가는 필연이 된다. 하여 지나고 난 뒤에 돌아보면 모든 것들이 그토록 필연이지 않던가. 그 필연으로 점철된 언어들이 다가올 수많은 우연들을 예단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어록 하나, 그가 가진 어휘가 그 사람의 세계이다. 가용 어휘가 많을수록 표현할 수 있는 세계도 넓다는 함의이지만, 아무리 많고 넓어도, 결국엔 생각을 제한하는 한계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제한된 지평 안에서 일정 어휘를 반복하는 것을, 넓어진 언어의 범주로 착각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우리 곁을 스쳐간 숱한 순간이 우리에게 털어내고 간 착각의 언어, 바로 ‘어른’이다.

자신이 걸어온 시간의 흔적들을 뒤돌아보며, 부단히도 그 관성으로 우연을 해석해내는 어른들의 오류. 알 수 없는 내일에 대한 걱정과 기대로 살아가는 오늘이지만, 그 걱정과 기대와는 별개로 어제까지의 ‘나’를 고집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어른의 삶이기도 하다. 시간은 우리에게서 아이를 앗아가고 어른을 남겨놓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어른의 언어를 혹은 과거의 독단을 톱니바퀴 삼아, 시간은 ‘똑딱똑딱’ 잘도 흘러간다. 어른이 되고 난 후 우리에게서 사라져간 ‘우연’. 우리는 그 순수의 가치로부터 그렇게 멀어져 왔다. 청춘의 꿈도 ‘숫자에 불과한’ 나이로 산화가 되어간다.


tja.jpg?type=w1200 고재군, <그리운 날에12>, 89.4x130.3cm, oil on canvas, 2017.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간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단을 밟고 올라서서, 그렇게도 갈망했던 네버랜드의 담장 너머를 내다볼 수가 있게 된다. 그리고 아직 그 단에 올라서지 못한 ‘아해’들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너희들은 삶의 깊이를 모르노라! 그러나 높이가 곧 깊이인 것은 아니다. 시간의 축적만으로 어른의 자격이 갖추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종종 착각을 한다. 자신이 쌓아놓은 높이를 재고, 그것을 심연의 깊이로 환산하며, 그것을 빌미로 어린 세대의 말과 생각을 가로막는다. 니체에게 심연이란 더 깊은 곳이라기보다는 깊이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는 지점을 의미한다. 오히려 깊이에 얽매이지 않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시선에 심연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에는 보이던 것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한다. 높이이든, 깊이이든, 넓이이든, 하여튼 무언가에 가리어져 다시는 네버랜드 안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네버랜드를 떠나온 피터팬은 더 이상 하늘을 날지 못했다. 어른들과 뒤섞여 사는 세상 속에서는 굳이 날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나는 법을 잊었다. 하늘을 잊은 피터팬에게 남겨진 하늘의 흔적은 고소공포증이었다는 역설, 자유의 공간은 도리어 공포의 기억으로 새겨져 있다. 어쩌면 우리는 어린 시절을 잊은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냥 피터팬으로만 살다간 이 세계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 그러나 어른들의 세상을 바꾸어온 이들은, 여전히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피터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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