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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19. 2018

04. 불필요한 것과 이별하기

<당신의 재능이 꿈을 받쳐주지 못할 때>



엄마가 내 아들한테 쓰라고 예쁜 수건을 하나 주셨다. 어릴 때 내가 쓰던 거라는데 나는 전혀 기억이 없다. 그 시절에 이런 예쁘고 사랑스러운 패턴이 있었을 리가 없다고까지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은 나한테 쓴 적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거라고 하셨다. 그 수건이 당시에는 귀한 거라 쓰기가 아까워서 별로 안 예쁜 거로 쓰셨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집 장롱에 잔뜩 쌓여 있는 물건들이 떠올랐다. 수건, 베갯잇, 침대보, 이불보 등 완전 새것이지만 대부분은 다 엄마가 ‘쓰기 아까워서’ 모셔둔, 쓸 데가 없는 물건들이었다.

엄마도 그렇지만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 집에 찬장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는 전부 예전에 친구가 준 선물이거나 대회에 나가서 받은 상처럼 당시에는 보기만 해도 흐뭇했던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일전에 찬장에서 커플 USB 세트 두 개를 발견했는데, 회사 행사에서 사장님이 상으로 주신 거였다. 세트마다 USB가 두 개였고, 용량은 각각 4G 짜리였다. 그 당시만 해도 꽤 큰 용량이었고 케이스와 디자인도 예뻤다. 그런데 지금 보니 너무 평범하고 케이스도 좀 망가져서 누구한테 선물할 수도 없었다.

이것 말고도 정교하게 만든 여권 케이스, 독자들이 선물한 수제 비누, 각종 기념품이 가득했다. 나중에 쓸 수 있을 줄 알고 아까워서 계속 모셔 두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 물건들은 지금 아이 방에 있는 캐비닛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했고, 오갈 데 없어진 아이의 책은 제일 아래 칸에 쑤셔 넣을 수밖에 없었다.

아껴 쓰려다 쌓인 물건들 말고 미리 쟁여둔 물건들도 있었다. 나는 사람들한테 애들은 빨리 큰다는 말을 자주 들어서 아들 옷을 살 때 좀 넉넉한 옷을 고르는 편이었다.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며 샀는데, 거의 다 1년이 지나서야 겨우 입을 수 있는 옷들이었다.

아이는 생각처럼 그렇게 빨리 크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지금 당장 입을 옷이 없어 다시 장만해야 했다. 빨리 클 줄 알고 샀던 옷들은 내년이면 이미 유행이 지나거나 안 예뻐 보여서 결국 집에 쌓여 있는 신세가 되었다.

아이 물건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평소에 쇼핑하다가 아기자기한 물건이나 잡화를 보면 참지 못하고 사들였다. 이건 어디에 놓고 저건 언제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결국은 1년에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우리 집에 있는 여행 가방과 생활용품들도 그렇게 해서 구매한 것이다. 하지만 여행 갈 때는 꼭 챙겨야 할 물건도 안 챙길 판이니 이런 불필요한 물건들이 생각날 리가 없다. 그리하여 아끼다 똥 된 물건과 미리 쟁여둔 물건이 집을 점거할 정도가 되었다.

G는 이런 쓸모없는 물건들을 ‘쓰레기’라고 하면서 나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쓰레기나 쌓아두려고 이렇게 비싼 집을 산 건 아니지?”

처음 들었을 땐 화가 났었다. 내 물건을 어떻게 쓰레기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몇 년 동안 방치만 하고 아예 쓰지도 못할 바에는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써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이렇게 놔두었다간 정말 쓰레기나 다름없을 것 같았다.

불필요한 것과 이별하기는 이렇게 시작해보는 것이다. 쓰기 아까웠던 물건들은 다 써버리자. 왜 좋은 물건들은 남에게 선물할 때까지 꽁꽁 모셔두고 자기가 써서 삶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인가?

일본에서 사 온 디퓨저, 고급 헬스가방, 향이 끝내주는 비누 등이 그런 것들이다. 지금은 나에게 쓸 데가 없는 좋은 물건들은, 그것이 필요할 것 같은 친구들에게 선물하자.

제대로 ‘재고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하면, 생활에 활기가 돌고, 끊임없이 물건을 소비하는 쾌감까지 생긴다. 미리 물건을 사두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지금 필요한 물건만 사라. 좋은 물건은 어디에나 있다. 좋다고 아무렇게나 사면 안 된다. 고작 한두 번 쓰고 말 거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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