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엄마>
삶은 아름다움을 팝니다._ 새러 티즈데일
삶은 아름다움을 팝니다.
온갖 곱고 놀라운 것들을
벼랑에 하얗게 부서지는 푸른 파도와
흔들리고 노래하며 솟구치는 불꽃
그리고 경이로움을 담은 잔처럼
하늘을 쳐다보는 아이들의 얼굴을
삶은 아름다움을 팝니다.
금빛으로 휘어지는 음악과
비에 젖은 소나무의 향기
사랑을 담은 눈과 포옹하는 팔
그리고 영혼의 고요한 기쁨을 위해
밤하늘에 별을 뿌리는 거룩한 생각들
아름다움을 위해 다 바치세요.
값을 따지지 말고 그것을 사세요.
순수를 노래하는 평화로운 한 시간은
싸움에 잃어버린 긴 세월의 값을 해요.
한순간의 황홀을 위해서라도
당신의 과거와 미래를 다 바치세요.
모녀가정의 엄마로서
물과 먹이를 나르던 시간들.
아이와 씨름하다 다 가고만 시간들.
약속이 있을 때마다 아이 맡길 곳을 찾던 시간들.
누가 나 대신 애를 좀 보살펴주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나 외엔 아무도 없던 나날들…….
눈이 캄캄해지도록 힘든 시간들을 지나와 어느새 훌쩍 커버린 딸아이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뿌듯한 심정을 느꼈다. 그리고 그 옆에 선 남자친구를 바라보았다. 물론 남녀 사이의 관계는 아니다. 그냥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다. 요새 청소년들 용어로 ‘남사친’. 즉 남자, 사람, 친구란 뜻이다. 그저 절친한 친구 사이임에도 말할 수 없는 보람과 기쁨을 느끼면서도, 문득 내 옆이 더 허전하게 느껴졌다. 아득한 세월을 더듬으니 눈가가 가볍게 떨려왔다. 마음이 조금 외로워도 재미있었다. 오늘 저녁은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았다.
“너희들 돈 줄 테니 가서 먹고 싶은 걸 사오렴.”
“우아! 신난다!”
여고생인 딸이 환호성을 지르며 친구와 문밖을 나섰다.
내가 준 돈을 들고 슈퍼마켓으로 걸어가는 애들을 신비롭게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연애 생각도 없이 살아온 나는 내심 부러워하며 녀석들을 향해 뇌까렸다. 저렇게 내게도 ‘남사친’이 있었다면, 하는 소망이 찰랑찰랑 물결쳐왔다.
“그래, 너희 둘은 서로를 위로하며
위기의 지구에서 살 길을 모색해보거라.”
속말을 하며 딸의 방에 들어가니 책상 위에 아이가 빌려다놓은 책,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이 놓여 있었다. 그 뒤로 초등학생 때 사준 동화책들이 아직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그중 수지 모건스턴의 동화 『엄마는 뭐든지 자기 맘대로야』를 오랜만에 손에 잡고 후루룩 들춰보았다. 문득 ‘아이를 위해 엄마가 지켜야 하는 40계명’이 눈에 띄었다. 책상에 걸터앉아 하나둘 읽어보았다.
아이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아이의 편이 되어주세요.
아이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세요.
훈계를 일삼지 마세요.
“내가 틀렸어” “미안하다”라는 말을
꺼리지 마세요.
유머감각을 키워주세요.
아이를 존중해주세요.
아이와 성에 대해 토론해보세요.
“사랑해” 그리고
“네가 자랑스러워”라고 말해주세요.
절대로 아이의 친구들 앞에서
아이를 깎아 내리지 마세요.
가능하다면 아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주세요.
당신의 아이는 당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특별한 존재임을 잊지 마세요.
딸은 이제 어린아이가 아닌 청소년이지만, 엄마들을 위한 이 이야기는 나이를 넘어 가슴에 새길 말이었기에 하나하나 되돌아보았다. 이런 내용을 유념하더라도 사실 살다 보면 그렇게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얼마나 화나고 속상할 때가 많았는지, 이제는 무겁고 아픈 몸으로 다가왔다. 문득 딸을 사회에 내보낼 땐 어떤 기분일까, 하는 두려움과 설렘이 함께 찾아왔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오갈 때 녀석들은 나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돌아왔다. 자기들 먹을 아이스크림만 달랑 사와서 내게는 잔돈만 건네주는 딸아이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얄밉고 서운해도
자식을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
딸을 키우던 영감으로 쓴 동시집 『초코파이 자전거』 속 시 한 편이 초등 1학년 교과서에 실린 후 책이 잘 팔려 기운 없던 삶에 용기를 주었던, 그때의 기쁨을 떠올렸다. 힘들고 서운한 일도 많았으나 딸아이가 주는 큰 용기와 영감은 돈으로 셀 수도, 무엇으로 따질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끊임없이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사랑이지 않았는가. 그렇게 나를 다독였다.
자기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엄마는 잠시 뒷전일 수 있다. 최근에 나는 딸로부터 또다시 엄청난 사랑을 받지 않았던가. 자신을 위해 넣어둔 저축 보험을 털어 엄마가 하고 싶어 하는 출판사 일에 보태라며, 은행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묻고 메모해 내게 건네주던 딸.
“엄마, 나는 돈 욕심이 없어.
엄마 책 내느라 힘들 텐데 빚 갚아요.
단, 참고서랑 필요한 물건들 사게
딱 50만 원만 남겨주시면 돼.”
새러 티즈데일은
‘삶은 아름다움을 판다’라고 노래했다.
그중에서도
모녀 간의 사랑만큼 아름다운 게
또 어디 있을까.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애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