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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21. 2018

02. 소비의 관성을 관찰하라.

<정해진 미래 시장의 기회>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 하면, 판단의 기준을 미래에 놓고, 인구변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단, 숫자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전체 ‘맥락’을 보아야 한다. 그 안에서 움직이는 소비자들의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

맥락을 읽고 인구집단의 특성 변화까지 이해하라니 엄청난 통찰력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다. 이렇게 느낄 분들을 위해 인구변화의 맥락을 읽는 간단하고도 유용한 방법을 소개하겠다.

<도표 8>을 보자. 인구변화 양상을 보여주는 그래프다. 여느 그래프와 마찬가지로 가로 세로축이 있다. 가로축은 연도와 같은 특정 시간(time) 혹은 시점(period)을, 세로축은 연령(age)을 나타낸다.


〈도표 8〉 렉시스 다이어그램



그런데 또 하나, 대각선이 보인다.
흔히 사회를 관찰할 때 가로축(period)으로 끊어서 각 시기의 특성을 보거나, 세로축(age)으로 끊어서 세대별 특성을 보곤 한다. 트렌드 분석은 전자에 가까울 테고, 세대갈등을 분석할 때에는 후자를 적용할 것이다. 그러나 인구학적 사고를 위해서는 연령과 시기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즉 특정 연도의 특정 연령대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볼 수 있는 생애 관점(life time)이 필요하다는 것. 인구의 동태적 측면을 파악해야 소비시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살필 수 있는 것이 렉시스 다이어그램(Lexis diagram)이다. <도표 8>에서 연령과 기간을 동시에 고려한 대각선의 변화를 보는 것이다. 이 대각선은 코호트(cohort), 즉 특정 기간의 특정한 경험을 공유하는 인구집단의 변화양상을 추적한다. 시장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단순히 출생, 사망, 이동의 변화 때문만이 아니다. 코호트마다 소비 패턴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정 시기에 태어난 코호트들은 저마다 나름의 경험과 사고방식을 공유한다. 이것은 그들의 일생에 영향을 미치고, 당연히 소비패턴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오락문화비, 음식숙박비 등 외부 활동과 관련 있는 지출은 나이 듦에 따라 점차 감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론’이다. 2020년의 고령인구는 2015년이나 2005년 그리고 1995년의 고령인구와는 다른 소비성향을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2005년 혹은 2015년의 고령인구가 한창 현역에서 일했을 1995년에는 어떤 소비를 했고, 나이 들어가면서 소비 패턴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추이를 보면 그들 나름의 소비 특성이 드러날 것이다. 이를 토대로 앞으로 그들이 어디에 주로 돈을 쓸지 예측할 수 있다. 똑같은 방식으로 현재 60대 초반 인구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어떤 소비 패턴을 그려왔는지 살펴보면 2020년 고령층에 진입한 이후 어떤 소비활동을 할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렉시스 다이어그램은 이러한 생존인구의 변화를 표현한 것이다. 다이어그램에서 각 개인은 출생에서 시작해 사망점으로 끝나는 하나의 생명선으로 표현된다. 이로써 특정 연도의 여러 연령을 비교 관찰할 수 있는 시점인 등시간선 관점(세로축 중심)과, 각 연령을 시대별로 비교 관찰할 수 있음(가로축 중심)은 물론, 특정 세대를 생애에 걸쳐 관찰(대각선 중심)하는 것도 가능하다.

30대 남성의류의 미래예측을 하려면 10년 전과 지금의 30대하고만 비교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20대나 40대와 비교하는 데 그쳐서도 안 된다. 그래프의 가로축과 세로축 그리고 대각선을 보는 3가지 관점을 모두 활용해야 한다. 지금의 20대를 보며, 그들이 10년 후에 어떤 30대가 될지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유학시절 초기에는 음식이 낯설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 하다못해 케첩이나 마요네즈를 사려고 해도 하인즈뿐이었다. 내가 아는 케첩, 내가 아는 그 맛이 아니었다. 손쉽게 해 먹을 수 있는 카레나 참치캔도 미국 식료품 가게 제품들은 입에 안 맞았다. 그래서 결국 한인타운에 있는 한국 식료품점에서 한국 제품을 사 먹었다.

세월이 흘러 요즘에는 한국에도 하인즈 제품이 들어온다. 하인즈 제품을 더 좋아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중장년층 입맛에는 여전히 전통의 한국 브랜드 제품이 익숙할 터다. 입맛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약간의 변화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어려서부터 즐겨 먹었던 것은 나이 들어서도 좋아할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인 취향을 드러내서 미안하지만, 나는 멜론 맛 나는 그 아이스바를 좋아한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에 출시되었는데, 처음 맛보았을 때의 신선한 느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그 아이스바를 먹는다. 나뿐 아니라 내 또래 중에 비슷한 추억을 가진 이들을 많이 본다. 우리 세대가 지금 그 아이스바를 먹는 이유는 ‘그때 먹었던 그 아이스바’이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입맛을 사로잡았으니 이것만으로도 그 아이스바의 시장성은 한동안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최근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마케팅으로 재기에 성공한 제품이 적지 않은 듯하다. 흔히 ‘뚱바’라 불리는, 바나나맛 나는 우유는 여전히 잘 팔리는 제품이다. 그런데 마트 진열대에서 뚱바를 보고 좋아하는 이들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들이다. 40~50대에게는 어릴 적 기차 여행할 때나 맛볼 수 있었던 귀한(?) 간식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아, 그 우유’라며 반가워한다. 오죽하면 술 마시고 집 앞 편의점에서 마시는 우유도 이거다. 먹거리뿐인가. TV를 켜면 왕년의 스타들이 그때 그 노래를 부르며 기성세대의 열렬한 호응 속에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한다.

이처럼 생애경험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제품들의 미래수요를 예측할 때에는 그래프의 가로축을 보면서 트렌드 분석을 하거나, 세로축을 보면서 연령 비교를 하기보다는 대각선, 즉 과거로부터 누적된 코호트를 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존의 취향을 바꾸지 않는 고객을 따라가면서 그들의 크기나 특성이 어떻게 변화할지 살피고, 그들을 계속 고객으로 묶어둘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멜론 맛 아이스바를 아이들에게만 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아저씨에게도 마케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월 따라 취향도 바뀌지 않는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그런 품목도 있다. 나이 들어도 바뀌지 않는 취향이 있는가 하면 바뀌는 취향도 있다. 거칠게 단순화하면 돈을 많이 지불해야 하는 제품/서비스에는 연령 효과가 개입된다. 대표적인 예가 집과 자동차다. 운전면허를 따고 서른 안팎에 처음으로 구매한 ‘마이카’는 국산 소형차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젊어서 소형차를 탔다고 40대에도 그 브랜드를 탈까? 천만의 말씀이다. 자동차뿐 아니라 온갖 ‘부의 상징’으로 꼽히는 것들은 나이 따라, 소득수준에 따라 부침을 보인다. 반면 상대적으로 고가가 아닌 재화라면 기존의 고객층을 유심히 추적할 필요가 있다.

더러는 이 과정에서 기존 고객뿐 아니라 신규 고객층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기존 고객의 취향을 물려받는 자녀세대다. 냉장고에 통 아이스크림이 있으면 괜히 뿌듯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50대 분들은 기억하실 거다. 만약 그들이 (나의 멜론 맛 아이스바처럼) 통 아이스크림을 냉장고에 계속 채워뒀다면, 그 입맛은 자녀들에게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가설대로라면 통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회사는 지금의 50대와 20대를 좀 더 밀착 공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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