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고전, 꼭 읽어야만 하나요?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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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누군가가 “고전부터 먼저 읽는 게 좋을까요” 하고 물어왔다. 그러면서 “고전은 지루하고 재미없던데….” 하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그분이 은근히 고전 독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은 없습니다. 고전 목록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으십시오.”

언젠가 고전 독서 문제를 숙고하면서 지나온 내 독서편력을 곰곰이 돌이켜본 적이 있다. 그러다 불현듯 ‘고전을 읽기 위해 고전을 찾아 읽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잖은 당혹감에 빠졌다. 그렇다면 내 서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저 고전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책들은 거의 소위 ‘고전’에 속하는 책들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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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고전이란 단어의 시시콜콜한 어원사나 그 개념을 둘러싼 복잡하게 얽힌 논쟁의 거미줄을 일일이 풀어 보일 생각은 없다. 고전(Classic)이란 단어가 고대 로마 시대에 함대(clasis)를 사서 기부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았던 최상층 재벌급 부자들(classicus)과 관련이 있다는 둥의 이야기는 백과사전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많은 입장들 속에서도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표준적인’ 견해는 존재한다. 고전에 해당하는 책이 어떤 것이냐고 할 때, 우리 국립국어원이 제공하는 정의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고전은 옛날 법식, 또는 오랜 시대를 거치며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가치를 인정받아 전범을 이룬 작품을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똑똑한(?) 네이버 지식인에게 물어보아도 특별히 다른 견해는 없는 듯하다. 모든 것을 풍화시키는 무자비한 시간을 견뎌냄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 책을 고전이라고 부르자는 데 손을 번쩍 들어 반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책 자체는 혀도 입도 없는 까닭에 누군가가 추천하거나 결정해주어야 하는데, 그 선정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의 북풍한설을 견뎌야 당대를 벗어나 고전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것일까?

지난 2005년 서울대에서 선정한 대학생들을 위한 권장 도서 고전 100선을 보면 그 책들의 연대가 호랑이 담배 피울 적부터 20세기 중후반까지 두루 걸쳐 있음을 본다. 또 하버드 대학 총장이 19세기까지를 기준으로 20세기 내내 하버드 대학 고전 교육 교재로 썼던 책들을 소개한 《하버드 인문학 서재》의 목록에 올라 있는 약 200여 권의 책 제목들을 일별하니 입이 쩍 벌어졌다.

- 2년 동안의 선원 생활
-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이야기
- 산욕열의 전염성
- 외과수술의 소독법에 대하여

나는 이런 책들이 21세기 대한민국 독자들에게 읽힐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책을 번역한 출판사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또한 20세기 내내 그 책들로 고전 공부를 했을지도 모를 하버드대 학생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드리는 바이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서 나는 나이 일흔에 이미 시력까지 잃은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가 작심하고 <고전에 관하여>라는 짧은 에세이로 고전에 시비를 걸고자 했던 마음이 절로 이해가 갔다. 《만리장성과 책들》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한국어판 책에 실린 이 에세이에서 보르헤스는 고전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고전은 한 국가나 몇몇 국가, 또는 오랜 세월이 마치 그 책 속에 담긴 것은 하나 같이 사려 깊고, 운명적이며, 우주처럼 심오하고 무한한 해석이 가능하기라도 하다는 듯이 읽기로 결정한 그런 책이다”

문제는 “읽기로 결정한”이란 대목이다. 보르헤스는 언제든지 그런 “선호는 얼마든지 미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하버드대에서는 《2년 동안의 선원 생활》이나 《산욕열의 전염성》 같은 책을 고전으로 보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그 어떤 대학에서도 그 책들이 고전 대접을 받는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보르헤스는 한때 아름다움이 소수 작가의 특권이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아름다움이 모두의 것이며 우연히 뒤적이던 책 어느 페이지나 길거리에서 나누는 대화 속에도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면서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글을 마친다.

“고전은 무슨 대단한 장점을 지닌 책이 아니다. 그것은 각 세대의 사람들이 온갖 이유 때문에 넘치는 열의와 알 수 없는 공경심을 가지고 읽게 되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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