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재미있고, 웃기고, 황당하기로는 《돈키호테》보다 한 발 더 앞서는 ‘무려 고전’ 소설이 된 희극 소설이 있다.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Rabelais 1483~1553)의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이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1532년경에 처음 발표되었는데, 오늘날 소설 문학사를 연구하는 이들은 라블레를 서구 근대 소설문학의 아버지라고 주저 없이 손꼽기도 한다. 이 소설은 외설스럽고, 음탕하고,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탁월한 언어유희와 농담들, 무엇보다 쾌활한 유머와 발랄한 이야기들의 종합선물세트다. 나는 지금까지 이 소설만큼 유쾌하고 재미있는 책은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의 제7장 <팡타그뤼엘이 어떻게 파리로 왔는가, 그리고 생 빅토르 도서관의 훌륭한 장서에 관해서>이다. 여기에서 팡타그뤼엘이 생 빅토르 도서관에서 찾은 훌륭한 책들의 목록을 장장 아홉 페이지에 걸쳐 보여주는데, 라블레의 장난기와 유머감각이 그야말로 유감없이 발휘되는 부분이다. 그 가운데 일부만 소개하면 이렇다.
- 구원의 막대기
- 법률의 앞주머니
- 튀르뤼팽이 쓴 설교자들의 깃털 먼지떨이
- 숫처녀들의 교태
- 과부들의 껍질 까진 엉덩이
- 통풍 환자와 매독 환자들을 위한 항구적 연감
- 성가신 자들의 양면적 의미에 관한 토론
- 방탕한 수도사들의 유희
- 소르본 신학자들의 박사모에 대한 윤리적 해석
- 똥싸개들의 밑 뚫린 반바지
- 양심 문제의 몽상가
- 재판장들의 뚱뚱한 배
- 신부들의 당나귀 자지
- 의사들의 변소
- 외과적 관장술
- 점성술의 굴뚝 소제부
라블레가 그려 보여준 생 빅토르 수도원의 도서관이라는 이 상상의 도서관에 소장된 재기발랄한 책의 목록은 수많은 작가에게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문학연구가이자 사상가인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은 라블레의 ‘전복적 웃음’을 연구하면서 그 유명한 카니발 이론의 기초를 마련했다. 나 역시 라블레의 목록을 읽으며 나만의 상상의 도서관에 소장할 책들의 목록을 구상해보곤 하였다.
그런데 실제 현실 세계에서, 즉 오늘날의 도서관이나 서점에서도 마치 라블레의 상상의 도서관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황당하고 재미있는 책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연필 깎기의 정석》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나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연필 깎기의 정석이라니? 푸핫.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리스는 매우 진지하다. 그는 자칭 만화가이자 소위 ‘연필 깎기의 장인’이다. 그는 이 일을 업으로 삼고 있으며 연필 한 자루 깎는 데 무려 35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정말로 이 책에 실린 글과 사진들을 보면 이 연필 깎기라는 것도 하나의 장인적인 기예이며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감히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출판계는 소위 소수의 덕후(?)들을 겨냥한 이런 비슷한 종류의 감각적이고 발랄한 책들을 많이 쏟아내고 있다. 제목만 한 번 훑어보아도 절로 웃음이 나오고 구미가 당기지 않는가? 《좀비사전》, 《문신유희》, 《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 《세상을 여행하는 초심자를 위한 안내서》, 《회사 가기 싫은 날》 등등.
나는 세상에 재미있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온몸으로 실감하게 되었고, 기왕에 나와 있는 국내외의 다른 책들도 찾아보기도 했다. 희한하고 재미있고, 황당하고, 엽기적이기도 한 책들의 리스트는 이렇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
- 코 파기의 즐거움
- 엉덩이의 재발견
- 시체를 부위별로 팝니다
그리고 아래는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어판으로는 번역되어 출판되진 않았지만 실제로 아마존에서 살 수 있는 책들이다.
- 그리고 엉덩이는 천사를 보았다(And the Ass Saw the Angel)
- 숲에서 똥 싸는 방법(How to Shit in the Woods)
- 시냇물에 똥 싸는 법(Up Shit Creek)
- 레즈비언 머리카락의 역사(The History of Lesbian Hair)
- 책 쓰는 방법에 관해 책 쓰는 법(How to Write about How to Write a Book)
- 돈 내놔!(Show Me The Money!)
- 달콤하게 매혹적이고 야성적으로 열광적이며, 과감한 삶을 원하는 소녀들을 위한 가이드 북(The Girl's Guide to Living a Deliciously Dazzling, Wildly Effervescent, Kick-Ass Life)
그러나 웃기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그저 엽기적이기만 한 책들은 따로 있다. 서점에 가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이런 책들은 아마도 대한민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책들일지도 모른다.(불쌍한 국민들!)
- 10대 꿈을 위해 공부에 미쳐라
- 20대 공부에 미쳐라
- 30대, 다시 공부에 미쳐라
- 40대 공부 다시 시작하라
- 완벽한 공부법
- 승자의 공부
- 공부는 내 인생에 대한 예의다
- 공부하다 죽어라
나는 이런 책들을 보면 딱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제발 그만! 뇌가 폭발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