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엄마>
열두 살이 모르는 입꼬리_강혜빈
숫자를 좋아하는 흰 토끼는 편지를 써오라고 했어
거짓말을 완벽하게 훔친 아이에게 내주는 특별 숙제
말랑말랑한 지우개 똥 연필 끝에 꾹꾹 뭉쳐
사랑하는 선생님, 저희가 잘못했대요.
시험지 위로 진눈깨비가 내리는 교실
무서운 이야긴 속으로 해야 더 무섭지
칠판이 두 쪽으로 갈라지고
그 속에서 모르는 아이가 빳빳한 채로 상장을 받고
종례가 끝나면 답장이 왔어
아니, 너희가 아니라 너지.
안으로 접힌 귀 토끼의 가장 단순한 장점
만져보고 싶어 3분의 1로 나뉜 귀
왜 우리들은 밋밋한 귓바퀴를 가졌지?
좀 더 수학적으로 생기질 못하고
어렴풋이 웃고 나면 어른에 가까워질까?
토끼의 진짜 얼굴은 손목에 새겨놔야겠어
기다리는 미술 시간은 오지 않는데
명치를 찌르면 실내화가 미끄러지는 마술
복도 끝과 끝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봐
부풀어 오른 선생님, 시리도록 하얀.
뒷문에서 굴러 나오는 귀 두 짝
청소도구함에 숨은 눈알
창문에 붙은 천삼백일흔 개의 입 그리고 입
나는 토끼를 해부하는 상상을 했을 뿐인데요?
책상 밑에 숨어 지우개 똥만 뭉쳤는데요?
딸은 점점 수험생의 빡빡한 일상으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바쁜 평일을 보내고 주말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날도 딸은 집에서 쉬고 있었다. 따뜻해진 날씨에 창문을 열어놓으면 자동차 경적 소리와 까마귀 울음소리가 더 가까이 들려왔다. 딸은 그 소리를 잠재우듯 더 열렬하고 명쾌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오랜만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 참 무심했지, 그때.”
자신이 고등학생인데도 엄마는 전혀 관심이 없다며 속상해하던 딸.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비로소 수험생의 엄마로 발을 내딛는 느낌이었다. 고등학생인 딸의 절박한 현실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러니까, 내신으로 인생의 등급이나 계급이 나뉜다는 거지.”
다시 까마귀 소리가 들렸고, 덜 잠근 수도에서 물이 똑똑 떨어졌다. 나는 물을 잠그며 딸에게 “어째서?” 하고 물었다. 딸이 웃는 미소에서는 싱그러운 프리지어 향기가 났다. 희미하고 엷게 퍼져가는 물결처럼 은은하게 흔들렸다.
가장 싱그러운 나이 열일곱.
그런 딸의 입에서 어두운 한국 교육의 현실이 흘러나왔다.
“답이 없어. 고등학생들의 삶을 봐. 야간 자율학습까지 14시간 수업에, 집에 가면 과제도 해야지. 쉴 시간이 없어. 시험문제 스물다섯 개로 등급이 나뉜다니. 생활기록부 서류를 충실히 채우기 위해 학교생활 대회도 참여하고 상도 받아야 하고, 아프지도 말아야 하고, 출석도 깨끗이 해야 해. 당연히 가고 싶은 학과에 진로까지 깔끔히 정리해놔야지. 중간에 진로를 바꿔서도 안 돼. ‘운동선수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제 문학하고 싶어요’ 이딴 소리 절대 하면 안 돼. 이런 게 안 받아들여지는 나라야. 우리가 얼마나 살았다고, 뭘 경험해봤다고 진로를 결정하래? 빡빡해 죽겠는데. 세상에, 그 와중에 독서도 하래. 전공과목과 연결되는 도서로 다섯 가지 이상 읽어두는 게 좋대. 제대로 된 독후감과 자기 견해가 충실히 담긴 독서기록장이 없으면 생활기록부에 작성도 안 해줘. 과목에 따라 수행 평가 어떻게 했는지도 보고, 봉사 활동도 하래. 나 한 달에 한 번씩 두세 시간 봉사 활동도 꾸준히 해. 대학생들은 봉사 정신도 투철한가봐? 심지어 동아리 활동도 하네. 어휴, 나는 이 대학에 준비된 인재임을 보여줘야 한다니.”
듣기만 해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이 정도로 학교 교육이 아이들의 목을 죄고 있는 줄 몰랐다.
엄마로서 이제야 내 딸에 관심을 가졌을 만큼 일에 쫓겨 살았다니, 내 삶을 다시 돌아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딸아이 공부까지 일일이 체크할 만큼 여력이 없었음이 가슴 아팠다. 생계에 쫓겨 학교에서 부르는 공개 수업도 못 갈 형편이었다. 열린 창문 사이로 다시 까마귀 소리가 울려왔다. 새들까지 소리를 지르니 정신이 없었다. 나는 딸아이에게 네가 바라는 교육이 어떠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일단 점수 체제를 버려야지. 점수 하나만으로 애들을 평가한다는 게 문제야. 그중 젤 큰 문제는 수행 평가지. 하루 한 시간, 한 문제에 애들 인생이 갈라진다는 거야. 프린트 한 장 안 가져오면 1점이 깎이는데, 시험 문제가 3점이라고 치면 타격이 큰 거야. 요즘 전교 1등은 공부만 잘해선 안 돼. 출석도 깔끔해야 하고, 봉사 활동도 1년에 20시간은 채워야 하지.”
우리 어른들이
아직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너무 완벽한 인간을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창밖으로 내리쬐는 햇빛은 끝없이 밝은데
너희들 마음은 밝을 수 없을 만치
힘들고 숨 막히는 구나.
그럼 엄마가 뭘 해줘야 하냐고 물었다. 딸의 대답을 듣고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엄마가 말하지 않아도 잘하고 있으니 굳이 애쓰지 않아도 돼.”
문득 20대 시인 강혜빈이 쓴 「열두 살이 모르는 입꼬리」가 떠올랐다. 이 시는 학교를 배경으로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쓴 시인데, 학교라는 틀 안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썼다고 했다. 아마도 선생님의 폭력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었나 보다. 때려도 당연하게 알던 학창 시절, ‘시험지 위로 진눈깨비가 내리는 교실’에 대한 기억들을 담은 시가 흥미롭다. 좀 더 수학적으로 생겼다면 더 잘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대목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딸과 10년 정도 차이 나는 시인의 상황과, 또 요즘과는 많이 달라진 듯하다. 단지 10년일 뿐인데……. 나는 딸에게 선생님의 폭력은 없느냐고 물었다.
“요즘은 선생님이 애들한테 폭력적으로 대하기는 힘들지. 오히려 애들한테 조금만 뭐라 해도 엄마들이 선생 물어뜯고 달려들지. 선생님은 훈계도 할 수 없고, 한마디만 잘못해도 교육청에서 뭔가가 날아오니까.”
학교 선생도 참 어렵겠구나, 한숨이 나왔다. 때마침 창문사이로 참새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딸에게, 그럼 학교에선 어떤 폭력이 있느냐고 물었다.
“음, 친하게 지내던 애들이 있는데 그중 한 명만 빼고 그룹이 만들어지면 그 한 명이 자연스럽게 나가. 눈치로 이루어지는 폭력이지. 나대어서 소외당하고, 또 애들은 욕하고. 아무튼 또라이 같은 행동을 하면 아웃이야. 고등학교는 삭막해. 어른들은 착각하고 있어. 고등학생들이 선거권을 달라는 이유가, 너무 힘드니까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직접 뽑겠다는 거야. 공부 잘하는 애들한테 물어보면 투표권 따위 관심 없다고 말할걸? 청소년들의 삶을 바꾸겠다고 주장하고 관심 갖는 애들 40퍼센트 정도는 중상위권 애들일 거야. 참, 이제 선생님을 사람으로 보는 애들도 거의 없을걸?”
“그럼 뭐로 보는데?”
“시험 문제 알려주는 사람, 시험 내는 사람? 과세특(과목세부특별사항)에 써줄 사람?”
하하하, 웃었지만 생각보다 심각한 현실에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까마귀도 자신의 삶을 바꾸겠다고 우는 듯이 느껴졌다.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애들은 애들대로 주어진 인생이 너무나 무거울 것이다.
가장 예쁘고 찬란한 열일곱 살의 딸. 나도 잘 몰랐던 딸의 재미있는 어투에 요즘 청소년들의 스타일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우리 어른들도 허덕이며 사는데
한참 밝게 놀아야 할 너희는
얼마나 더 힘이 들까.
그래도 딸은 엄마에게만큼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시 싱그러운 프리지어 향기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