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는 한

<시 읽는 엄마>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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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편지_윤석정

느닷없이 배달된 상자를 풀어보니
텃밭에서 자란 봄이 옹기종기
내게 반질반질한 연둣빛 편지를 내밀었다
편지 한 움큼 들어 올리니
상자에 동봉된 어머니 얼굴이 나왔다

텃밭에 무더기로 봄이 왔다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한 글자의 퇴고도 없이
어머니는 빼곡하게 편지를 썼다
반나절 이렇게 편지만 썼을 것이다

통화 몇 초로 전할 수 없던 봄
내가 인연에게 밤새 편지를 쓴다한들
내 언어로는 완연한 봄을 쓸 수 없다

지금쯤 어머니는 텃밭에 글자들을 심어두고
여름편지를 쓸 준비에 바쁠 것이다
그렇게 봄날은 간다고 주근깨 같은 글자들이
봄볕에 그을린 어머니 얼굴에 박혀 있을 것이다






눈시울이 뜨겁도록 봄 풍경이 예뻤다. 이 어여쁨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어 가슴이 아프다. 피부도 늙고, 허리도 굽어버린 부모님 가슴은 어떠할까.

언젠가 정신과 의사인 남동생에게 왜 시골 노인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자식들이 그리워도 만날 수 없고,
자주 연락이 없어 마음에 병이 들어서.”

부모님들은 머리맡에 전화기를 두고 잠드신단다. 언제라도 아들딸의 전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루 5분의 짧은 통화로도 일주일이 행복해질 엄마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시에서 반나절 내내 썼을 엄마의 편지는 시인을 울렸고, 나와 독자들을 울렸다. ‘주근깨 같은 글자들’이라는 매력적인 비유가 마음에 박혀 보석이 되는 순간, 나도 문득 엄마가 그리워졌다.

어디에도 엄마는 없고,
엄마라는 말만
봄바람에 떠다닌다.

병원에 입원해 계신 지 반년이 넘었을 때였다.
몸이 많이 아파서 거동도 못하시는 우리 엄마.
나는 엄마를 일으켜 세우려고 거의 매일 전화를 했다.

“엄마, 보고 싶어 전화했어.”
“그래, 고맙다.”
“오늘 엄마 주려고 예쁜 치마 샀어. 운동도 하고 밥이랑 약도 잘 챙겨 먹고, 씩씩하게 보내야 돼. 엄마 오래 살아야 돼. 우리 자식들이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는 줄 알지? 엄마, 사랑해.”

사랑해, 라는 말이 끝나자 가슴이 벅찼다. 잃어버릴까 두려워 터져 나온 ‘엄마’라는 말. 천 번을 부르고 천 번을 사랑한다고 외쳐도 부족했다. 먼 바다를 바라볼 때처럼 현기증이 났다. 눈이 내릴 것만 같았다. 흰 알약 같은 눈이.

한쪽 눈을 실명한 엄마의 눈과 마음에 흰 눈이 내리고, 엄마를 휘감았던 지독한 병의 독이 모두 씻어 내리길 바랐다. 생계를 짊어진 자의 희망의 독, 외로움의 독, 삼팔선 너머 생사 모를 동생들을 그리워한 이산의 독까지…….

하루하루가 더욱 간절하고
가슴 저릿했던 시간들 속에서의
애절했던 그 통화.

우리가 꿈꾸는 행복 속에는 ‘사랑해’라는 단어가 있다.
가장 유치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말이다. 그 솔직하고 아름다운 말을 왜 그리 생략하면서 사는지.

엄마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매일 하며 살아도 아쉬운 인생이다. 주말이면 친구나 애인과 놀러 갈 궁리는 하면서, 휴대폰 한 번 눌러 부모님 안부 인사하는 데에는 왜 그리도 야박한지.

“사랑합니다.”

애인에게는 수도 없이 하는 그 말,
엄마에게는 얼마나 자주 할까?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쑥스러워서 못하겠다는 사람도 많다. 입으로 자꾸 되뇌다 보면 처음에는 힘들어도 잘하게 된다. 말하면서 더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
지금이 아니면 언제 전화로 사랑의 인사를 건넬 것인가.
서로 잊지 않고 사랑하고 있음을 언제 전할 것인가.

힘겨운 인생살이, 어서어서 푸근한 미소와 따스한 사랑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되지 않았다. 잠시 지혜를 담은 요한 볼프강 괴테의 『파우스트』 속 대사를 떠올렸다.

“성장하는 인간은 언제나 고맙게 여깁니다.”

표현하지 않는 애정은 애정이 아니더라. 표현의 때를 놓치면 영영 기회를 잃을 수도 있더라.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의 결점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뒤로 넘기는 것이다.

부부 사이든 부모 자식 간이든 상대를 불쌍하게 생각하면 평생 다툼 없이 따사롭게 살 수 있다. 그렇게 연민을 가지고 솔직해지기. 사랑은 서로 솔직함과 정직함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또 서운할 때 투덜대고 싶더라도 계속 칭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칭찬은 용기를 주며 쓸모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매번 그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힘이 된다.

자식이 먼저 던지는 사랑의 인사는 엄마의 인생에 큰 용기가 된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혹은 이웃에게 정성을 다해 마음을 전하는 일.

특히 엄마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은
소소하지만 신비롭고 황홀한 기적이다.

새로운 활기와 새로운 기쁨이 환한 날개를 달고,
엄마와 당신의 삶을 가뿐히 날아오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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