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나는 제임스 조이스의 그 유명한 소설 《율리시스》를 읽다가 너무 지루해서 던져버렸다고 하는 친구를 기억한다. “도대체 이런 소설이 왜 훌륭하다는 거야! 내가 보기엔 순전히 자기가 똑똑하다는 걸 과시하려는 수작에 불과해 보이는데!”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지만, 솔직히 그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그래도 《율리시스》는 장장 18년 세월에 걸쳐서 쓴 조이스 최후의 작품 《피네건의 경야》에 비하면 차라리 애교다.
조이스의 이 작품은 인류 문학사상 가장 야심 차고, 가장 엉뚱하고, 가장 난해하고, 가장 수수께끼 같은 작품이다. 《시계태엽 오렌지》를 쓴 소설가 앤서니 버지스가 말한 것처럼, 이 책은 ‘읽는다기보다는 숭배하고, 읽는다 해도 끝까지 읽는 경우는 드물며, 끝까지 읽는 그 드문 경우에도 대개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부분적으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종류의 책에 속한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조이스 전문가인 김종건 선생의 오랜 열정과 노력으로 지난 2002년 한국어 번역판이 나왔다. 너무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얼른 사서 읽기에 도전했지만, 인내심의 한계로 몇십 페이지도 못가 그 책에서 튕겨 나오고 말았다. 마치 ‘언어로 지어진 지옥’에 잠시 발을 담갔다 나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이 두꺼운 책은 내 서가 한구석을 차지한 채 긴 동면에 들어가 있다. 내 수명이 얼마나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100살이 되기 전까지는 그 책에 다시 도전할 일은 없을 것 같다.(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는 이 책을 한 번 들추어보기만 해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책이 ‘너무 어려워서’ 독서를 중도에 포기한 것은 정확하게 그 책이 세 번째였다. 물론 너무 지루하고 따분하고 재미없어서 읽기를 중단한 책들은 훨씬 더 많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독자들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읽던 책을 집어 던지기까지 한다.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물론이다. 불굴의 의지로 지독한 인내심 테스트를 끝까지 버텨낼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법은 없다. 내 독서 경험에서도 읽던 책을 집어 던져버렸던 경험이 딱 두 번 있다.
첫 번째 경험은 대학교 2학년 때 겁 없이 독일 근대 철학자 헤겔의 《대논리학》에 덤벼들어 읽던 때다. 한글로 쓴 문장들인데도 도저히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불굴의 의지로 끝까지 읽고야 말리라, 하면서 중반까지는 읽어내려 갔지만 어느 순간, 결국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그 위대한 헤겔 씨를 방구석으로 홱 내던져버렸다. 이후 헤겔은 내게 영원한 트라우마가 되었다.
두 번째는 모리스 블랑쇼의 《미래의 책》이라는 책이다. 아마도 1996년도의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먼저 그가 쓴 《문학의 공간》이란 책을 읽었는데, 그 책 역시 난해한 편이긴 했지만 너무나 매혹적인 문체와 심오한 사유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그 책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서둘러 세계사에서 펴낸 《미래의 책》을 구입했다.(이 책은 지금은 절판이고 《도래할 책》이라는 제목으로 그린비 출판사에서 모리스 블랑쇼 전집 중 한 권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그 책은 읽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소설가로 등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문학 작품보다 철학책들을 더 많이 읽어온 탓에, 그 책에 실린 비평 태반이 내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가에 관한 것이었다. 게다가 모리스 블랑쇼 특유의 그 칭칭 엉킨 실타래 같은 문체 때문에 말 그대로 뇌가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또다시 자존심이 상했고 자괴감에 빠진 나는 나도 모르게 책을 방바닥에 확 내쳐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줄담배.
블랑쇼는 그렇게 나를 절망시켰지만, 끝내 그와 담을 쌓을 수는 없었다. 그의 문체를 너무 사랑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그 책에 언급된 책들을 읽어나갔고,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그 책을 읽으니 그제야 문장의 아름다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책을 사랑하게 되었고, 나아가 작가로서 모리스 블랑쇼를 숭배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이렇게 멋진 문장으로 답하는 블랑쇼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언제나 놓치는 무엇인가를 되짚으려고 열망하면서, 말하려는 것의 결여로 존재하는 것을 애써 찾아야 하므로, 영원히 우리의 언어를 고문하는 것이다”
헤겔과 모리스 블랑쇼의 책들을 집어던진 만행을 저지른 것은 지금 생각해도 무척 미안한 일이다. 그게 다 참을성 없는 빌어먹을 성질 탓이었다. 그런 몰지각한(?) 사고를 친 것은 순전히 나의 지적 수준이 부족했던 탓인데, 아무 죄 없는 책에다 화풀이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독자가 읽던 책을 집어던질 자유를 옹호한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너무 재미없고 지루해서, 짜증 날 정도로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서, 우리는 때로 읽던 책을 사정없이 내팽개친다. 책을 집어던진다는 건 작가와 책에 대한 신성모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에게는 우상파괴의 권리와 자유가 있다. 독자에게 책을 읽도록 강제하거나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책을 집어던질 자유는 책을 읽지 않을 권리와 상통한다. 마음에 드는 책을 예찬할 자유가 있듯,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을 비판하고 집어던질 자유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자유, 선택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