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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27. 2018

02. 비밀을 공유해본 적 있나요?

<잠깐 생각 좀 하고 가겠습니다>




#당신만 아픈 게 아닙니다.

나는 집으로 누구를 초대한 적이 없다.

우리 집에는 다섯 식구가 살았다. 집은 너무 비좁고 지저분했다. 가난했던 만큼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유독 신경을 썼다. 명품을 사기 위해 밥을 굶어가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술자리에서는 무리해서 카드를 긁었다.

입사 동기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밤 11시가 넘어가는 시간, 3차에 정예 멤버들이 남았다.

“야, 우리 재미있는 게임 하나 할까? 인생 산맥 타기라는 게임인데, 인생 최고점과 최저점을 하나씩 이야기하는 거야. 자신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솔직해질 수 있는 진실게임이야.”

‘인생 최저점’이란 말을 듣는 순간 빨간 경고등이 켜졌다. 난 애초에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 없었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그때,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경호였다. 리더십이 뛰어나 스터디 팀장도 맡았었다. 잘생긴 외모에 똑똑하기까지 하다.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경호의 인생 최저점이 궁금했다.

“인생 최고점은 공모전에서 일 등 한 거예요. 최저점은….”

모두가 경호의 눈만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집 망한 거, 삼 년 전에 부모님 사업이 부도가 났어요. 남들이 망했다 그러면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집을 비워주고, 차가 없어지고, 부모님께서 일용직을 나가셔야 하는 게 망한 것이더라고요.”

그의 말 다음으로 한 사람씩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자리에 모인 사람 중 삶이 평탄했던 인생은 하나도 없었다.

“요즘 학자금 대출 안 받고 학교 다니는 사람 있어요? 이런 얘기하니까 괜히 다운되잖아요. 좋은 얘기해요, 우리.”
“….”

나만의 비밀이라 여겼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일상의 한 조각에 불과했다.

‘멋진 놈들.’

저렇게 밝으니 그 형편을 어떻게 알까. 좀 부족한 게 어떠냐며 되레 버럭 하는 녀석들의 기세가 그렇게 든든하고 예뻐 보일 수 없었다.

“보이는 대로 세상을 보면, 보여주는 대로 믿게 됩니다.
내가 아플 상황이면 누군가도 아픈 법입니다. 철저히 나만 고립된 것 같아도 나누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병으로 입원 중인 사람에게 형식적인 문안 인사는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같은 아픔을 경험한 사람이 가만히 손만 잡아줘도 환자는 위로를 받습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아픔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나만 아픈 게 아닙니다. 이것은 참 위로가 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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