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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단순한 배려에 대한 생각

<시 읽는 엄마>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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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_이근화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피를 흘리고
귀여워지려고 해
최대한 귀엽고
무능력해지려고 해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지 않고
달려보려고 해
연통처럼 굴뚝처럼
늘어나는 감정을 위해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울어보려고 해
우리는 젖은 얼굴을
찰싹 때리며
강해지려고 해





엄마로서 내가 딸에게 가장 바라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거다.

자기 일 꾸준히 잘하고
간단한 살림이라도 돕는 것.

살림을 돕는다는 건 대단한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작은 배려의 문제다. 쓰레기를 내놓을 때 봉투 하나라도 들어주며 오가는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것, 자기 방 정리 정돈 잘 하는 것, 밥 먹고 자신이 먹은 밥그릇만큼은 설거지통에 넣어주는 것, 양말 한 짝이라도 뒤집어놓지 않고 세탁조에 넣어두는 것. 이런 아주 단순한 배려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엄마에게 이런 단순한 배려를 잘해드리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 어제 일을 떠올리며, 나는 더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딸은 외할아버지 댁에서 자기 남자친구에게 줄 초콜릿을 직접 만들겠다고 야단법석이었다. 재료값을 꿔달라고 해서 주었으나, 받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초콜릿을 새카맣게 태워 거실과 방이 온통 초콜릿 타는 냄새로 가득했다. 냄새를 빼느라 한 시간은 창문을 열고 추위를 견뎠다. 딸은 실패한 것을 만회하겠다며 또 돈을 받아갔다.

그때 나는 방에서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주방에 나가보니 딸애가 또 실패해 묽어진 초콜릿을 여기저기 엎지른 것이 보였다. 초콜릿은 식탁을 중심으로 잔뜩 튀어서 족히 한 시간은 닦고 치워야 정리가 될 정도였다.

‘그래, 실패도 공부니까
네가 다 닦고 정리하렴.’

처음에는 기가 막혀 화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툰 움직임, ‘탁탁’ 깨질 듯 부딪히는 그릇 소리, 불안스레 떨어지는 물소리까지 자꾸만 신경 쓰여 작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10분 후 다시 방문을 열어보니 식탁 위는 여전히 초콜릿 자국으로 엉망이었다. 싱크대에는 온갖 그릇들이 꺼내져 있었고 바닥은 끈적거렸다.

“초콜릿 만들어서 주면 친구가 네 정성을 얼마나 알아준다고. 네 나이 땐 그냥 사서 정성껏 포장하고 예쁜 말로 엽서 써주면 돼. 그 시간에 네 방이나 정리하고 책이나 읽지. 도대체 엄마를 도와주는 게 뭐 있어!”

걸레로 바닥을 닦으면서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 당시에 딸은 휴대폰도 여러 대 잃어버렸다. 몇 번을 잃어버리고 찾았는지 모른다. 방학 내내 일기도 잘 안 쓰고 책도 안 읽고 텔레비전만 보는 딸을 보며, 꾹 참아왔던 화가 터지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연두색 레이저 같은 광채가 내 눈과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나는 또다시 한마디를 보탰다.

“이 뒤치다꺼리할 시간에 엄마 작업해야 하는데.
그러다 엄마가 마감 못 지키면 우리 굶어 죽어.
집 다 까먹고 산속에 들어가 살고 싶니?”

소리를 질러놓고 뜨끔했다. 이렇게 독한 말로 애를 길들이려 하다니, 스스로 답답하고 하염없이 서글퍼졌다. 하지만 싱크대 가득 어질러진 재료들을 보니 딸이 괘씸해 견딜 수가 없었다.

“네가 어질러놓은 건
어떡해서든 네가 책임지고 치워.
엄마가 이 집 식모냐?”

이런 말을 하면서 끈적끈적해진 바닥을 지우느라 몇 번씩 걸레질을 해댔다. 내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미치도록 청소를 했다. 딸이 작은 손으로 청소하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죄의식이 들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자식에게 굶어 죽는다는 소리를 하다니, 그 말에 담긴 책임과 부담을 알면서도 참지 못했다.

나는 왜 자애로운 엄마, 실수도 다 감싸고 껴안아주는 엄마가 되지 못할까. 왜 딸아이에게 그토록 독한 말을 퍼부었을까. 자책감과 슬픔으로 목이 메었다. 점점 괴물 엄마가 되어가는 내 모습에 울화병이 생길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중·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엄마 살림 하나 제대로 도와드린 적 없는 나의 지난날이 한스러워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아이 하나 키우면서 돈 벌고 살림하기도 힘든데, 우리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새삼 다시 깨닫는 눈물이었다.

후회는 언제나 늦다.
아이를 낳고 엄마를 절실히 이해했는데도
엄마를 많이 보살펴드리지 못했다.
아이를 봐주셨던 10여 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청소 도우미라도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그럴 여력이 없었던 내 자신에게
무력감만 느껴졌다.

그러나 어쨌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또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현대인들의 사소한 일상을 깊고 넓게 파헤쳐가는 필력, 그리고 그 속에 느긋하고 경쾌함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근화 시인의 시 「엔진」. 그의 시구처럼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울어보려고’ 애쓰는지 모르겠다. 배려라는 엔진은 미처 생각지 못하고 녹이 슬거나 잊히는 일이 허다하다. 사람과 사람, 가족과 가족 간에 쉽게 놓쳐지는 것이 배려다. 모두 스스로에게 몰두하기 때문이리라. 조금만 서로를 배려한다면 매일이 사랑의 향기로 가득 찰 것이다.

엄마가 딸에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방만이라도 정리 정돈 잘하고, 때때로 심부름해주고, 신발 정리해주는 등 오고가며 간단한 일만이라도 돕는 것이다. 이거라도 도와주면 엄마는 굉장한 힘을 얻는다. 이런 단순한 일들을 맡아주는 것이 엄마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딸이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주물러줬다.
그날, 딸의 손이 닿는 곳마다 따끈따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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