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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ug 02. 2016

08. 길들여지기

<엽기적인 그녀>

                                                                                                                             

제 8화. 만남은 가끔씩 서로에게 길들어지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저는 그녀의 터프함과 동해 번쩍 서해 번쩍에 질려 있었습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녀가 언제 어디서 사고를 칠지 모르는데다가 언제나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몇 분 안에 어디로 안 나오면 죽는다!!”라고 해대니 어떡합니까!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돌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습니다. 기르는 애완용 고양이라면 방울을 달아주면 됩니다. 강아지라면 집 전화번호를 적은 목걸이라도 하나 걸어 주면 됩니다.

어라라~!! 집 전화번호를 적은 목걸이!!!

그렇습니다~! 오예에~!

그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으하하핫~!!

“나 견운데, 오늘 저녁에 좀 보자.”

“오늘 저녁에?”

“그래! 내가 너네 집 근처로 갈게”

“알았어.”

지금 그녀의 집 근처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있습니다. 제 지갑에는 제가 열심히 준비한 비장의 카드가 들어있습니다.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다시 한 번 비장의 카드를 보았습니다.

제가 인사불성이면 아래의 핸드폰으로 연락해 주세요. 핸드폰 번호 : 016-225-XXXX

라는 글씨가 선명하고 예쁘게 써 있습니다.

흐흐흐 …! 흐뭇합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의 목걸이틱 하져?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보통 지갑에 보면 주민등록증을 넣기 위한 투명한 비닐로 된 주머니가 있지 않습니까? 다이어리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 지갑의 투명 비닐 주머니에는 그녀의 주민등록증이 들어있습니다. 이 카드는 그녀의 주민등록증을 밀어내고 당당히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푸하하하하하~!!!”

요것만 넣어두면 그녀가 어디서 인사불성이 되던지 조금은 안심이 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부평역 앞에서 그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나 지금 부평역 도착, 나와라. 오바~!”

“알았다. 10분만 기다려라 오바~!”

그녀가 저한테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녀의 손에 커다란 지갑이 들려 있는 게 보입니다. 으흐흐흐~! 제 눈에는 지금 지갑밖에 안보입니다.

“왠일이야?? 저녁때 여기를 다 오고.”

“응, 하하핫! 지갑이네?”

그녀는 검정색 추리닝을 입고 있습니다. 등 뒤에 머라고 쓰여 있기는 한 거 같은데 한문이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대강 보니 무슨 검도라고 써 있는 거 같습니다. 그녀와 함께 조용한 커피숍으로 들어갔습니다.

“야! 지갑 내놔봐!”

“얘가 아까부터 뜬금없이 웬 지갑 타령이야?”

“글쎄 줘봐봐!”

그녀의 지갑을 반 강제로 뺏어서 얼른 펼쳤습니다. 예상대로 투명 비닐 주머니엔 주민등록증이 있습니다. 잽싸게 주민등록증을 꺼내고 제가 준비한 비장의 카드를 꼽았습니다. 주민등록증은 그 카드 뒤에다가 넣었습니다.

뭐라고? 바보라고요? 그냥 주민등록증 위에다 꼽으면 될 걸 가지고 복잡하게 한다고요?

천만에요!

그러면 목걸이가 주민등록증을 밀어내는 희열이 줄어들지 않습니까? 저 이래뵈도 때론 영특한 놈입니다.

먼가가 보람됩니다.

“너 지금 남의 지갑가지고 뭐햇?”

“이것 빼지마! 빼면 죽어!”

“멀? 먼데? 이리 줘봐봐.”

“푸하하하하~~!”

그녀가 주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웃어 재끼더군여.

“이게 뭐야?”

“보면 몰라! 아무튼 그거 빼기만 해봐봐!!!”

…………
………
……

제가 나이를 많이 먹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다보면 가끔은 기분 나쁜 일이 있을 수 있고, 마음에 상처받는 날도 있고, 하지 않습니까? 그날은 제가 인간관계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은 날 이었습니다.

또래 녀석들이 다 그렇듯이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술을 한잔씩 하면서 풀지 않습니까? 기분이 좋을 때 술을 마시면 기분이 더욱 좋아지고, 나쁠 때 술을 마시면 조금은 나아지기도 합니다.


“견우야, 니가 참아야지 어쩌겠냐?”

“그 녀석 원래 좀 그런 면이 있잖냐.”

“그래, 개 나쁜 녀석 아닌 거 너도 알잖어.”

“그래, 아라따, 술이자 먹자.”

이렇게 한 잔 두 잔 시작한 술을 오늘은 좀 과하게 마신 거 같습니다. 저는 엄마를 닮아서 소주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집니다. 발그레~!

그렇다고 주량이 한잔인 것은 아닙니다. 한 병 정도 먹으면 비틀거리고 한 병 반 정도 마시면 맛탱이 갑니다.

하합~! 그렇다고 특별한 주사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잡니다. 얌전히 잡니다.


언제 어디서나 공간과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잘 잡니다! 오늘은 안 좋은 기분에 소주를 2병이나 마셨습니다. 제 정신이 아닙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


집에 가는 지하철을 타야 했습니다.

탔습니다.

왠지 그녀가 보고 싶더군여.

음 …술을 먹었긴 먹었나 봅니다. 헤죽헤죽~!

무작정 인천행 지하철을 갈아탔습니다. 사실은 어떻게 갈아탔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암튼 인천행 지하철을 타고 의자에 앉아서 자버렸습니다.

누군가가 제 몸을 막 흔드는 게 느껴집니다.

“이봐, 학새앵~~!”

어버버 …?


“학생! 어디서 내려야 돼?”

“으흠 …아으~!”

“이 학생 안되겠구만. 학생! 여기 제물포역이야.”

“ …….”

“정말 안 되겠군.”

평소 주량의 두 배나 마신 저는 이미 제정신이 아닙니다.

지하철에서 조금 잤다고 해서 술이 깰 리가 없습니다. 일단 한번 잠이 들었기 때문에 옆에서 아무리 흔들어 깨우고 지랄을 해도 일어나기조차 힘이 듭니다.

누군가가 저를 끄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웬 딱딱한 곳에 눕혀 놓더군여.

가끔은 땅에 묻어 놓은 도시가스관이 터지고, 큰 백화점이 무너지고, 멀쩡하게 보이는 다리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해도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인 것 같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술 취해서 종점까지 갈까봐 맘씨 좋은 사람이 어딘가에 내려놓지 않습니까??

푹신하고 따따시한 지하철 의자에서 자다가 딱딱하고 추운 곳으로 나가니까 잠이 살짝 깨더군여. 눈을 게슴치레 떠보니 지하철 승강장 의자에 누워 있습니다. 위치파악을 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제물포역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더군여. 머리는 깨질 거같이 아프고 속은 울렁울렁 거립니다.

‘으으 …내, 내가 왜 여기 있지??’

‘왜 여기 있는 걸까 ……?’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아~! 맞다!! 그래, 그 녀석 보러왔지.’ 라는 생각을 한참 만에 해냈습니다.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했습니다.

때르르릉~~!

“여보세요?”

“야! 나, 난데에 …어으윽~.”

“어어~! 견우야? 너 왜 그래??”

“지, 지금 …꺼어어억~! 여기가 어디냐면 ….”

“어딘데 그래?”

“지, 지금 … 나 …제물포역이야.”

“너 이 시간에 제물포역에는 왜 있어??”

“너 …30분안에 나 데리러 …으으 …나와라!”

뚝~!

아싸라비아~! 복수의 칼을 받아라!!

아시겠지만 그녀는 부평에 삽니다. 술에 취해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상태에서도 생각했습니다.

‘으으 …30분이면 시간을 좀 많이 준거 같다 ….’

저는 그녀의 그 제한시간 때문에 항상 심리적 압박상태였고, 아마도 무의식 속에 복수를 꿈꾸고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는????

전 … 자버렸습니다.

“형씨!”

“으으 ….”

“형씨, 좀 일어나 보슈.”


“어으 … 추워 ….”

반쯤 감긴 눈 사이로 낯선 사람이 저를 흔들어 깨우는 게 보입니다. 그 사람 뒤로 어렴풋이 쇠창살이 보이더군여.

“으, 으헉 …!! 여기가 어디얍?”

“정신이 좀 드슈? 꼼짝도 안 하기에 난 시첸 줄 알았지.”

“아저씨! 여기가 어디에여?” O.. o;


“어디긴 어디야. 보면 몰라?”

그렇습니다. 제가 눈을 뜬 곳은 경찰서 유치장이었습니다.

속이 너무 쓰립니다. 머리는 깨는 것 같이 아픕니다. 입안의 침은 전부 말라 있고 목은 빠싹빠싹 타 들어갑니다.

그런 몸을 이끌고 벌떡 일어나 쇠창살을 양손으로 부여잡았습니다. 밖에 경찰 아저씨 몇 분이 보이더군여.

“아저씨! 경찰 아저씨!”

“뭐야?”

“아저씨! 무, 무울 좀 주세여.”

어깨 위에 이파리가 하나 밖에 없는 제일 졸병으로 보이는 경찰 아저씨가 물을 갖다 주더군여.

“감사합니다!”

벌컥벌컥~~!

크아아~조타~!

물을 마시고 나니 정신이 좀 돌아옵니다. 저에게 물을 갖다 주고 자리로 돌아가려는 경찰 아저씨를 다시 불렀습니다.

“저기 …여기여. 경찰 아저씨!”

말이 경찰 아저씨지 솔직히 저하고 비슷한 또래 아니면 어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떡합니까? 군대에서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계급이 깡패고 보직이 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유치장 안에 갇혀있기 때문에 뭔가 크게 밑지고 들어가지 않습니까? 존대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저씨, 제가 왜 여기 있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어.”

‘이게 반말이네. 씨이~!’

“그럼 누가 알아여?”

“ …….”

“저 좀 꺼내 주세요!”

“기다려봐.”

‘계속 반발이네. 이것이 …!’

이번에는 어깨 위에 은빛 이파리 3개가 달려 있는 아저씨가 오시더군여.

“아저씨! 저 꺼내줘요.”

“푸컥! 이 놈 봐라!”

“왜여?”

“기다려봐! 검사님 연락이 와야 대.”

“헉 …!!네 …?? 검사님이여??”

검사님!!!

뜨아악~~~~!!!!

아무 기억도 안 납니다. 하지만 제가 어제 술을 먹고 지나가는 여자를 덥친 게 분명합니다. 그게 아니고서야 지금 이 상황에서 검사님까지 등장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여기서 인생 종치는구나! 으으앙~~!!’ 르르~!


“이봐요, 형씨! 무슨 일로 들어 왔수?”

“이봐여, 아저씨!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엽!”

“ …….”

“그러는 아저씨는 왜 여기 있어여! 말 시키지 마세여. 씩씩!”

유치장 쇠창살에 머리를 박으며 어제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게 생각이 납니다. 그리곤 아무 기억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지금 유치장에 있는 걸 보니 그녀는 어제 안 왔나 보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데, 우리의 터프한 그녀가 경찰서 안으로 들어오더군여. 무조건 반가운 마음에 외쳤습니다.

“야아아아~~!!!! 나 좀 꺼내줘오오오~!”


“홋홋홋 …!”


“왜 웃고 난리얍!!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야?”

“뭐가?”

“내가 왜 여기 있냐고?”

저는 전화를 받고도 그녀가 안 나온 줄 알았습니다. 그녀가 쇠창살 밖에서 제게 한 말에 의하면 상황이 이렇더군여.

그녀의 삼촌께서 검사님이시고 제물포에 사신답니다. 제가 밤에 신음소리를 내면서 안 하던 짓을 하니까 그녀가 놀라서 그 야밤에 삼촌께 전화를 해서 삼촌하고 같이 제물포역으로 나왔답니다.

저는 술에 취해서 지하철 의자 밑에 기어 들어가서 신발도 벗고~ 양말도 벗고~ 음료수 캔을 어디서 구했는지 그걸 베개 삼아서 자고 있더랍니다.

중요한 건 앞에 동전도 몇 개 있었답니다. 감사합니다. 꾸뻑~!

그리고는 그녀의 삼촌께서 저를 가까운 경찰서 유치장에 던져 놓으신 거였습니다.

거기에 동의한 그녀~!!!!!

진짜 치사합니다. 부르르르~~!!

그녀가 술에 취했을 때. 그래서 인사불성이 됐을 때 저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때의 그 엄청난 고생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옵니다. 츄르르~!

“그럼 빨리 삼촌께 전화 좀 걸어줘. 추워 죽겠어. 배고프고!!”

“그래, 푸흐흐흐흐 ……!”


그녀가 삼촌께 전화를 해서 경찰 아저씨를 바꿔드렸습니다.

저는 그런 담에야 겨우 쇠창살을 등지고 저에게 찝쩍거리던 유치장 아저씨도 등지고 따뜻한 나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야! 어떻게 날 유치장에 재울 수가 있냐??”


“하하핫! 잘 잤어?”

“으으으 … 씩씩! 야야아아아아아얍~~~!”

“삼촌이 그러시는데 내가 어떡하냐 그럼.”

“치사하다, 정말!!! 흥,흥,흥~!”

그녀가 미안하다며 아침을 사주었습니다. 그리고 제 지갑 속에 이런 메모를 넣어주더군여.

제가 제정신이 아니면 꼭 이리로 연락주세요.
핸디번호 : 011-316-****

네~~!! 이렇게 해서 그녀와 저의 지갑 속에는 서로 제정신이 아닐 때 서로의 연락처로 연락을 해달라는 명함 크기의 메모를 잘 보이게 가지고 다닙니다.

그녀는 눈물겨운 아침을 사주더니 으쓱한 골목으로 저를 데꾸 가더군여.

“견우야 …!”

“응?”

“너어~다시 한번 이러면 죽어!!!”

퍽! 퍽! 퍽!!!

“으헉~!”

그녀는 말이 끝나자마자 저를 열라게 두드려 패더군여.

절라게 맞았습니다.

엉엉~~~! 츄르르~~!

자기는 나보다 더 하면서 …. 히힝 …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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