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생각 좀 하고 가겠습니다>
#조건에는 답이 없다.
나는 수도권 대학 IT계열 4학년이고 나이는 서른이다. 스물네 살에 전역하고 늦깎이로 전문대에 들어가 스물여덟이 되어서야 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학하여 재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졸업학기가 되자 교문을 벗어난 다음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IT분야는 다른 직종과 달리 직업수명이 길지 않다. 취업을 생각하자니 나이가 걸리고,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자니 부모님의 반대가 마음에 걸렸다.
고민 끝에 교수님께 상담을 신청하고 연구실을 찾았다. 가만히 얘기만 듣고 있던 교수님의 첫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조건은 답이 아니야.”
무슨 뜻에서 하신 말씀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자네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네. 그렇지?”
“네.”
“그럼 현재 시점에서 선택할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게 옳지 않을까? 그러니까 취업이라면 어떤 분야에서 활약하고 싶은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고, 진학이라면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겠나? 그것이 지금 자네가 해야 하는 고민 아닐까. 취업을 하자니 나이가 걸리고, 진학을 하자니 부모가 걸린다는 말은 결국 먼 미래에 닥칠 일에 대해서 미리 결론내고 있는 것이야. 자네는 시작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해놓은 것도 없어. 현재에서 미래를 결정해버릴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어. 내 말 이해하겠나?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될 것 같은 조건들은 자네가 만들어놓은 불안에 불과해. 조건은 답이 될 수 없어. 결과가 답이지. 어떤 일이든 정점에 올라선다는 것은 나이와 조건을 초월하는 일이야. 그곳이 직장이건 연구실이건 상관이 있겠나.”
연구실을 나오면서 생각이 복잡했다. 선택 이후의 조건에 집착해온 나를 아프게 꼬집는 것 같았다.
“조건은 답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