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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05. 2018

10.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 10가지는?

<잠깐 생각 좀 하고 가겠습니다>

#대박 난 꼴찌

“지영이 안 왔어?”
“교무실에서 못 봤어? 오자마자 학생주임한테 불려갔어.”
“오자마자? 왜 또?”
“몰라.”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 나는 교실보다 교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난 공부에 취미가 없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니체를 읽다가 교과목을 공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생님께 번번이 혼이 나곤 했다.

내게는 불필요한 야자시간, 정시 등교,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복장규율은 학창시절 내내 나의 가치관과 충돌했다. 나는 모델이 되고 싶었다. 키가 크고 삐쩍 마른 데다 개성 강한 외모여서 어딜 가나 눈에 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간혹 길거리에서 찍힌 사진이 패션잡지에 실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개성이 강할수록 난 더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어찌됐건 대학은 들어갔다. 부모님의 성화에 점수를 맞춰 들어간 곳이 식품영양학과였다. 지금에서야 고백하건대 식품영양학과에 가면 4년 내내 요리만 할 줄 알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영양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적성에도 맞지 않는 공부를 하느라 끔찍한 시간을 보냈었다.

첫 직장은 수원에 있는 회사식당 영양사였다. 어린애처럼 개성만 찾았다간 인생을 망칠 것 같아 취업의 대열에 뛰어들었다. 1년 후, 용인에 있는 정신병원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리고 6개월 후, 송파에 있는 복지센터의 구내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5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직장생활을 포기했다. 직장은 학교생활의 연속이었다. 규율 안에 통제된 생활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직장을 때려치웠으니 당장 돈벌이를 해야 했다. 나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단 생각을 했다. 무엇을 하든 내가 나를 잘 알지 못하고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나를 열거해보았다.

개성 넘침, 세련됨, 붙임성이 좋음, 꼼꼼함, 철학서를 즐겨 읽음, 꾸미기를 좋아함, 소품수집이 취미,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함,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함, 자율적인 인간임, 사진 찍기를 좋아함, 일을 시작하면 마무리를 지어야 함….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생각보다 난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늘 끝이 보이지 않는 청명한 가을날, 나는 아기자기한 일본 소품 쇼핑몰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소품 쇼핑몰은 내가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쁜 포장지와 개성 넘치는 스티커를 제작하고 그 길로 국제시장에 뛰어가 특유의 서글서글한 성격과 입담으로 거래처를 만들었다. 역시나 공부보다는 패션이 내겐 제격이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진 않았지만 좌충우돌하는 사이 배운 것도 많았다. 그렇게 보낸 삼 개월 동안 온전히 나로 사는 해방감을 맛보았다.

나는 스스로 쇼핑몰 사장이 됐다. ‘칸트’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매일 해야 할 일 그리고 희망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랑스런 고객, 매일 들어오는 주문과 발송, 성공해보리라는 희망의 삼박자가 나를 춤추게 했다.

나는 지금이 좋다. 대학을 졸업하고 끼워 맞춘 길을 걸어도 봤다. 먼 길을 돌아온 듯싶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이제 시작이다. 시작해보고 나서야 알았다. 시작이란 말 자체가 젊다는 뜻이라는 것을. 시작은 언제나 빠른 것이다.

“당신의 장점을 열거해보세요.
무엇이든 좋습니다.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남들로부터 자주 듣는 칭찬.
당신을 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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